[정진권 더봄] 정이 넘치는 고향 사람들(2)

[정진권의 고향 정착기] 농사일 도와주던 죽마고우 갑자기 간암2기 진단 받아 하우스 지으려다 청천벽력

2023-01-01     정진권 남인수기념사업회 사무국장
아내는 하우스 농사를 짓기 위해 친구의 하우스에 가서 배우기를 서슴지 않았다. 하우스 농사를 짓고 있는 농부 /게티이미지뱅크

내가 고향으로 쉽게 내려올 수 있었던 것은 고향에 죽마고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명절이 다가오거나 기제사가 돌아오면 일 년에 몇 번씩 어머님을 모시러 고향에 왔다. 어머님을 모시고 서울로 올라갔다가 서울 우리 집에서 2~3개월 머물다 다시 모시고 내려왔는데 고향 집에 와서는 하루나 이틀 정도 묵고 갔다. 그때마다 친구는 흔쾌히 달려와서 술동무가 되어 주었다.

어머님이 요양원에 들어가시자 나와 아내는 고향의 빈 집을 지키기 위해 한 달에 한 번씩은 내려와서 2~3일 정도 머물다가 서울로 올라가기를 반복했다. 2020년 혹독한 겨울에도 아내와 둘이서 고향집에 내려와 며칠씩 묵었다 올라가곤 했는데 산에서 나무(땔감)를 해 와서는 옛날식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뜨거운 방에서 몸을 녹였다.

뜨근뜨근한 방에서 몸을 지져보지 못한 사람은 옛날식 아궁이의 참(眞)맛을 알 수 없을 터이다. 얼었던 온몸은 노글노글 녹아서 마치 초를 태운 농이 녹은 듯하고 허리 어깨 할 것 없이 뼈 마디마다 쑤시던 자리는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만다. 

고향집 앞에 있는, 예전 앞집에 살던 형님의 방앗간 터 50여 평을 사서 텃밭을 일구게 되었는데 친구는 자기 집에서 관리기를 끌고 와서 밭을 일구어 주었다. 제대로 농사를 짓자면 관리기 운전이 필요할 것 같아 배울 겸해서 운전을 해 보았는데 관리기가 큰 돌에 부딪치면서 뒤로 튕기며 나를 치는 바람에 갑자기 언덕에 나뒹굴어 하마터면 큰일이 날 뻔했다. 

2021년 봄부터 벼농사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는데 이때도 친구는 자기 일처럼 도와주었다. 볍씨(씨나락)를 물에 부으면 둥둥 뜨는 볍씨들이 나오는데 몇 차례에 걸쳐서 걸러낸다. 그런 뒤 볍씨들을 소독하고 물에 담가 두었다가 싹을 틔우기 위해서 햇빛을 차단하고 보온을 해주어야 한다.

대부분의 시골 농부들이 그러하듯 친구도 벼농사와 하우스 재배를 다 하고 있었다. 친구는 아내에게 추운 겨울을 나려면 하우스 농사가 필요하다고 권했고 아내도 그것을 받아들였다. 농촌 들판을 메운 하우스들 /게티이미지뱅크

친구와 나는 마치 협동조합처럼 두 집의 일을 함께했다. 어릴 적에도 어느 마을에서든 바쁜 농사철에는 모두 협동으로 농사를 지었다. 협동하는 것을 품앗이라고 하는데 서로가 돌아가면서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큰일을 서로 돕는 것이다. 농촌에서 가장 큰일이라고 하면 첫째는 모심기이고 둘째는 벼를 베고 수확해서 타작을 하는 일이다.

지금도 농촌에서는 농부들이 사라지고 있는 실정이다. 어찌 보면 곡물을 수입하는 것이 경제적으로는 많은 이득이 되어 보인다. 그런데 만약에 수입해서 먹던 곡물의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거나 그 어떤 이유로 수입이 막힌다고 상상해 보자. 한순간에 행복했던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질 수도 있는 일이다.

이스라엘을 최고의 자유국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사실 이스라엘은 신생국가로서 ‘키부츠’라는 집단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2차 대전 이후 신생국 이스라엘은 개인의 소유 재산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주의 시스템인 것이다.

농촌이 다시 활성화되고 삭막한 도시인들의 휴식처로 되살아나기 위해서는 우리 농촌도 협동농장으로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것은 농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도시인과 농어민들이 서로 상생하는 길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시골 농부들이 그러하듯 친구도 벼농사와 하우스 재배를 다 하고 있었다. 친구는 아내에게 추운 겨울을 나려면 하우스 농사가 필요하다고 권했고 아내도 그것을 받아들였다. 서울에서 텃밭은 일구어 보았지만 본격적으로 농부로서 산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가 있었다. 아내는 하우스 농사를 짓기 위해 친구의 하우스에 가서  배우기를 서슴지 않았다.

벼농사를 마치고 하우스를 지어야 하는데 친구는 우리 부부에게 고향 사람들에게는 일체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함구령을 내렸다. 친구가 다 알아서 해 주겠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믿고 기다렸는데 나중에서야 친구는 “파이프 값이 너무 올랐다”라며 자신이 해 줄 수 없으니 동네에 알리라고 했다. 이후 이 내용을 들은 이웃집 동생이 찾아와서 하우스를 아주 잘 짓는 사람을 소개해 주었다.

하우스를 지어 주겠다던 친구에게는 큰 병이 찾아왔다. 기술자가 와서 하우스를 짓는 와중에 복수가 차고 발등이 부어서 내가 차에 태우고 대학병원으로 데려다주었다. 친구에게는 간암 2기라는 참으로 믿기지 않는 진단이 내려졌다. 그 친구를 믿고 농사를 지으려던 우리 부부에게는 그야말로 청천벽력이 떨어진 것이다. 

나를 돕고자 설계하고 권했던 하우스를 지을 때 정작 친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쥬키니’라는 호박 모종을 심으면서 친구는 병든 몸을 끌고 와서는 여러 가지로 참다운 멘토를 해 주었다. 딸기를 재배 중인 비닐하우스 /게티이미지뱅크

자신이 나를 돕고자 설계하고 권했던 하우스를 지을 때 정작 친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쥬키니’라는 호박 모종을 심으면서 친구는 병든 몸을 끌고 와서 여러 가지로 참다운 멘토를 해 주었다. 병에 걸린 친구를 위해 나도 이렇게 조언을 해 주었다.

“친구야, 아무래도 신(神)이 너도 쉬고 땅도 좀 쉬라고 하는 모양이다. 아무것도 하지 말고 6개월이나 1년 정도 푹 쉬어라.”

친구는 시골에서 어머님을 모시고 사는데 아내와 자식들은 도시에서 살고 있다. 나는 친구의 동생과 큰딸에게 전화를 걸어서 ‘여차여차하니 좀 도와주어라’라고 했는데, 내 전화로 가족들이 모두 알게는 되었지만 형제들도 자신도 원하지 않는 일이었다.

친구는 농사일을 놓지 못하고 계속해서 하우스 농사를 했지만 오랫동안 땅을 쉬게 해주지 못했기 때문에 땅은 땅대로 제 역할을 못 하고 친구의 병도 깊어만 갔다. 나는 친구에게 ‘의사가 시키는 대로 해라’라고 조언을 했지만 친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몸이 좀 가뿐해지면 병원에 가지 않고 복수가 차고 발등이 부어야 병원을 찾았다.

평생을 농부로 살면서 어머님을 모시고 형제들을 도왔지만 자신에게는 병이 찾아온 것이다. 그런데도 친구는 자신의 어머님과 형제들은 끔찍이 여겼다. 그리곤 하루에 두세 차례 우리 하우스에 와서 농사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오늘은 찾아온 친구에게 나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친구야, 항상 네 마음속에 좋은 생각만 해라.”

그러자 친구는 졸혼이나 한 것처럼 함께 사는 아내에 대한 원망을 했는데 내 말을 듣고는 아내와 사이가 나빠지게 된 원인이 숙모님에게 있다며 숙모님을 원망하기 시작했다. 모든 동네 사람들이 친구의 어머님에게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데도 말이다.

실은 좋은 생각이라는 것도 아픈 사람에게는 아무 쓸모가 없다. 오직 마음을 텅텅 비워서 저 허공과 같이 만들어야 한다. 내가 없는데 무슨 병이 나를 찾아오겠는가? 산에 올라서 마음을 비우고, 신을 의지해서 마음을 비우고, 염불(念佛)해서 마음을 비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