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인권 무시하는 치매 병명, 일본에선 "존엄성 지켜줘야"

치매환자, 기억 잃어도 인권·자존감 살아있어 병명 뜻 당사자가 몰라도 국가가 존엄성 책임 한국, 환자 존엄성보단 이해관계자 합의 우선

2022-12-23     김현우 기자
청주에 위치한 한 요양원에 입소한 치매환자가 의자에 앉아 있다. /김현우 기자

치매 병명을 인지증으로 개정하는 데 성공한 일본은 치매 병명이 환자 인권과 존엄성까지 해친다고 본 것으로 확인됐다. 기억을 잃어도 환자는 인간으로서 자존감을 느끼기 때문에 치매 병명 뜻을 환자가 모른다고 하더라도 국가가 환자의 존엄성을 지켜줘야 한다는 의미다. 한국에서도 치매 병명을 개정하자는 법안이 6개나 발의됐지만, 여전히 통과가 미뤄지고 있는 형국이다. 

23일 여성경제신문이 일본 후생노동성이 지난 2006년 치매 병명 개정과 관련해 검토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 일본 정부는 치매 병명이 내포하고 있는 뜻이 치매 환자의 인권과 존엄성을 해친다고 봤다. 치매(痴呆)의 한자 뜻은 '어리석을 치(痴)'와 '어리석을 매(呆)'다. 치매란 단어가 나오기 전까진 치매 환자를 노망났다고 표현하거나 치광, 즉 미쳤다고 불렀다.

일본에선 본래 치매 환자를 '치광(痴狂)'으로 부르다 자국의 정신의학자 쿠레 슈우조가 병명을 치매로 바꿨다. 치매마저도 인권을 염두에 둬서 일본 정부는 2004년 '인지증'으로 병명을 개정했다. 환자를 비하할 뿐더러 치매 병명이 주는 거부감으로 인해 치매 조기 진단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도 봤다. 

2006년 12월 24일 일본 후생노동성 노인건강관리국 계획과 치매대책추진실이 발표한 치매 용어에 관한 검토회 보고서. /후생노동성, 여성경제신문 재구성

지난 2006년 12월 24일 일본 후생노동성 노인건강관리국 계획과 치매대책추진실이 발표한 치매 용어에 관한 검토회 보고서를 보면 '치매성 고령자는 기억장애가 진행되지만, 감정이나 자존심이 유지되기 때문에 주변 대응에 따라 초조감, 상실감, 분노 등을 느끼기 쉬워진다. 따라서 이들의 인격과 생활을 존중한다는 존엄의 유지 자세를 (환자) 케어의 기본으로 할 필요가 있다'고 명시됐다. 

또한 '치매는 모욕적인 표현인 데다 치매 병명의 실태를 정확하게 나타내지 않고 병의 조기 발견 및 조기 진단 등을 진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조기 진단 대처에 지장이 되고 있다. 따라서 신속히 변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 "환자 인권이 먼저" vs 한국 "사회적 합의 우선"

한국에선 지난 2011년부터 10여 년간 치매 병명을 개정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법안이 발의됐다. 하지만 환자의 존엄성에 대한 언급은 없다. 개정 법안을 국회에서 발의하면 관련 단체가 법안을 검토해 '검토보고서'를 제출하게 되는데 검토보고서에서도 환자의 존엄성을 우려하는 내용은 부족한 상황이다. 

지난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은 치매를 인지흐림증으로 개정하자는 내용이 담긴 '치매관리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해당 법안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치매 관련 종사자 등과 사회적 합의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대한치매학회는 '치매 병명이 가진 부정적 의미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전문가와 환자, 보호자의 의견 합치가 필요하다'고 봤다. 대한한의사협회는 '치매가 가진 어리석다는 의미가 사회적 편견을 조장하기 어렵다'고 했다. 

같은 한자문화권인 일본(2004년), 중국(2012년), 대만(2001년)은 각각 치매를 의학적인 상태를 반영한 명칭인 ‘인지증’, ‘실지증’, ‘뇌퇴화증’ 등의 용어로 바꿔 사용하고 있다. 일본과 중국, 대만 모두 치매 병명 개정과 관련한 검토서에 '환자의 인권을 해칠 우려가 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병명 개정을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무엇보다 병명은 병의 원인을 직관적으로 표현해야 하며 이를 위해선 현장 실무자인 의료계와의 협업이 필수적이다. 

이를 두고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서정숙 국민의힘 의원은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다양한 관련 단체와 정부, 국회 간 치매 병명 개정을 위한 이해관계자 간 구체적 논의가 우선인 것은 사실이다. 쉽게 도출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부정적인 내용이 담긴 치매 병명은 개정해야 한다"면서 "특히 환자 본인의 존엄성과 인권을 보호하는 측면의 접근 방법을 보건복지부 등 관계기관이 반드시 이해한 상황에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