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미옥 더봄] 또르르 눈물 한 방울과 차벨라 웨딩 케이크
환상과 마법이 넘나드는 남미 소설 눈물의 웨딩 케이크 속 슬픔과 분노 독후감 대신 남긴 독후화 두 점
눈물의 웨딩케이크라···. 아주 오래전 사랑받던 동명의 노래가 있었다. 연인을 떠나보낸 후 남겨진 웨딩케이크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울었다던 그런 내용이었다.
멕시코 소설『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에서도 웨딩케이크가 등장한다. 기쁨의 맛 대신에 슬픔과 절망의 맛을 듬뿍 담고서.
책을 읽다 보면 등장하는 음식들, 상상과 꿈 그리고 희망과 후회 등을 재료로 한 상 가득 차려주니 독자로선 그저 고마울 뿐이다. 거한 잔칫상을 차려주기도 하고 때론 달콤한 디저트, 혹은 술상을 내어주기도 한다.
달콤함보다는 쌉싸름한 인생의 맛
소설을 읽다 보면 가보지 못한 나라의 풍습이나 음식에 유독 끌리곤 한다. 멕시코 작가 라우라 에스키벨의 베스트셀러이자 마법 같은 이야기인『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이 특히 그랬다.
내용은 제목처럼 달콤하지만은 않고 오히려 씁쓸하다. 혀끝에 남은 초콜릿의 여운처럼 쌉쌀하다가 남미 특유의 마법 같은 설정에 정신이 혼미해진다. 하지만 요리와 사랑, 슬픔이 만들어지는 먼 나라의 주방을 엿보는 오묘한 매력이 분명 있다.
소설 속의 주방은 조미료와 찬거리 대신 사랑과 음모, 열정과 탄식 그리고 눈물과 배신이라는 양념으로 가득 차 있다. 일 년 열두 달의 대표 음식으로 구성된 이야기 중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2월의 요리인 눈물의 웨딩케이크다.
배경이 되는 멕시코의 2월은 우리와 사뭇 다르겠지만 내겐 겨울 끝자락의 스산한 추위를 가득 담은 음식으로 다가왔다. 이름도 생소한 차벨라라는 이름의 웨딩케이크!
막내딸은 평생 결혼하면 안 된다고?
"너에게 청혼을 하러 오는 거라면 아예 그만두라고 해라. 그 청년이나 나나 괜한 시간만 낭비하는 거니까. 네가 막내딸이라 내가 죽는 날까지 나를 돌봐야 한다는 건 너도 잘 알잖니?"
- 민음사『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중에서 -
이 무슨 황당하고 어이없는 말이란 말인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지만 어디까지나 소설이니까, 것도 환상과 마법을 넘나드는 남미의 이야기니까 이해하기로 하자. 어쨌든 억울하지만 그 동네는 그런 풍습이 있다 하니 우리의 주인공은 울며 겨자 먹기로 그에 순응한다. 물론 소설이니만큼 반전은 있다.
설상가상으로 연인을 언니에게 빼앗긴 주인공인 막내딸에게 내려진 지상명령은? 결혼축하연에 내놓을 웨딩케이크를 만들라는 것이었다. 이쯤되고 보면 그 엄마는 종종 동화책에 등장하는 악독한 계모여야만 했다. 아쉽게도 친 엄마여서 소설은 더 흥미진진하다.
슬픔과 눈물로 구워 낸 차벨라 웨딩케이크는 분노를 발산하는데···
결국 우리의 주인공은 그가 사랑하는 주방에서 눈물의 웨딩케이크를 만들게 된다. 아무리 소설이라지만 자비심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설정이다.
생크림, 고구마, 아이스크림 케이크는 알지만 차벨라 케익은 당연히 처음 들어봤다. 여차여차해서 알아본 레시피는 황당무계한 전개에 비해 너무도 평범했다. 밀가루, 베이킹파우더, 소금, 부드러운 무염 버터, 계란, 우유, 설탕, 바닐라·레몬, 라임 등이다.
하지만 최후의 일격(?)인 주인공의 슬픔을 진하게 녹여낸 눈물이 마지막 레시피에 첨가된다. 현실적으로야 믿기 힘들지만 어쨌든, 소설이니까 그 웨딩케이크의 활약(?)은 참으로 대단했다.
케이크를 먹은 하객들은 구토하고 그게 흘러넘쳐 강을 이루고 갑자기 옛사랑들을 떠올리며 뿔뿔이 흩어진다. 마법 같은 전개에 나도 케이크 한 조각을 얻어먹은 것처럼 혼란스러웠다.
리뷰를 그림으로 대신하고 싶었다. 독후감 말고 독후화인가? 왠지 몰라도 진한 연둣빛이 떠오르는 멕시코의 색감 위에 생전 맛보지도 못한 차벨라 케이크를 그려보기로 한 것이다.
주인공의 마음에 슬픔이라는 생크림을 치대고 또 치대어 덧입혔다. 간간이 뿌려준 라임 부스러기에도 마음을 담았다. 마지막으론 주인공에게 빙의해 분노의 시큼한 라임 조각을 콕! 박아두었다. 나의 책 리뷰는 눈물의 차벨라 웨딩케이크로 마무리한다.
인생은 늘 그렇듯이 작은 달콤함과 꽤 큰 쌉쌀함을 오고 간다. 책 제목이 참 마음에 들었다. 인생이나 달콤함의 대명사인 초콜릿이나 쌉쌀함이 더할 때 그 맛이 배가 되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