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주 더봄] 어쩌다 생태 전문가가 되었다
[김성주의 귀농귀촌 이야기] 가장 평범한 농촌 모습이 바로 학교에선 볼 수 없는 생태 학습장 어쩌다 생태 전문가가 된 농부들 귀농귀촌은 생태 보존 활동
지난 늦가을 양평으로 초대되어 강의를 하러 갔다. 주제는 생태 관광이다. 제목을 ‘양평의 에코테인먼트’라 정하고 2시간의 시간을 가졌다. 앉아 있는 이들은 생태 환경에 관심이 있는 양평 시민들이었다.
양평에서 할 수 있고 양평에서 해야만 하는 생태 관광 활동에 대하여 말하였다. 주요 내용은 생태를 관찰하러 굳이 멀리 가지 말자는 것이다. 우리집에서 출발하여 만나는 우리 골목, 우리 동네를 살펴 보자. 집에서 시장까지 가는 길의 풀들을 보고, 아이가 학교까지 가는 길의 새들을 보고, 우리 아파트와 뒷산의 숲, 우리 학교에 심어진 나무들, 논과 밭에 심어진 농작물과 곤충들을 자세히 보자.
그곳에 숨겨진 생태가 더 현실적이고 재미있다. 가까운 생태 환경을 보호해야 진짜 지구가 살아난다. 내 주변부터 시작해서 멀리 나아가자는 것이다. 우리 생태 관광이 지나치게 국립공원이나 깊은 산을 찾아 걷고 사진 찍는 것으로만 이루어져서 현실성이 적다는 지적에서 나왔다.
오지로 찾아가서 희귀한 생물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까운 곳의 생태 가치를 이해하고 보존하는 것이 공존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동네들이 비슷하듯 하면서 다르다. 각각의 동네마다 각각의 생태계가 존재한다. 서울만 해도 아파트 단지마다 나무와 풀들의 종류가 다르고 서식하는 동물과 곤충들이 다르다. 희귀 생물들도 많다. 오래된 동네에는 열대 지방에서나 살 수 있는 나무가 버젓이 마당에서 자라는 경우가 있다.
예전 집 주인이 아주 오래전에 어디서 구해서 심은 것인데 살아남은 것이란다. 재개발을 하면서 싹 밀어 버리는 것이 아깝다. 동네 자체가 생태 박물관이다. 그것에 생태 관광 프로그램을 운영하면 전국의 모든 마을과 동네들이 생태 관광지가 될 것이다. 골목길 투어나 전통시장 탐방이 이런 취지에서 이루어진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오면 놀라워하는 것이 몇 가지 있다. 아침 뉴스에서 기상 캐스터가 ‘오늘 전국적으로 비가 옵니다’라고 말할 때, 어떻게 전국적으로 비가 다 올 수 있냐고 의아해한다. 특히 미국이나 러시아 사람들이 놀란다. 나라 땅이 좁으면 그럴 수 있다는 걸 모른다.
하루에 일출과 일몰을 다 볼 수 있다는 것에도 놀란다. 동해에서 일출을 보고 바로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서해로 가면 일몰을 볼 수 있다. 중간에 시간도 남는다. 놀라워한다. 나라 땅이 좁으면 그럴 수 있다는 걸 모른다.
수산 시장에 가면 가장 크게 놀란다. 가게마다 좌판의 빨간색 넓적한 플라스틱에 담겨 있는 생선들과 횟집 앞의 네모난 어항에서 유영하는 많은 생선들을 보면서 그들은 왜 아쿠아리움이 여기 있냐고 묻는다. 사실 살아 있는 물고기를 전시하면서 판매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활어회를 좋아하다 보니 그렇게 된 걸 어쩌랴.
고라니를 보고 하찮아 하면 유럽인들은 경악한다. 유럽에서 고라니는 동물원에서나 만날 수 있는 희귀종이다. 고라니는 공식적인 국제적 멸종위기종(세계자연보전연맹 적색목록 취약종)이다. 중국에서도 3000여 마리에 불과하다. 전세계 고라니의 90%가 남한에서 살고 있다. 우리에게 고라니는 유해조수인데 외국은 멸종위기종이다.
겨울이면 철새인 독수리와 두루미를 보러 외국인들이 몰려온다. 수천 마리가 군락을 이루어 지내는 모습은 남한에서만 볼 수 있다. 이 새들이 봄에 다시 북녘으로 넘어가면 넓게 흩어져서 지내기 때문에 러시아에서 두루미를 보려면 며칠을 답사해야 한단다. 쉽고 빠르게 독수리와 두루미를 보려면 한국으로 가면 된다고 웬만한 탐조인들은 다 안다.
정작 우리가 모르는 생태 자원이 우리 주변에 널렸다. 알면 알수록 신기하다. 고라니와 멧돼지를 보면 괘씸해 보여도 측은하다. 어쩌다 여기서 천덕꾸러기가 되었니.
경기도 이천의 비틀즈자연학교 농장의 정태성 한혜정 부부는 논의 가치를 제대로 아는 농민이다. 논에서 벼만 자라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생물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정태성 한혜정 부부는 논에 농약을 절대로 투입하지 않는다. 그러니 우렁이, 달팽이, 메뚜기가 논에서 살고 심지어 붕어까지 잡힌다.
완벽한 습지라고 불리는 논을 생태적으로 완벽하게 재현하니 주변 사람들이 인정하고 구경하고 몰려 온다. 비틀즈자연학교라고 이름 지은 농장에는 주말마다 가족들이 몰려와 생태 농법을 체험하고 자연을 경험한다. 봄부터 가을까지 농장 회원들이 함께 농사를 짓는다. 사람들은 벼보다는 논 속에서 자라는 생물에 더 관심이 있다. 수확이 끝나면 함께 나눈다.
파주시 월롱면의 ‘파주생태교육원’ 농장은 처음부터 생태를 생각하여 만든 농장이다. 고향 땅인 파주 월롱으로 귀농하여 집과 농장을 생태 천국으로 만들었다. 벼농사와 과수를 하면서 주력은 생태 교육이다. 조영권 대표와 가족들은 1년 내내 농장에서 생태 체험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생태 체험이라고 하니 어렵게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평범한 시골 농장에서 펼쳐지는 동물과 식물의 모습을 보여준다. 봄이면 새싹이 올라오고 개구리가 동면에서 깨어나고 겨울 철새가 날아가고 여름 철새가 날아오고, 텃새인 수리부엉이는 밤마다 운다.
뱀이 허물을 벗는다. 과일 나무에 꽃이 피고 지고 열매가 열린다. 논에는 사람들이 농사를 짓는다. 사람들은 채소를 따서 쌈을 싸 먹는다.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춥다. 그 모습을 조영권 대표는 쉽게 설명할 뿐이다. 가장 평범한 농촌의 모습이 학교에서는 볼 수 없는 생태 학습장이 된다
평창군 미탄면의 ‘와우미탄 협동조합’은 농부 청년들이 모여 만든 생태 관광 조직이다. 어름치마을, 은행나무 과수원, 흑염소 농장, 토종다래, 양봉 등 여러 농장이 모였다. 각각의 농장을 경영하며 지역을 알리고 있다.
오지 중의 오지인 미탄면에서 그들을 만나면 놀라운 생태를 경험할 수 있다. 배를 타고 강을 거슬러 올라 동굴을 탐험하고 은행나무 숲에서 커피를 한 잔 하고, 보기 드문 토종 다래를 즐길 수 있다. 흑염소 농장에서 경험하는 캠핑과 차박은 생각지도 못할 선물이다. 흑염소 고기를 젊은이들이 더 찾는다.
토종 벌꿀은 달콤한 추억이다. 단순한 농촌 체험 같지만 와우미탄 청년들과 함께하면 ESG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지속가능한 미래는 먼 곳이 아닌 가까운 곳에서 실천해야 가능하다고 알려 준다. 지역의 자원을 보존하며 주민들이 행복하고 방문객들이 만족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이 농장들의 공통점은 도시에서 살다가 어쩌다가 귀농하고 어쩌다가 생태 전문가가 되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매일 매일이 재미있단다. 매일 들리는 새소리가 행복하단다. 도시에서 채우지 못한 것을 농촌에서 채우며 농촌의 부족함을 채우는 사람들이다.
귀농귀촌을 개인의 행복과 만족으로만 찾는 사람들도 있지만 더불어 살 수 있도록 환경을 지키는 사람들도 있다. 지역의 생태 환경은 귀농귀촌인들이 더 많이 관심을 갖는다. 지역 주민들이 벌이는 생태 보존 활동에 귀농귀촌인이 합세하면 더 큰 힘을 낸다고 한다.
이런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필자도 어쩌다 생태 전문가가 되었다. 고마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