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이기적' 시스템, 성착취물 피해자 '트라우마' 가중시켰다

8일 앰네스티 온라인 젠더 폭력 생존자 인터뷰 발표 구글, 성착취물 신고 피해자에 사진 신분증 요구 윤지현 "생존자 중심 신고 시스템 도입 시급"

2022-12-08     최수빈 기자
국제앰네스티가 젠더 기반 폭력 생존자와 활동가 2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구글에 콘텐츠를 신고해 봤다고 답한 11명 전원은 삭제요청이 제대로 처리되는지 확인하기 어려웠다고 답했다. /국제앰네스티 제공

국내 온라인 성폭력 피해자(생존자)들이 구글의 '이기적' 시스템으로 인해 가중된 고통을 겪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국제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는 8일 온라인 젠더 기반 폭력 생존자와 이들을 지원해온 활동가 인터뷰 결과를 발표하며 “한국의 온라인 성폭력 생존자들이 구글의 느리고 복잡한 콘텐츠 삭제 요청 시스템으로 인해 더욱 큰 고통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국제앰네스티가 젠더 기반 폭력 생존자와 활동가 2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구글에 성착취물 콘텐츠를 신고해 봤다고 답한 11명은 콘텐츠 삭제요청이 제대로 처리되는지 확인하기 어려웠다고 답했다.

구글의 신고 시스템은 신고 양식을 찾기 어렵고, 신고 대상 콘텐츠의 유형을 나누는 카테고리가 모호하다는 것이다. 신고가 제대로 접수된 후에도 처리 과정에 대한 소통이 부족하고, 처리가 완료되는데 수개월이 소요되기도 한다.

또한 이용자는 콘텐츠를 신고할 때 ‘신고 내용이 사실이 아닐 경우 처벌을 받을 수 있음을 알고 있다’라는 문장에 반드시 체크 표시를 해야 하는데, 구글은 작성이 완료되지 않은 신고는 처리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디지털 성범죄 생존자 현모 씨는 “어렵게 신고를 제출했다. 하지만 콘텐츠가 삭제될 거라는 확신보다는, 처리가 안 된다면 내 책임이란 말인가 싶어 불안감이 커졌다”며 이러한 가이드라인이 불안감을 키웠다고 국제앰네스티에 전했다.

구글의 신고양식 중에는 신고 제출 시 ‘사진을 포함한 신분증’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이에 추적단불꽃 활동가 ‘단’은 “이미 피해 영상이 유포되고 있는 온라인에 생존자의 사진을 포함한 신분증을 올리라는 요구는 그 자체로 트라우마를 일으킨다”고 지적했다.

현씨는 구글에서 신고접수 확인 메일을 받은 후 1년 이상 기다린 후 삭제요청에 대한 처리결과를 통보받을 수 있었다. 현씨는 “구글에는 여러 장점이 있다. 원하는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다. 하지만 피해자들에게 구글은 거대한 유포 웹사이트에 불과하며 최악의 2차 가해 웹사이트다”라며 “한 번은 유포된 영상의 URL을 검색했는데, 검색 결과가 30페이지가 넘게 나왔다. 요청을 해도 쉽게 삭제되지 않았지만 계속 삭제요청을 하는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윤지현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사무처장은 “한국에서 급증하는 디지털 성범죄로 여성과 소녀들이 심각한 피해를 입는 상황에서 구글의 불충분한 비동의 성적 촬영물 신고 시스템은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며 “빅테크 기업들은 한국뿐만 아니라 어디에서나 온라인 젠더기반 폭력 확산을 막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한다. 전 세계의 생존자들은 성착취물을 삭제하기 위해 이처럼 문제 있는 시스템을 동일하게 사용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모든 기업이 인권을 존중할 책임은 ‘유엔 기업과 인권 이행지침(UN Guiding Principles on Business and Human Rights)’에 설명돼 있다. 이에 따르면 모든 기업은 자신의 활동이 인권에 부정적 영향을 초래하거나 이에 기여하지 않도록 하며, 부정적 영향이 발생할 경우 이에 대처할 책임이 있다.

윤 사무처장은 “구글은 디지털 성범죄 생존자들의 삭제 요청에 느리고 일관성 없이 대응함으로써 인권 존중에 실패하고 있다. 구글은 접근하기 쉽고, 절차가 간단하며, 처리 과정을 파악하기 쉬운, 생존자 중심 신고 시스템을 도입해 또 다른 트라우마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구글은 디지털 성범죄를 포함한 온라인 젠더 기반 폭력이 자사 서비스에서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라며 “디지털 성범죄 생존자에게 필요한 것은 구글의 신고체계로부터 불필요한 고통을 계속 받는 게 아니라 도움을 받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국제앰네스티는 8일부터 구글에 신고 시스템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국제적 탄원 캠페인을 진행할 예정이다.

국제앰네스티는 지난 11월 11일, 관련 내용에 대한 질의서를 구글에 보냈다. 구글은 공식적으로 답변하지 않았으나, 국제앰네스티와의 개별 미팅에서 이 사안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향후 대응에 있어서 개선하기를 원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