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 더봄] 아이에게 좋은 우산이 되고 있나요?
[김현주의 텐션업 갱년기] 아이의 세상을 인정하고 긍정하는 엄마와 함께 아이는 성장한다
“아이가 요즘 들어 부쩍 짜증이 늘어서 당황스럽다니까요. 내년이면 중학교 2학년인데, 그래서 그런가?” 예측하지 못한 타이밍에 얼굴을 찌푸리거나 화를 내는 일이 잦아졌다며 후배가 한숨을 쉬었다. 외동딸과의 사이가 남다르게 좋았던 터라, 남들이 이야기하는 사춘기는 그냥 지나가겠거니 했단다.
“앞으로 당분간은 더 뾰족해질 거야, 말을 걸어도 대답이 짧을 거고. 그래도 중 3이 되니까 좀 나아지더라. 물론 좀 다른 방향으로 새로운 모습을 보이지만.” 몇 년 먼저 경험을 했다고 이런 저런 예측을 전하고는 있지만, 사실 나 역시도 아이 앞에서는 매번 처음인 상황을 마주한다.
문을 닫고 방 안으로 들어가 버리는 시기는 지난 것 같은데, 요즘은 자신의 이야기나 관심사에 본인이 기대하는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지나치게 솔직하고 즉각적으로 감정을 드러낸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친구들 사이에서 벌어진 문제에 대해 고민을 하길래 상황을 해석하고 그런 경우라면 이렇게 해 보면 어떻겠냐는 의견을 주었더니 ‘해결책이 아니라 공감이 필요하다’며 하던 말을 거둔다.
“엄마가 T(MBTI 성향 중 하나)라서 그런가, 무엇이든 답을 찾으려고 하는데 지금은 그걸 바랬던 게 아니라고. 그냥 내 편이 되어서 같이 흥분해주면 좋잖아. 엄마 답이 항상 맞는 것도 아니고, 어쨌든 지금 나한테 하나도 도움이 안 돼” 라면서 말이다.
내가 그런 성향이 있다는 걸 알기에 뜨끔했고, 아이에게 어떤 방식으로 지지와 위안을 줄지 제안과 격려를 해야 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어떤 때는 "엄마라면 그 정도는 관심을 가지고 알아봐줘야 하는 거 아니야?"라고 맥락없는 서운함을 표현하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엄마는 주름 관리만 좀 하면 예쁜 얼굴인데, 좀 가꿔"라며 느닷없는 핀잔을 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이의 반응과 태도를 보며 아이의 마음이 어떻게 성장하고 있는지 어림잡아 보는 게 전부다. 아이가 초등학생일 때는 소위 ‘아이와 대화하는 법’을 담은 책들에 적혀 있는 대로 아이의 감정과 상태를 인정하고, 현재의 상황을 설명한 후, 대안을 제시하는 방식이 어느 정도 효과적이었던 것 같은데 사춘기에 들어선 아이는 엄마가 전하는 그 일련의 과정을 들을 시간적 여유도 마음의 여유도 없는 것 같다. 결국 행동으로 보여주고 느끼게 해 줄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은 내가 저 나이였을 때 어땠는지 돌아보며 아이의 현재를 짐작해 본다. 친구들이 그 어느 누구보다 중요한 존재였고, 그래서 매번 친구들 사이에서 벌어진 일들로 들뜨기도 속상해하기도 했다.
학교와 독서실을 오가는 반복되는 생활에 늘 피곤했고, 입시를 생각할 때마다 또 앞으로 다가올 시간을 그려볼 때마다 드는 막연한 불안감에 지쳐 있었다. 쉬어도 쉬는 것 같지 않았고 좋아하는 일과 해야 하는 일 사이에서 쫓기듯 시간을 보냈다. 이런 상황에서 오는 긴장감을 견디지 못할 때 나 역시 엄마에게 가시 돋친 말을 던지고는 했다.
생각해 보니 그때 그럴 수 있었던 건 엄마는 내가 어떤 말을 해도 받아 주셨고 넘어가 주셨기 때문이다. 엄마는 지금의 나처럼 ‘내가 어떻게 그걸 다 아니?’, ‘요즘 왜 이렇게 화를 자주 내니?’라고 되묻지 않으셨고, 그냥 듣고, 웃고, 넘기셨다. 한결 같은 태도의 엄마는 늘 예측할 수 있었고, 그런 엄마를 지지대로 삼아 다시 내 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엄마는 언제든 내 뒤를 받쳐줄 거란 믿음으로 말이다.
엄마는 나에게 단 한 순간도 불안함을 주지 않은 존재였다. 그때의 엄마 나이가 되어 돌이켜 보니 당시의 집안 상황이나 엄마의 상태가 편하지는 않았었는데 나와 동생에게 힘들다는 내색 한 번 안 하셨다(나는 종종 아이에게 ‘엄마도 힘들어’란 말을 하는 데 말이다). 나는 아이에게 내가 엄마에게 느꼈던 그런 안정감을 주고 있는 걸까.
지난 주 종영한 드라마 '슈룹'에서 김혜수가 보여준 엄마의 모습이 화제였다. 그녀가 맡은 역할인 중전 화령은 왕권을 향한 암투로 바람 잦는 일 없는 궁전에서 왕자들에게 벌어지는 위험을 누구보다 빠르게 뛰어다니며 해결한다. 상황을 예측하고 주도하는 전략을 짜기도 하고, 대신들과 카리스마 있는 논쟁을 펴기도 하며 끝내 아이들을 지켜낸다.
그런 그녀가 더 인상적이었던 점은 아이들 각자의 인생을 이해하고 지지하는 모습이었다. 넷째 아들 계성대군이 비밀의 공간을 드나들며 여장하는 걸 알게 된 그녀는 아들의 특별한 성적 지향을 이해하려 노력한다.
어떻게 해야 아이를 보호할 수 있을지 행동으로 보여주고(비밀의 공간을 전소시킨다), 동시에 아이를 인정하고 지지하는 방법을 찾아낸다(여장한 아이를 초상화로 그려주고 비녀를 선물한다). ‘화는 안 났냐’는 아이의 질문에 ‘처음 알게 됐을 때 잠시 방황은 했으나, 화 난 적 없다’고 말하며 ‘언젠가 남과 다른 걸 품고 사는 사람도 숨지 않아도 될 때가 올 거’라며 아이를 안아준다.
그리고 아이의 머리에 우산을 씌워준다. 자신의 한쪽 어깨는 비에 젖더라도 아이 쪽으로 우산을 기울이면서 말이다. 엄마의 우산 속에서 아이는 자란다. 그 우산을 크고 단단하게 만드는 건 엄마인 내 몫이란 생각을 드라마를 보며 다시 한번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