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 더봄] 연극 아카데미 학생들과 멋진 공연을 꿈꾸다

[김정희의 좌충우돌 연기도전기] 바라던 배역은 동료에게 돌아가고 예기치 않게 비중 큰 역할을 맡았다

2023-01-13     김정희 그리움한스푼 작가

「산국」극본을 받아 안고 빠른 걸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신발을 벗고 현관에 걸터앉아 극본부터 읽었다. 중간쯤 읽자 슬픔이 조금씩 밀려오기 시작했다. 눈물 한 방울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슬픔의 감정이입은 왜 이렇게 잘 되는지···.

아씨의 남편과 자식들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 같은 느낌은 사실로 드러나고, 아씨네 소작농 딸은 왜놈에게 겁간당하고···.

배역을 정하는 날, 나는 무대 위에서 낡을 대로 낡은 치마저고리를 입고 충청도 사투리를 거침없이 뱉어내는 나를 머릿속으로 상상했다. 그러나, 지도 선생님의 결정은 나의 바람과 달랐다. 사진은 해외 어느 극단의 무대로 이 글과 직접 관련은 없다. /픽사베이

1907년이 배경인「산국」은 조선이 외교권을 박탈당하고 의병 활동이 한창이었던 암울한 시기가 배경이다. 그러다 보니 기쁨은 보이지 않고 슬픔이 군데군데 터져 나온다. 단숨에 극본을 읽은 나는 끓어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며 숙제부터 했다. 산국의 줄거리와 말하고자 하는 내용, 등장인물 중 어떤 배역을 맡고 싶은지, 왜 그 역할을 하고 싶은지 이유를 적어오라는 지도 선생님의 숙제.

대본을 읽으면서 줄거리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무엇인지는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었고. 배역은 소작농의 아내이자 왜놈에게 겁탈당한 딸의 어미 역할을 해보고 싶다고 적었다. 왜냐하면 울분이 쌓일 대로 쌓인 아낙네가 거침없이 뱉어내는 거친 말들을 맛깔나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좀 더 욕심을 내면 가슴이 뻥 뚫리는 사이다 같은 대사를 신들린 듯이 쏟아내고 싶었다. 

세상이 바뀌었는데도 여전히 옛날 풍습을 고집하는 양반집 마님이나 아씨, 주인 아씨의 혀처럼 구는 아씨의 몸종, 겁탈당한 소녀 역할은 감정이입이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내가 하고픈 소작농 아낙 역의 대사를 찾아 반복해서 읽었다. 자신의 감정을 숨김없이 툭툭 내던지는 대사와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의 매력이 나를 매료시켰다. 사투리를 맛깔나게 읽어보려고 혀를 상하좌우로 돌리고 입으로 원을 그리듯이 실룩샐룩 움직였다. 

배역을 정하는 날, 나는 무대 위에서 낡을 대로 낡은 치마저고리를 입고 충청도 사투리를 거침없이 뱉어내는 나를 머릿속으로 상상했다. 그러나, 지도 선생님의 결정은 나의 바람과 달랐다. 소작농 아내 역할은 감정 표현과 리액션이 풍부한 미선이(가명)에게로 돌아갔다. 난 시대 변화를 읽지 못하고 고리타분한 명분만 뼛속에 꽉 찬 양반집 마님 역할을 맡았다. 예기치 않게「산국」에서 가장 비중이 큰 역할을 맡게 되었다.

배우는 자신이 맡은 역에 최선을 다한다. 엑스트라는 엑스트라대로 주인공은 주인공대로 자신의 배역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난 생각지 못한 마님 역을 맡았다. 비중이 큰 역할이었다.  /픽사베이

「산국」연습을 하면서 지도 선생님께 많이 들은 말은 그림을 연상하라는 것이었다. 움직이지 않고 의자에 앉아서 하는 낭독극이었기에 목소리로 많은 것을 표현해야 했다.

내가 맡은 양반집 마님의 첫 대사는 “아이구 이젠 더 이상 못 걷겠다”였는데 이 상황은 어두운 산길을 힘들게 올라와 잠시 쉬려고 바위에 걸터앉아 하는 말이기에 지치고 숨이 찬 목소리로 해야 한다. 그러니 머릿속에 지금의 상황을 그림으로 그려보고 대사를 치라는 말씀이었다.

또 움직임이 없기에 대사 한 마디 한 마디를 또박또박하게 말해서 정확하게 들리도록 해야 한다는 주문이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게 얼버무리지 말라는 것이었다. 말은 쉬운데 머리로 상황을 그려가면서 그 상황에 맞는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화나고 괘씸하듯이 말하기,

안절부절하는 상태를 표현하기,

한심하고 기가 막힌다는 느낌으로 말하기,

안타까운 마음이 드러나게 말하기,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있는 상태임을 말해주는 목소리,

강한 의지가 묻어나는 목소리,

같이 있어야 하지만 가야만 하는 책임감이 묻어있는 목소리.

이런 목소리를 내야 하는데 말처럼 쉽지 않았다. 화나는 목소리는 가능한데 괘씸하다는 목소리는 어떻게 내야 하지? 고개가 갸우뚱했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입에서 괘씸한 느낌이 들도록 소리내는 것이 어려웠다. 목소리를 낮게 깔고 힘주어 말하면 될까?

또 한심하고 기가 막히게 말해야 하는 대사, “이젠 아무도 길 아래 비켜서거나 허리를 굽히는 자들이 없는 세상이다. 임금도 모르고 반상의 구별도 못 하는 세상이 되어버렸어.” 이 대사는 고개를 쳐들고 천천히 말하면서 끝부분을 길게 소리를 내면 될까? 아니면 앞부분은 또박또박 힘있게 소리내고 뒷부분은 읊조리듯이 중얼거리면 될까? 고민이었다.

지도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목소리를 표현하는 것이 자신없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아카데미 학생들 모두 같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지도 선생님께서 대사를 치면 그 목소리에 딱 맞는 그림이 그려졌다. ‘옳거니’라고 박수를 치고 싶었다. 우리는 동료들이 대사를 읽으면 고개를 갸우뚱, 지도 선생님께서 대사를 치면 고개를 끄덕이면서 감탄사를 뱉었다. 50년이 넘는 세월을 연기와 함께한 지도 선생님의 경력이 매 순간순간 빛을 발했다. 지금 걸음마를 준비하는 우리랑 어떻게 같을 수가 있겠는가?

나는 양반집 마님의 대사 밑에 내 나름의 느낌을 적고 소리를 내서 읽고 녹음하여 들어보곤 했다. 부족하다, 뭔가 어색하다는 생각은 다음 시간이면 어김없이 맞아떨어졌다. 지도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소리를 내서 대사를 치지만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었다는 느낌 그것이었다.

그러나, 인간의 능력은 끝이 없는 것인가? 시간이 흐르고 연습 횟수가 늘어나고 지도 선생님의 교정을 받으면서 나뿐만 아니라 우리는 모두 조금씩 조금씩 변화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지도 선생님의 말씀이 무엇을 나타내라고 하는 것인지 아주 조금씩 깨우쳐가고 있었다. A는 휴지가 물을 흡수하는 속도로 빠르게 좋아지고 있었고 B는 좋아지는가 싶더니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개인차는 있었지만 뭔가 달라지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