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재 칼럼] 고용시장 공급 부족의 함정에 빠진 미국 경제
[김성재의 국제금융 인사이트] 수년 안에 해소되기 어려운 서플라이 체인 비용 상승
목조로 지어진 단독주택이 일반적인 미국에서는 집의 수리와 관리에 많은 노력과 비용이 소요된다. 이런 이유로 미국인들은 홈디포나 로우스와 같이 집 관리에 특화한 슈퍼마켓에서 DIY에 필요한 각종 도구와 정원 관리에 드는 수목을 사서 직접 작업을 한다.
그런데도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할 때는 수리공을 부를 필요가 있다. 이들 업자가 대부분 회사의 형태를 취하고 있어 ‘계약상(contractor)’이라 불린다. 간단한 싱크대의 배관을 수리할 때도 반드시 계약서를 작성하고 서명을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미국인들은 각종 계약으로 얽혀 있는 사회에서 살아간다. 심지어 부모와 자식 간에도 계약을 맺고 학비를 지원한다. 강사와 학생 사이에도 실러버스라 불리는 강의 계약서가 학기 초에 마련된다. 계약은 지켜야 하는 것이고 그 계약이 근거한 법은 신성하게 여겨진다.
그것은 노동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회사가 평생직장이라거나 직원은 회사의 머슴이라는 의식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자의에 의한(at-will) 고용계약이므로 회사는 언제든지 직원을 해고하고 직원도 대개 2주 정도의 기간을 두고 통보만 하면 언제든 회사를 그만둘 수 있다.
그런데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고용시장에서 공급 부족이 심각해졌다. 건강상의 문제로 일찌감치 직장을 그만두거나 자산시장에서 높은 수익을 얻은 베이비 부머 세대가 조기 은퇴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거기다 해외 인력의 유입에도 문제가 생기면서 일손 부족 현상이 심화했다.
퇴사한 종업원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한 채용공고 숫자가 몇 달째 1000만 개를 넘어서고 있다. 실업자의 두 배에 해당하는 숫자다. 고용시장에서 회사는 을이 되었고 구직자가 갑이 되었다. 경험이 풍부한 경력자는 원서만 넣으면 월급을 올리고 보너스까지 챙겨 전직할 수 있게 됐다.
이런 이유로 고용시장 전체에서 임금 상승은 전년 대비 5% 선에 머무르고 있지만 전직자의 경우 임금 상승이 7%를 훨씬 상회한다. 대부분 직장에서 기존 직원의 퇴사와 신규 직원 채용의 빈도가 급격히 높아졌다.
이렇게 직원의 재직 기간이 짧아지고 턴오버(turn-over)라고 하는 물갈이가 급증하면서 임금 상승의 압박이 상당히 커졌다. 여전히 줄지 않는 소비 수요에 부응하려면 회사는 높은 임금을 주고서라도 직원을 채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묵묵히 회사를 지키고 있는 직원들이 퇴사한 직원의 몫까지 맡아 일하면서 탈진 상태에 빠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많은 직장에서 이런 번아웃(burn-out) 현상이 지속되면서 생산성이 떨어지고 있다. 빈 자리를 신입 직원으로 채운다고 해도 단기에 생산성을 회복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현상은 고객을 직접 대면하는 소매·의료 등 리테일(retail) 업종에서 특히 심각하다. 일손 부족과 턴오버의 급증으로 경기가 침체에 빠진다고 해도 이런 서비스 업종에서의 임금 인상 추세는 쉽게 잦아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고용시장의 공급 부족으로 회사는 생산성 하락과 더불어 비용 상승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게 된다. 팬데믹 기간의 높은 수요 예상으로 기존에 주문한 제품이 팔리지 않고 재고로 남아 있는 상태에서 비용이 급증하면서 수익성은 심대한 타격을 입게 된다.
우선 재고 정리를 위해 빅세일을 시행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하면 판매량은 늘어나겠지만 그것이 반드시 매출 증가로 이어지지는 않게 된다. 판매 가격의 하락률이 판매량 증가율을 넘어설 경우 오히려 매출은 감소하게 될 수도 있다.
매출이 증가한다고 해도 임금을 비롯한 각종 관리비의 상승으로 수익성은 오히려 나빠질 가능성이 커진다. 금년 추수감사절을 전후한 시기 소매상의 블랙 프라이데이 매출이 사상 최고를 기록했지만 그것이 기업 가치에 장밋빛 뉴스로 작용하기는 어려운 이유다.
오히려 많은 기업이 구인난에도 불구하고 인건비를 줄여 수익성을 지키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정리해고에 나서기 시작했다. 빅테크 기업을 중심으로 경기가 좋을 때 공격적으로 늘렸던 인력 구조조정에 돌입한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국의 코로나 경제 봉쇄가 지속되면서 서플라이 체인의 비용은 여전히 높다. 가계의 왕성한 소비 수요와 기업의 고용 수요를 줄이기 위한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금리 인상으로 주택을 비롯한 자산시장은 조정세에 접어들었다.
이런 이율배반적인 환경하에서 미국의 실물 경제는 시소게임을 벌일 수밖에 없다. 에너지와 상품 가격이 안정되면서 인플레이션 압력이라는 시소의 한쪽 추가 아래로 떨어지다가도 고용시장의 불안과 자산 가격의 반등은 시소 반대쪽에 무게를 더한다.
시소의 양쪽 무게가 균형을 이루면서 경제가 안정성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이쪽저쪽으로 힘이 쏠리면서 시소의 의자에 앉아 있는 경제 주체들은 충격을 온몸으로 받고 있다. 그중에서도 기업이 받을 고통이 가장 크다. 불확실성으로 투자계획을 잡기도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현실적인 수익성 악화에다 투자 저하(underinvestment) 문제가 가세하면서 향후 미국 경제의 불황은 상당 기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고용시장의 공급 부족이나 지정학적 불안정으로 인한 서플라이 체인 비용 상승이 수년 안에 해소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자산시장의 찬바람도 생각보다 긴 기간에 걸쳐 불어닥칠 가능성을 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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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재 가드너웹대학교 경영학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