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노 칼럼] 윤석열 ‘관저 만찬’과 이태원 참사의 간극

[성기노의 정치언박싱] 尹, 25일 여당 지도부와 송년회 겸한 맥주 회동 참사 의식 월드컵 응원 메시지도 안낸 것과 괴리 ‘화끈함’과 ‘미안함’ 사이 간극은 정무적 참사 메시지, 일관성·신뢰성·시의성 근거로 관리돼야

2022-11-29     성기노 전 일요신문 정치부장
윤석열 대통령이 22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25일 한남동 관저에서 여당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 지도부와 3시간20분간 ‘송년회’를 겸한 만찬 회동을 가졌습니다. 만찬 뒤에는 ‘도어스테핑 준비로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조간신문을 다 본다’ ‘미니멀리즘의 극치’ 등의 윤 대통령 부부에 대한 ’상찬‘이 흘러나왔습니다. 대통령이 여당 지도부와 만남을 가져 격려하고 소통을 하는 자리는 자연스럽습니다. 하지만 현재 윤 대통령이 마주한 각종 국정현안 리스트를 보면 굳이 지금 여당 지도부를 불러 3시간 넘게 ‘맥주 모임’을 가지는 것이 최우선 일정인지 의구심이 듭니다. 이번 여당 지도부 만찬을 통해 윤 대통령의 일방통행식 국정운영 기조가 분명히 드러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난 23일 대통령실은 공지에서 “윤 대통령은 오는 25일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 위원 등 당 지도부를 초청해 만찬을 가질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윤 대통령은 넉 달 동안 한 달에 한 번 꼴로 여당과 단체 회동 자리를 만들며 ‘여당 보스’의 화통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야당 지도부와의 회동은 정부 출범 후 6개월 동안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윤 대통령의 반감과 적개심이 작용한 것은 아닌지 의심되는 정황도 흘러나왔습니다. 

야권 원로인 유 전 국회 사무총장은 한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이 이재명이 싫다(고 했다)는 거다. 인간 자체가 싫다, 그런 얘기를 직접 조언한 분한테서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야권 인사의 한 ‘사소한’ 발언에 대해 대통령실은 이례적으로 반박 성명을 내놓았습니다. 대통령실은 언론 공지를 통해 “윤 대통령은 최근 지인에게 그런 건의를 받은 바 없고 따라서 야당 대표를 두고 특별히 언급한 일도 없다”며 유 전 사무총장의 발언을 부인했습니다. 대통령실이 정색하고 부정한 것이 오히려 ‘제 발 저린 것처럼’ 옹색해 보입니다. 국정운영에 윤 대통령의 ‘사적인 감정’이 개입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옵니다.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 비대위 지도부와 만찬을 가진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난 하루 뒤 이번에는 다소 의아한 대통령의 메시지가 나왔습니다. 윤 대통령은 도어스테핑 중단 후 첫 페이스북 메시지로 2022 카타르 월드컵 국가대표팀 응원이 아닌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의 무기한 운송거부에 대한 경고를 선택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동안 윤 대통령은 국민적 행사나 중요한 스포츠 경기 성과 등에 대해 ‘기분 좋은’ 응원 축하 메시지를 순발력 있게 내놓았지만 월드컵을 앞두고는 아무런 메시지를 내지 않아 의외라는 반응이 나왔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0월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마친 후 퇴장하며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에 대해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한 언론에 “이태원 참사에 대한 슬픔과 애도가 이어지는 와중에 예선에서 3경기를 뛰는 축구대표팀에 대해 매번 응원 메시지를 내는 것은 윤 대통령 입장에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지 아직 한 달이 넘지 않은 시점에서 윤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월드컵 경기 응원을 하거나 메시지를 내는 것이 유가족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판단이 깔려 있었던 듯한 발언이었습니다. “아직도 윤 대통령이 이태원 참사에 대한 ‘마음의 상’을 치르고 있는 것 같다”거나 “이태원 참사에 대한 유가족과 민심의 슬픔을 같이 나누려는 대통령의 세심함이 엿보인다”는 반응도 나왔습니다.

그런데 불과 하루 전 윤 대통령이 새로 지은 한남동 관저에서 국민의힘 비대위 지도부와 만찬을 가지기로 했다는 공지가 나온 바 있습니다. 여당 지도부 만찬과 이태원 참사에 대한 대통령의 ‘심적 부담감’ 표출은 별개의 ‘사건’으로 이 두 가지가 가지는 직접적인 연결지점은 없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의 일정과 메시지가 실시간으로 생중계되다시피 하는 상황에서 이 2개의 ‘대통령 동정’은 하나로 연결되는 정치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여당 비대위 지도부를 불러 3시간 넘게 만찬을 베푸는 윤 대통령의 ‘화끈함’과, 이태원 참사 유족에 대한 ‘미안함’으로 월드컵 응원 메시지도 내지 않는다는 ‘엄중한 추모 의지’ 사이의 이 당혹스러운 간극은 언뜻 이해되지 않는 하나의 ‘정무적 참사’로 받아들여집니다. 

그 와중에 다행인 점은 공지 이틀 뒤 열린 공식 만찬이 기자단의 공동(pool) 취재 없이 진행됐다는 점입니다. 대통령실은 만찬이 진행되는 도중 별도 공지를 통해, 관련 영상과 사진 등을 공개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이태원 참사 시국에 대통령과 여당 의원들이 ‘헌법을 지키자’며 만세삼창 후 건배를 하거나 불콰해진 대통령이 의원들과 어깨를 걸고 파이팅을 외치는 따위의 ‘축제’ 장면은 없었으니 그나마 이태원 참사로 고통 받는 유가족과 ‘이태원’이 손톱 밑의 작은 가시처럼 남아 있는 민심의 고통을 헤아린 측면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럼에도 이 두 가지의 개별적 사건이 가지는 ‘정무적 참사’는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통령제하에서 대통령의 말과 행동이 가지는 무게는 천금과 같습니다. 경제에 관해 경솔한 언급을 하면 시장이 요동치기 마련이고 국가적 재난에 대해 가벼이 말을 하면 유가족과 국민들이 마음의 고통을 받습니다. 대통령이 국정운영의 최고 결정권자이자 최종 책임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통령실이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에 관해 ‘브리핑’을 하고 ‘홍보’를 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정무적 역할 가운데 하나입니다. 유독 대통령에 대한 높은 책임감과 도덕성 등을 요구하는 한국 정치풍토에서 대통령의 메시지는 정국을 좌우하는 ‘바로미터’가 되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대통령의 메시지는 엄격하게 관리되고 또한 그것은 일관성, 신뢰성, 시의성에 근거해야 합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에서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묵념하고 있다. /공동취재=연합뉴스

대통령 메시지의 첫째 덕목으로 일관성을 꼽은 것은 위기가 발생했을 때 메시지에 일관성이 결여되면 정부 대응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윤 대통령은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뒤 매일 조문을 하며 추모의 진정성을 일관성 있게 보여주었습니다.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지 아직 한 달이 안 돼 월드컵에 참가하는 국가대표팀에 대한 응원도 자제한다는 대통령실의 설명도 윤 대통령의 추모에 대한 일관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그런 윤 대통령이 그 바로 다음날 여당 지도부와 언론에 공개도 하지 않은 ‘비밀 만찬’을 가지는 그 ‘담대함’ 또는 ‘뻔뻔함’에 국민들은 적잖이 당혹스러워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윤 대통령의 ‘진심’은 과연 어디에 있는지 궁금증도 커집니다. 야당 어떤 의원들과도 6개월 동안 한 번도 만나지 않는 그 편협성과 적대감이 ‘우리 편’ 여당 의원들과는 한 달에 한 번 꼴로 만나며 ‘라면의 정’을 돈독히 하는 대통령의 본심은 도대체 무엇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국가는 어디에 있었는지, 무엇을 했는지 답해야 한다”며 절규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이상은 씨의 아버지가 윤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의 한남동 관저 만찬 소식을 들었다면 어떤 생각을 했을지 안타까운 마음이 앞섭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을 비롯한 그 어떤 정부 관계자도 아직까지 ‘진상규명’이라는 이유로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던진 여당 지도부 ‘맥주 파티’ 메시지는 적어도 그가 참사 이후 매일 조문했던 추모의 진정성과는 그 어떤 일관성도 없는 듯 보입니다. 

또한 윤 대통령은 158명이 희생된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직・간접적인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 국민들을 위로하기보다 한 달에 한 번씩 ‘우리 편’만 열심히 챙기는 모습만 노정해 국가 최고 지도자로서의 신뢰성도 잃었습니다. 무엇보다 이태원 참사에 대한 수습과 재발 방지 등에 대한 최소한의 대책이 마련되고 수습이 된 이후에 ‘우리 편’에게도 눈을 돌려 만찬을 하든 파티를 하든 하는 게 순서입니다. 윤 대통령이 던진 만찬 메시지는 시의성에 있어서도 최악이었습니다. 

윤 대통령은 만찬 자리에서 “헌법 가치에 맞는 쪽으로 가게 하면 잘 갈 수 있다”라고 말했다고 한 참석자가 전했습니다. 도대체 윤 대통령이 말하는 ‘헌법 가치’는 무엇일까요. 헌법 제 34조 6항에는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라고 돼 있습니다. 이태원 참사 158명의 희생자들은 10월 29일 그날 대한민국 ‘헌법’에 의해 그 어떤 보호도 받지 못했습니다. 하나의 헌법을 놓고 대통령과 국민들이 가지는 해석의 태도와 접근방식은 너무도 다른 것 같습니다. 대통령은 그 증오의 간극을 줄일 ‘국민통합’의 최고 책임자입니다. 윤 대통령이 관저에서 같은 편끼리 넥타이 풀고 편하게 마신 맥주의 달콤함과 아직도 구천을 떠도는 이태원 158명 영령들의 분통함이 교차하는 용산에 겨울을 알리는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성기노 전 일요신문 정치부장

경남 마산에서 태어났고 창원고와 한양대, 런던대 골드스미스칼리지 석사(언론학)를 마치고 일요신문과 에너지경제 등에서 주로 정치 분야를 취재했다. 모 정치인의 언론특보로도 활동하며 정치현장도 경험한 바 있다. 2016년 인터넷신문 피처링(www.featuring.co.kr)을 창간해서 대표를 맡고 있고 플러스정치전략연구소 소장으로 정치평론 활동도 하고 있다. 정치개혁과 시민주권정치에 관심이 많다. 이메일 주소는 newser@naver.com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