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재 칼럼] 美 경제 전반 강타할 비제도권 유동성 악화
[김성재의 국제금융 인사이트] 저물어가는 테크 기업 시대의 호황기 고물가 속 실업·경기침체 덮칠 가능성↑
신약성서 누가복음에서 한 집안의 둘째 아들은 자기 상속분의 재산을 미리 분배받아 먼 나라를 떠돌며 흥청망청 써버린다. 그 나라에 흉년이 들어 궁핍해지자 허드렛일을 하며 연명하다 비로소 고향으로 돌아온다. 가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아들을 아버지는 잔치를 벌이며 맞이한다.
그러자 그간 꿋꿋이 힘든 일을 감내하며 집안의 경제를 지탱해왔던 큰아들은 화를 내며 아버지에게 항의한다. 아버지는 동생이 죽었다가 살아왔으니 즐거워해야 마땅하다며 큰아들을 위로한다. 유명한 ‘탕자의 귀환’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데 그간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투자자들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조성된 저금리와 풍부한 유동성이 마치 화수분이나 되는 양 탕자와 같이 흥청거리며 마음껏 써버렸다. 수익성을 무시한 채 약간의 성장성만 보여도 아낌없이 돈을 투자했다.
그렇게 엄청난 규모의 돈이 폭포수처럼 테크 기업과 크립토 세계로 흘러 들어갔다. 그 결과 투자자들은 자유롭게 전 세계 국경을 넘나들며 24시간 마음껏 코인을 사고팔았다. 20대의 청년이 코인 거래소를 설립해 3년이 지나지 않아 수십조원의 자산가가 되었다.
그 청년을 금융의 천재라 떠받들며 톰 브래디와 같은 스포츠계 거성들이 뭉칫돈을 투자하고 나날이 늘어나는 자산을 보며 한껏 들떠 있었다. 플랫폼 기업으로 돈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클릭 몇 번으로 장을 보고 식당을 예약하고 음식을 배달시키고 택시를 부르는 일이 가능해졌다.
배달업체 인스타카트나 도어대시, 그리고 차량 서비스업체 우버나 리프트 같은 플랫폼 회사의 매출은 놀랍게 성장했다. 2019년에 설립된 코인 거래소 FTX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세계 3위의 규모로 커졌다. 그러나 이 모든 성장은 수익성이 뒷받침되지 않는 사상누각과 같은 것이었다.
기본적으로 투자자는 투자 대상이 현금흐름(cash flows)을 창출해야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 자산의 가치는 미래 현금흐름의 현재가치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현재가치란 그 자산이 미래에 벌어들일 현금을 시장 금리로 할인(discount)한 금액이란 의미다.
따라서 시장 금리가 매우 낮아 제로에 가까울 때는 투자에 사용한 돈의 조달비용이 낮고 미래 현금흐름의 할인도 깊지 않아 성장성에 포커스를 맞추며 수익이 날 때까지 기다릴 수 있다. 손실이 나더라도 싸게 돈을 빌려 메울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존이나 테슬라 같은 빅테크 기업이 순익이 날 때까지 몇 년을 버틸 수 있었던 이유다.
반면, 현재 생활의 질에 밀접한 연관을 가지는 에너지 산업이나 미래 생활의 질을 좌우할 교육 등 인프라스트럭처에 대한 투자는 등한시되었다. 교사나 굴뚝 산업의 근로자는 저임금을 감내하면서 묵묵히 집안의 경제를 지켜왔던 탕자의 형처럼 무시되어 왔다.
이런 상황에서 테크 기업에서는 이른바 ‘대리인 문제(agency problem)’가 심각해졌다. 경영을 위임받은 대리인인 경영자들이 수퍼 의결권을 가진 창업자의 눈치를 보면서 덩치만 키우다 다른 주주와 투자자의 이해관계는 거들떠보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재무이론에 따르면 기업 내 처분 가능한 현금과 같은 자원이 풍부할수록 대리인 문제가 악화한다. 이 자원을 바탕으로 무능하고 힘만 센 경영자의 횡포가 커지기 때문이다. 이들의 전횡은 양적완화에 기인한 풍부한 유동성이라는 환경하에서 탕자의 기행처럼 묵인돼 왔다.
이들을 중심으로 자산시장에서 돈이 급속한 속도로 유통되면서 물가를 밀어 올렸다. 실물경제의 실제 부가가치 창출이 거의 제자리에 머문 상태에서 화폐량이 급증하고 유통속도도 빨라지면서 인플레이션은 피할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결국 인플레이션을 초래한 원죄를 진 연방준비제도(연준)가 돈줄을 죄었다. 물가를 잡지 않으면 연준의 존립이 위태로워지기 때문이다. 1980년대 이후로 보지 못했던 속도로 금리를 올렸다. 금리 인상에 불안함을 느낀 연준은 시스템 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대형은행의 스트레스 테스트 강도를 올렸다.
스트레스 테스트의 결과 대형은행의 상태는 크게 우려할 상황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즉, 2008년과 같은 초대형 금융위기의 쓰나미는 오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그런데 연준은 한 가지 크나큰 착각에 빠져 있다. 2022년의 금융지형은 2008년과는 판이하게 달라져 있기 때문이다.
2008년 금융위기의 주범은 흥청망청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을 일으킨 제도권 은행이었다. 거기에 헤지펀드를 비롯한 이른바 섀도뱅킹(비제도권금융)이 가세했다. 현재는 연준과 연방예금보험공사를 비롯한 감독기관의 집중적 견제 속에서 은행권은 숨을 죽이고 있다.
은행의 BIS 자기자본비율을 맞추기 위해 돈을 대출하지 않고 지급준비금이나 역레포(repo) 거래를 통해 연준에 예치하고 있다. 문제는 금융감독의 사각지대에 위치한 섀도뱅킹이다. 이들이 테크 기업과 크립토 등 온갖 투기적 거래의 돈줄 역할을 했다.
그런데 마치 탕자가 노닐던 나라에 흉년이 왔듯이 전 세계 경제에 돈가뭄이 찾아왔다. 연준의 예상보다 긴 고강도 긴축의 여파로 자금시장의 돈가뭄이 더 심화하고 있다. 이런 유동성 악화가 자산시장 전체를 강타하면서 빅테크 시대가 저물고 있다.
테크 기업에 투자한 섀도뱅킹 업체들이 살아남기 위해 돈줄을 죄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테크 기업의 등을 떠밀어 수익성 제고를 요구하고 있다. 기업은 울며 겨자 먹기로 수천, 수만명의 직원을 하루아침에 해고하고 있다.
인플레이션이 갑자기 찾아와 상당 기간 머물고 있듯이 거대한 실업의 쓰나미도 임계점을 넘어서면서 어느 날 갑자기 경제를 강타할 것이다. 그간 테크 기업에 비해 임금 상승이 없었던 것이나 다름없었던 전통산업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서면서 생산비용은 다시 오를 것이다.
지정학적 위기는 해소되기는커녕 더 심화하면서 공급비용의 상승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결국 물가 상승속도가 저하되는 디스인플레이션(disinflation)의 진행은 약하고 경기침체는 가속하면서 미니 스태그플레이션을 보게 될 가능성이 크다. 투자자의 주의가 요망되는 이유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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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재 가드너웹대학교 경영학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