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희 더봄] 영원히 변하지 않는 위대한 로망(3)
[박재희의 그랜드 투어] 끝나지 않는 로마의 이야기 보통 사람들이 세운 위대한 제국 성스러움과 속됨이 공존하는 도시
(지난회에 이어) 콜로세움을 처음 보았을 때 받았던 압도적인 충격은 두 번째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폭군 네로를 무너뜨린 무시무시한 시민의 분노를 목격한 다음 왕은 시민의 시선을 돌리고 비위를 맞추기 위한 장치가 필요했을 것이다.
네로의 인공호수를 메운 후 세워 올린 거대한 건축물에서 로마시민들은 공짜로 나눠주는 빵을 먹고, 굶주린 맹수와 글래디에이터가 싸우고 죽는 격투와 처형을 구경했다. 정부에 대한 불만을 다른 곳을 돌리고 말 잘 듣는 고분고분한 시민을 만드는데 동원하는 3S(성풍속Sex, 스포츠Sports, 영화Screen) 우민화 산업과 마찬가지 전략이다.
콜로세움에 서는 것은 그 시대로 돌아가는 시간여행 단추를 누르는 것과 같아 지축을 흔드는 함성과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2000년 전의 로마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로마 시민을 배부르고 행복한 바보로 만들었던 콜로세움에서 한참동안 넋을 잃었다.
콜로세움을 나서니 맞은 편에 허물어진 터가 있다. 지금은 일부만 남아 있지만 ‘건축의 황제’라고 불렸던 하드리아누스의 베누스-로마 신전이다. 145m 길이에 폭이 100m, 15층 높이에 육박했다고 하니 지금도 상상하기가 어려운 정도로 거대했던 규모다.
로마 제국 전체를 통틀어 가장 크고 아름다웠다는 신전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다. 행운의 여신 ‘베누스’와 영원한 여신 ‘로마’를 위한 신전에는 두 여신의 좌상이 안치되었는데 로마가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삼은 후에는 이교도의 우상숭배로 여겨진다.
위대한 로마를 증거하던 베누스-로마 신전은 세월과 역사의 부침에 따라 철저하게 파괴된다. 마리아와 예수상을 모시는 성소로 개조된 후 9세기 지진으로 무너지자 거대한 신전의 대리석은 시민들에 의해 몽땅 도둑맞았다. 신전의 조각들이 귀족들의 별장 상식품이 되고, 값나가는 고대유물 조각으로 팔려 외국 수집상의 손에 들어간 것이다.
고대와 중세 시대를 모두 통과한 로마의 곳곳에 널린 유물은 태연한 낯빛을 하고 인간의 무지와 탐욕, 세월의 무자비함을 증명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가 로마 안에 있다. 흔히 ‘바티칸’이라 부르고, 많은 사람들이 거대한 성당, 박물관으로만 여기는 ‘바티칸 도시 국가’이다. 바티칸의 성베드로 성당은 원래 네로 황제의 경기장이 있던 자리다.
예수의 제자 베드로 성인이 그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리는 처형을 당하자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폭군 황제의 흔적을 땅속으로 처박아버린 후 성당을 건축한다. 326년부터 순교한 성인의 이름으로 불리며 자리한 성당을 1200년 후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한 이는 미켈란젤로다. 십자가 형태를 하나의 유기적인 몸으로 조각해 낸 듯 대성당 안에 들어가면 무생물 건축이 아니라 거대한 날개를 편 생명체에 안긴 느낌과 만나게 된다.
바티칸 박물관에서는 숨이 찼다. 숨 돌릴 새 없이 닥쳐오는 유물에 지치는 기분이었다. 정신없이 사람들 사이에서 흐르다가 마지막에는 누구나 시스티나 성당에 도착하게 된다. 말이 필요 없는 순간. 천정화를 그리느라 미켈란젤로의 등이 휘었다는 흔한 말은 오히려 너무 가볍게 느껴진다.
세상을 창조한 구세주가 최후의 심판을 하는 날, 우리는 모두 어디로 가게 될 것인가? 로마에서는 영원의 끝을 떠올리게 하는 장치가 많다. 영원과 그 영원에 닿으려는 인간의 마지막까지 지켜낼 것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미켈란젤로는 단테의『신곡』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했다. 단테가『신곡』에서 묘사한 산탄젤로성 역시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지은 것이다. 어찌나 부지런하고 의욕적인 건축광이었는지 고개만 돌리면 그의 건축을 만날 정도다. 황실의 영묘로 지어진 것이 전염병에서 로마를 구하는 천사들이 나타난 후 산탄젤로성으로 불린다.
로마의 건축물은 하나같이 이렇다 천 년, 2천년을 살아남아 지나간 세월의 이야기를 켜켜이 품고 있다. 요새처럼 보이는 성으로 향하는 다리가 아름답다.
외국인은 로마의 상징으로 콜로세움을 떠올리지만 로마사람들은 보르게세 미술관을 가장 로마적이라고 꼽는다. 교황과 추기경을 배출한 보르게세 가문이 수집한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 미술품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다.
보르게세 가문 시피오네 추기경의 작품 수집 방식은 상상을 초월한다. 화가의 작품을 빼앗으려고 탈세혐의를 씌워 거래하고, 죄를 저지른 화가의 사면을 미끼로 그림을 요청하고 강탈하는 추기경을 상상할 수 있나?
여튼, 나는 그가 집착한 화가 카라바조의 작품을 보고 싶었다. 카라바조는 놀라울만큼 사실적이다. 그가 그린 인물과 눈이 마주치면 그림이라는 생각을 잊을 만큼 생생하니까. 〈병든 바쿠스〉를 그린 카라바조, 다윗에 의해 목이 잘린 골리앗의 얼굴에 자신의 초상을 그려 넣은 천재 화가는 로마로 돌아오지 못하고 타국에서 행려병자로 삶을 마감했다.
죽음까지 자신을 똑바로 마주해 바라본 카라바조의 그림을 뒤로하고 로마를 떠나던 날, 카라바조가 자신에게 로마로 돌아가는 것은 생명을 이어가는 의미라고 했다는 말을 떠올렸다.
미천한 신분의 보통사람들이 세운 위대한 제국 로마, 성스러운 것과 가장 속된 것이 나란히 놓여있는 도시 로마, 세월을 이기고 살아남아 모두가 그의 후예라고 주장하는 로마의 것들 로망, 로마에서 내가 찾아야 할 것은 앞으로 변할 그 무엇에 대한 대비가 아니라 영원히, 결코 변치 않을 로망, 로마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