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벌러 간 남편 아이는 나 홀로··· 독박육아에 지쳐가는 '맘'

OECD 국가 중 노동시간 상위권 여성, 육아휴직 기간도 더 길어 장시간 노동, 저출산 문제 확대 이젠 '남성 육아휴직' 확대해야

2022-11-23     김현우 기자
아이의 손을 잡고 있는 부모 / 픽사베이

# 아침 6시 출근에 야근하고 회식하면 밤 10시는 넘어야 남편이 집에 와요. 그 시간 동안 아이 육아는 오로지 제 몫이죠. 아직 아이라 거실에 혼자 있는 상황조차 불안해서 매분 매초 지켜봐야 해요. 내 자식이니까 한없이 이쁘죠. 그런데 몸이 고달프고 내 인생이 지워진 느낌은 어쩔 수 없어요. 

'독박육아'로 고통을 호소하는 아기 엄마가 늘고 있다. 대체로 결혼 후 남자가 일하고 여자는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가정이 대표적인 '독박육아' 사례로 꼽히는데, 남성의 장시간 노동이 저출산 문제로 확대될 수 있는 한국 사회의 그늘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23일 여성경제신문 취재에 따르면 최근 한부모협회와 일부 '맘카페'에선 독박육아 문제로 상담을 원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혼자 육아를 떠안은 엄마의 고통을 호소하는 내용이다. 독박육아에 시달리는 엄마는 국내 장시간 노동 문제 개선이 시급하다고 제언했다.  

약 300만 명 회원이 가입한 국내 최대규모 맘카페 '맘스홀릭베이비'에 게재된 독박육아 사례를 보면 아이디 'sh***' 회원은 "친가는 지방에 있고 남편은 경기권으로 출·퇴근한다"며 "아침 일찍 나갔다가 업무 시간이 끝나도 잦은 회식과 야근 등에 시달려 평균 밤 10시는 돼야 퇴근한다. 사회생활도 해야 하고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지만 그 긴 시간 동안 육아는 나 혼자 맡아야 한다. 결국 아이가 클 때까지 내 인생은 지워진 느낌이다. 노동 시간이라도 줄면 부담이 덜할 것 같다"고 호소했다. 

2020년 기준 OECD 국가 평균 근로시간 /통계청, 여성경제신문 재구성

2020년 기준 통계청 조사를 보면 한국 근로자 연평균 근로 시간은 1908시간으로 독일·네덜란드·덴마크 등 일부 유럽 국가의 연평균 근로 시간이 1400시간 미만인 점과 비교하면 상당히 길다. 옆나라 일본은 1500시간, OECD 국가 평균 연평균 근로 시간은 1600시간대다. 

한국의 높은 근로 시간이 독박육아·저출산 문제로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은 스테파노 스카페타 OECD 고용노동사회국장도 언급한 바 있다. 지난 2019년 OECD가 보건복지부와 공동 진행한 '2019 국제인구콘퍼런스'에서 스테파노는 "한국 저출산의 가장 큰 원인으로 일과 가정 모두를 지키기 어려운 한국 노동시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 여성이 임신이 가능한 기간 즉 가임기간에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출생아 수를 통계청이 분석한 결과 지난해 0.8명으로 확인됐다. 10년 전 2012년엔 1.30명인 점과 비교하면 눈에 띄게 낮아진 수치다. 출생아 수 또한 2012년 한 해 동안 약 48만 5000명, 지난해엔 약 26만 1000명으로 두 배가량 줄었다.

육아휴직 비율을 보면 여성이 독박육아를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버젓이 드러난다. 지난해 남성과 여성의 육아휴직 비율은 여성이 73%, 남성은 24%로 조사됐다.

2012년, 2022년 국내 출산율 비교 /통계청, 여성경제신문 재구성

이정희 한부모협회 사무국장은 본지와 통화에서 "대체로 육아휴직은 여성이 더 길게 써야 하고 남성은 나가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이 정책으로까지 이어진 상황"이라며 "독박육아를 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결국 여성의 경력 단절로 이어지게 되고 아무리 제 아이를 돌보는 일이지만 우울증과 삶의 질 하락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점을 고려할 땐 정책적 개선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저출산 제도'를 대폭 손봐 올해부터 새로 도입했다. 4~12개월간 육아휴직급여를 기존 통상임금의 50%, 월 최대 120만원에서 통상임금 80%, 월 최대 150만원으로 늘렸다. 자녀를 둔 부모가 모두 육아휴직을 사용하면 통상임금 100%, 월 최대 200만~300만원을 지원한다. 0~1세까지 영유아가 이용할 수 있는 어린이집 보육료 47만원, 양육수당 15~20만원도 올해부터 통합 50만원 지원으로 확대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새로운 저출산 제도가 도입돼도 독박육아를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관계자는 본지에 "남성의 육아 참여율을 높이는 정책이라고 하지만, 남성 육아휴직 급여 수준이 높은 3개월에 그칠 것"이라며 "결국 나머지 기간에 여성 혼자 육아를 짊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나경원 저출산고령위원회 부위원장은 이날 첫 저출산 대책 관련 회의를 소집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육아휴직, 주거 지원, 세제 혜택 등 각 부처의 인센티브 강화 방안을 안건으로 논의했다. 나 부위원장은 "아이를 낳는 것이 고난의 시작이 아니라 행복의 시작이 되도록 하겠다"며 "주택·일자리 등 생애주기 전반에 걸쳐 종합적 차원에서 제대로 된 저출산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