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미옥 더봄] 하루를 살아도 너(酒)와 함께 살리라(6)
[송미옥의 살다보면2] 후회도 미련도 살아있으니 하는 거지 시계 바늘처럼 돌고 돌다가 너털웃음 웃는~ 노래처럼 사는 게 인생이지
(전편에 이어~ 긍정 마인드의 한 어르신의 구술집 한쪽을 열어서 편집했다.)
나는 누구인가?
글쎄, 내가 나를 모르는데 네가 나를 알겠느냐~라는 노래가 딱 내 노래다.
내 이름은 윤**, 80중간 나이다. 그런데 새해(2008년) 대통령이 지팡이를 하사하신다고 연락이 왔다. 백세 선물이란다. 공무원이 서류하러 왔다가 백세 어르신 중에 가장 예쁘고 젊다고 말했다. 인생은 진짜 열심히 살았는데 지금의 나는 가짜로 산다.
시장에서 구걸을 하며 산 기억부터가 내 삶의 시작이다. 부모님과 함께한 것 같은 어렴풋한 기억은 있지만 너무 흐리다. 이웃 사람들이 말하길, 부모 따라 피난 내려와 이 동네로 장 구경 왔다가 버려졌거나 길을 잃었을 거라 했다.
그 시절엔 고아도 거지도 많아서 큰 부끄럼은 없었다. 한 국밥집 주인에게 이끌려 설거지를 하며 살았다. 배고픔만 면하면 좋았으니 돈 구경은 못 해도 고마웠다.
손님에게 추행도 많이 당했다. 누구에게 하소연할 이 없으니 서러웠다. 열여섯 살 즈음 첫 임신을 했는데 아이 애비는 순사(지금의 경찰)였다.
배가 불러오니 주인이 눈치를 채고 캐물었다. 주인이 그에게 뭐라고 했는지 그 이후론 발길을 끊었다. 부른 배를 안고 설거지하다가 기어들어가 혼자 아이를 낳았다. 아들이었다.
아이는 장애가 있었다. 죽으라고 엎어놓고 며칠을 울었다. 안 죽어서 젖을 물렸다. 식당 주인이 그 순사에게 돈을 좀 받았는지 방 한 칸을 만들어 줘서 아이 키우며 일했다.
아이가 다섯 살 즈음인가 누군가의 소개로 삼처(세 번째 부인) 자리인 이곳으로 시집을 와서 또 오 남매를 낳았다. 데리고 온 아이와 둘째 부인이 낳은 아이 둘. 합해서 여덟의 자식을 키웠다.
삼처 자리로 들어간 이 집은 땅이 꽤 있었다. 이 주위에 개간한 땅은 모두 이 집 땅이었다. 내가 가짜라는 말은 이렇다. 첫 부인은 오자마자 병들어 죽고 두 번째 부인은 아이 낳다가 죽었다. 모두 뼈 빠지게 일하다가 골병들어 죽었을 것이다.
나는 원래 윤가였는데 이 집에 와서 박가가 되었다. 그 당시엔 주민등록증 이런 게 없었다. 부인이 죽으면 시신을 뒷산에 묻고 더 깊은 산속에 사는 가난한 집 처녀를 재처로 들이곤 했다. 그래서 둘째 부인도 나도 첫째 부인 이름으로 평생을 산 거다.
전쟁 끝나고 한참 후인 60년도인가, 어느 날 면사무소에서 이 산속까지 호구조사를 해갔다. 나는 예외 사연이지만 그렇게 민증을 한꺼번에 만들다 보니 실제는 나이차가 많은데 생년월일이 같은 사람도 많았다.
삼처로 들어와 살던 어느 해 첫 아이를 낳았다. 미역 사러 나간 남편은 노름판을 기웃거리다 3일 후 빈손으로 돌아왔다. 그다음 출산부터는 미역국은커녕 당일에도 몸을 홀로 추스르며 오후엔 김매러 나갔다. 깊은 산속에서 주어진 자식을 그렇게 다 키웠다.
새벽부터 새벽까지 손에서 일이 떨어질 날이 없었다. 하물며 남편이 지나가기만 했는데도 신기하게 애가 만들어지니 죽을 지경이었다.
늘그막에 영감은 10년을 중풍으로 누워 지냈는데 젊어서 하던 폭행을 누워서도 했다. 어느 날 때리던 매를 빼앗아 이불을 뒤집어씌우고 장작 패듯 해버렸다. 그때 일을 생각하면 저절로 웃음이 난다.
오랫동안 쌓인 한이 그때 다 풀어져서 그런가 이리 오래 살고 있다. (한 어르신 일생의 일부분이다. 며칠에 걸쳐 울며 웃으며 구술하셨다.)
윗골 사는 두 어른은 보일러가 고장 나도, 티브이가 안 나와도, 캄캄한 밤길을 걸어 내려오셨다. 누군가가 나를 지켜준다는 생각도, 누군가를 위해 무엇을 한다는 것도 행복한 일인가 보다. 그들은 산을 돌아치며 온갖 약초를 꼬고 찌고 말려 술로 법제한 조약을 만들어 아들처럼 챙겼다. 자연의 모든 것과 술은 궁합이 잘 맞아 약술이 되었다.
당시에 귀농 붐이 일어 이 골짝에도 네 가구가 새집을 멋지게 지어 이사를 왔다. 다음 해 세 부인이 남편만 두고 도시로 돌아갔다. 서서히 나의 잔소리는 부활했고 남편은 혼자 남은 그들이 부럽기 시작했다.
(술과 함께 살다 간 남편 이야기는 여기서 잠시 쉬었다가 다시 이어가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