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세자님 시간 맞추기 어렵네'···재계 달라진 빈살만 맞이

빡빡한 시간 빼보니···17일 밤 롯데호텔 유력 이재용 목요일 재판 보통 5시 넘어야 끝나고 우호 관계서 경쟁 구도 된 SK그룹선 온도차

2022-11-16     이상헌 기자
2022년 11월 15일 발리 누사두아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모하메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AP=연합뉴스

'왕세자님 방문을 위해 호텔까지 비워놨는데 막상 미팅 시간을 맞추기 어렵다.'

사우디아라비아 네옴시티 프로젝트 동반자에서 부산엑스포 유치 경쟁자로 떠오른 빈살만 왕자를 맞이하는 재계의 볼멘 소리다.

16일 외교가에 따르면,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17일부터 1박 1일 (또는 2일)의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한다. 전반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방한에 이어 올해 하반기 가장 큰 외교 이벤트다.

왕세자 방한은 당초 확정된 게 아니었지만, 15~16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상황이 급변했다. 빈살만 왕세자는 정상회의를 마치고 일본을 방문하기 전 한국에서 잠시 머물기로 했다.

먼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그의 숙박을 지원하기 위해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을 통째 비웠다. 17일 새벽 2시경 도착할 왕세자는 롯데호텔 이그제큐티브 타워 로열 스위트룸에 머물 예정이다. 사우디측 수행단 역시 400여개 객실을 사용한다. 왕세자 객실 에스코트는 당연히 신동빈 회장이 맡는다.

롯데호텔 로열 스위트룸은 2개의 침실, 응접실, 파우더룸, 드레스룸, 화상회의가 가능한 별도 회의실, 홈바, 건식 사우나 등을 갖추고 있고, 전용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일반 투숙 고객들과 동선이 겹치지 않는다. 사우디측 수행단 일부는 이미 롯데호텔에 투숙한 상태로 전해졌다.

서울 중심에 위치해 어느 곳이든 접근성이 높은 롯데호텔은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 프랑수아 올랑드 전 프랑스 대통령,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립자, 데이비드 베컴 등 주요국의 정상은 물론 유명 인사들이 머문 곳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최근 네옴시티 건설 프로젝트라는 역사적 대장정에 돌입했다. /구글어스

빈살만 왕세자 영접에 재계가 극진한 이유는 다름 아닌 1조 달러 규모의 네옴시티 프로젝트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사우디 왕국은 15년 장기 경제개발 계획의 일환으로 해당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며 삼성물산·현대건설 컨소시엄이 지난 8일 '더라인(The Line)' 터널 공사 첫 삽을 떴다.

왕세자의 국내 일정은 숙소 카드를 거머쥔 신동빈 회장이 전반적으로 케어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2019년 왕세자 방한 당시 5대그룹 총수와의 미팅을 주도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의 만남이 이뤄질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대통령의 부분 사면 조치로 지금도 경영권 승계 관련 재판을 받고 있는 이 회장은 매주 목요일 서초동 법정에 출석해야 한다. 삼성그룹 한 관계자는 "재판이 매번 오후 5시가 넘어 끝나는 점을 감안하면 17일 일과 중 만남은 어려울 수도 있다"고 말했다.

17일 저녁 또는 18일 오전 떠나면
이재용 회장과 공식 만남 어려워
늦은 저녁 롯데호텔 만찬 가능성

또 빈살만 왕세자가 첫째 날 저녁이나 이튿날 오전 중 일본으로 떠나면 이 부회장과의 만남은 불발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18일 오전엔 경기도 용인 호암미술관 인근 선영에서 이병철 회장의 35주기 기념식이 열린다. 이 회장 취임 후 처음 갖는 이번 추모식은 이병철 회장을 창업회장으로, 이건희 회장을 선대회장으로 정하는 호칭 정리가 이뤄지는 중요한 자리다.

앞서 3년 전 빈살만 왕세자와 재계의 만남은 이 회장이 주선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 만찬이 끝난 직후 승지원으로 이동한 왕세자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과 티타임을 겸한 환담 시간을 가졌다. 이런 전례를 감안하면 첫날 밤 롯데호텔에서 비공개 만남이 이뤄질 가능성이 없지 않다.

지난 7월 8일 개최된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위원회' 1차 회의에서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지난번 멤버가 그대로 모일 가능성은 희박하다. 미국의 셰일 오일 증산으로 저유가가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건설, 에너지·화학 분야 협력이 절실했던 2019년대와는 달리 유가 급등으로 사우디 왕실 재정이 넉넉해진데다 2030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를 두고도 양국이 맞붙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제2차 석유파동 때부터 사우디와 특별한 우호 관계를 이어온 SK그룹은 사정이 복잡하다. 한덕수 국무총리와 함께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위원회' 공동대표를 맡은 최태원 회장은 "(지금까지) 접촉한 곳 중에 사우디 지지 발언을 했다가 돌아선 곳도 있다"며 날 선 각을 세워왔다. 주도면밀하기로 유명한 빈살만 왕세자로선 불편함을 느낄 만한 발언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지난 13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B20 서밋'의 기조연설자로 참석해 빈살만 왕세자와 인사를 이미 나눈 사이면서도 제2의 중동 붐을 성장의 지렛대로 삼고 있는 만큼 미팅 자리만 마련된다면 만사를 제치고 참석할 것으로 보인다.

정 회장은 현대차그룹을 '종합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 재탄생시키기 위해 네옴시티 프로젝트를 적극 활용한다는 계획을 세워왔다. 현대건설을 인프라 건설 주도업체로 참가시키는 동시에 자율주행, 스마트물류, 도시 내 항공운송시스템(UAM) 사업에 전체 계열사를 진출시킨다는 구상이다.

이밖에도 현대가 현대중공업그룹을 이끄는 정기선 HD현대 대표도 사우디와의 사업에 달아오른 상황이다. 최근 칼리드 알팔레 사우디아라비아 투자부 장관과 환담 자리에서 정 대표는 사우디 아람코와 추진해온 합작조선소, 엔진합작사 등 협력사업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