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희 더봄] 영원히 변하지 않는 위대한 로망(2)

[박재희의 그랜드 투어] 로망이 된 로마의 것(Roman)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성스러우며 가장 속된 욕망

2022-11-10     박재희 작가·모모인컴퍼니 대표

(지난회에 이어) 테르미니역에 도착했다. 드디어 로마 입성이다. 처음 로마에 왔을 때가 기억난다. 내내 숨이 찼었다. 유럽에 갈 때 나도 모르게 가지고 간 마음 ‘여길 언제 다시 오겠어?’가 문제였다.

로마 여행서와 가이드북에는 ‘반드시 가야 할’ 유적지가 너무 많다. 많은 여행자가 그렇게 하듯 콜로세움 지역, 바티칸 시국, 스페인 광장 지역으로 나눠서 ‘꼭 봐야할 곳’ 리스트를 만들고 부지런하게 돌았으니 로마를 제대로 볼 수는 없었다.

로마에서 며칠을 보내고 떠나던 날 극도로 초조하고 아쉬웠던 감정이 잊히지 않는다. 문명의 증거물에 감탄하느라 기진맥진한 채로 돌아가야 한다니. 괴테의 말을 빌려야 그때 내 마음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로마는 크다. 정말 너무 너무 크다.”

 

로마 올드 타운 /게티이미지뱅크

두 번째 로마에서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차분해지기 위해 일단 속을 채우기로 했다. 마음가짐도 마음가짐이지만 배가 고프기도 했다. 늦은 시간에도 노란색 간판을 밝히고 있는 프랜차이즈 매장에 들어가 줄을 섰다.

로마에서 첫 식사 장소로는 단연코 테르미니역 맥도날드다. 매장 구석에 2400년 전 세워진 로마 최초의 성벽 일부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두께만 4m가 넘고 건물 5층 높이라 한니발조차 로마 공략을 포기하게 만들었다는 세르비우스 성벽의 잔해와 함께 여행을 시작하다니 그야말로 여행자답지 않은가.

로마의 일곱 개 언덕을 둘러쌌던 성벽을 허물어버린 사람은 율리우스 시저다. 오만하고도 위대한 정복자 시저는 성벽을 허물며 로마는 이제 세계의 주인이 되었으니 성벽 뒤에 숨을 이유가 없다고 했다나 뭐라나.

팍스 로마나 시대를 포함해서 로마는 거의 300년간 성벽이 없는 제국의 수도였다. 벽이 없는 로마를 상상해 본다. 로마 시내 곳곳에 아우렐리아누스 성벽이 남아 있다. 3세기에 게르만을 막기 위해 세운 성벽은 서고트족 침략에서 로마를 성에 갇힌 신세로 만든다. 방어를 위한 벽이 멸망으로 이끈 꼴이다.

벽은 로마를 지키지도 강하게 하지도 못했다. 로마의 힘은 벽이 아니라 길이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말이 그 상징 아니던가.

 

로마의 수도교 Parco Degli /게티이미지뱅크

로마는 길을 건설하여 군사와 물자를 이동시켰다. 아피아 가도가 최초의 길이다. 312년에 만들어진 아피아 수도 역시 최초의 수로, 물의 길이다. 로마를 로마가 되게 만든 길을 걸으며 난 수도교를 떠올렸다. 유럽의 대부분이 실은 로마 제국이었다는 사실의 증거가 되는 가장 상징적인 건축물은 수도교라는 생각이다.

로마의 땅이라면 어디든 물을 공급했다는 사실은 단순하지만, 혁명적인 발상이 아닌가. 물은 먹고 마시는 생명수로 성스러운 동시에 씻고 담그는 목욕탕을 채우는 가장 사치스러운 세속의 상징이다.

중력을 이용하여 일정한 각도를 이루는 건축물을 지어 생명이자 욕망이 되는 물을 공급한 제국, 로마. 로마 시대 공중목욕탕은 서민의 궁전이라고 불릴 정도로 화려하고 인기 절정이었던 종합 사교 공간, 쾌락의 공간이었다.

로마에서는 생명을 이루는 가장 성스러운 것이 가장 세속적인 욕망과 다르지 않았다. 수십 미터 높이로 솟아오른 수도의 석조 아치가 올려주는 대리석 물길이 다리로 이어져 구석구석 생명과 쾌락, 욕망을 흘려보냈다.

 

유럽 전역 로마 제국의 상징적 건축물 수도교 /게티이미지뱅크

로마의 1000년이 포로 로마노(Foro Romano)에 있다. 팔라티노 언덕에서 무너진 건물과 로마 왕정과 공화정 그리고 제정 로마의 수도에 이르는 시간의 침묵을 바라보다가 본격적으로 길을 헤매기로 했다.

포로 로마노보다 길을 잃기에 더 좋은 곳은 없다. 애초에 정해진 길로 가는 것이 불가능한 공간이다. 어디를 목적하고 가더라도 사방에 거대한 역사의 증거가 떡 버티고 끌어당긴다. 금세 숨이 찬다.

다신교를 믿던 로마에서 신에게 지어 바친 수많은 신전, 시저의 극장과 그가 살해당한 원로원에 그를 화장했다고 알려진 장소, 세상 모든 길이 이곳에서 시작되었다고 표기해둔 황금 이정표 대리석 기둥부터 베드로와 바오로 성인이 투옥되었던 장소에 심지어 로마를 건국한 로물루스의 무덤이라고 주장하는 곳까지. 헤매며 걷다 보면 촘촘한 시간에 켜켜이 뒤덮인 사건으로 현기증이 일어날 정도다.

콜로세움에서 포로 로마노를 관통하는 사크라(성스러운 길) 정 중앙에 위치한 티투스의 개선문을 지났다. 콘스탄티누스의 개선문과 세베루스의 개선문, 다른 개선문, 다시 개선문을 지나 아우구스투스의 영묘에 닿았다. 영원하리라 믿고 바랐을 권력과 영웅은 겨우 돌무더기를 남겨 평생 월계관을 쓰지 않고 민심에 신경을 쓰며 신중했던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제단을 마주하고 있었다.

 

포로 로마노(Foro Romano) 고대 로마 시대의 광장 /게티이미지뱅크

콜로세움은 네로의 인공호수가 있던 자리에 세운 것이다. 로마의 대화재를 시작으로 무너지기 시작한 네로 왕권의 상징이던 황금 저택을 허물고 인공호수를 메워 로마 시민의 공간으로 만들어 분노하는 로마시민의 비위를 맞춰준 셈이다.

공짜로 빵을 나눠주는 곳이었으니 생명의 장소였고 피를 튀기는 격투, 처형을 구경거리로 극단의 쾌락을 제공했다. 생명이자 타락의 성소였던 콜로세움의 76개 출입구를 통해 5만 명 관객이 퇴장하는 데 15분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2000년을 버틴 로마 건축물이 지금도 경이로울 뿐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