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연말까지 용산구 장사 금지?'···애도 기간 연장에 상인 혼란

45개 행정구역 전부 애도 구역 용산구청 "직원 대상 애도 기간" 체육 수업 중단시켜 구민 항의

2022-11-07     오지운 인턴기자
지난달 30일,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용산구 내에서 자체적으로 애도 기간을 12월 31일까지 갖겠다고 공지했다. /용산구청 홈페이지

"용산구만 연말까지 연장됐나요? 용산구는 너무 광범위해요. 12월 31일까지 장사를 하지 말라는 건지, 손님이 와도 조용히 시키라는 건지 굉장히 모호하네요."

서울 용산구 한강로1가에서 꽃집을 운영하는 A씨는 3일 현장을 방문한 여성경제신문 취재진에게 이렇게 전하며 용산구청의 결정에 난감한 기색을 보였다.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용산구 내에서 자체적인 애도 기간을 연말까지 갖겠다고 선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용 대상과 정확한 애도 방침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 상인들의 혼란이 야기됐다.

혼란은 '이태원 사고에 따른 용산구 대응 방안'에서부터 시작됐다. 지난달 30일 박희영 구청장은 이태원 참사로 인한 사상자와 유족에게 깊은 애도와 위로를 전한다며, 정부의 수습과 후속 조치에 용산구가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는 내용을 구청 홈페이지에 공지했다.

그런데 행정 대응 방안이 구체적이지 않아 논란을 불렀다. 시급하지 않은 관내 행사와 단체활동을 중단하겠다는 구청장의 선언은 누구를 대상으로 하는 것인지, 어떠한 행위를 금지하고 어떤 행위를 자제시키는 방침인지 알 수 없다.

애도 기간 적용을 받는 행정구역이 너무 넓다는 지적도 나왔다. 용산구는 압사 사고가 발생한 이태원1동을 포함해 한남동·갈월동 등 45개의 행정구역으로 이뤄져 있다.

A씨는 "애도 기간의 취지는 연말까지 좀 자제하자는 좋은 의미에서 연장한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생업이기 때문에 정부 지침 여파가 빠르게 체감되죠"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어 A씨는 "코로나 때 너무 힘들어서 펀딩도 많이 받고 빚을 많이 졌죠.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버텼고, 이제 좀 좋아져서 다시 열심히 해야겠다 다짐했어요. 그런데 이태원에서 또 이렇게 되면 문을 닫을 수밖에 없어요"라며 안타까워했다.

 

용산구청은 이태원2동, 보광동, 이촌1동, 이태원1동 총 네 곳의 자치회관에서 운영하는 모든 프로그램을 중단했다. /용산구청 홈페이지

용산구청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연말까지의 용산구 자체 애도 기간은 구청 직원들이 근조 리본을 착용하는 등 직원을 대상으로 한 애도 기간"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구청은 11월 30일까지 이태원2동, 보광동, 이촌1동, 이태원1동 자치회관의 모든 프로그램 운영을 중단시키는 등 시민을 대상으로 권고 방침을 내렸다.

더불어 용산구청은 아동 및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체육 수업을 실시하는 산하기관에 돌봄 수업을 중단시킬 것을 권고해 지역 구민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시민 불편과 논란이 가중될 것을 우려한 용산구청은 중단된 프로그램을 7일부터 재개하겠다는 보도자료를 4일 저녁에야 게시했다.

용산구 상인들은 경찰력 배치가 엉뚱한 곳에만 집중된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사고 지점 인근에서 환전소를 운영하는 B씨는 3일 현장을 방문한 취재진에게 "2일에 대학생들이 이태원역을 중심으로 침묵시위를 진행했다. 그런데 도로를 점령했다는 신고를 받았다며 갑자기 경찰 버스가 몰려왔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어 B씨는 "학생들이 기껏해야 피켓 하나씩 들고 서 있었고 폭동을 일으키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럴 때만 경찰이 빨리 온다"고 말하며 지자체의 행정 조치에 불만을 표했다.

참사 현장 인근의 환전소 사장님은 주변에 꽃집이 없어서 급하게 꽃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오지운 인턴기자

2020년 5월 이태원 클럽에서 코로나19 집단 감염 사태가 발생하며 이태원 상인들은 한 차례 어려움을 겪은 바 있다. 감염이 지역 확산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이태원발 코로나'라는 명칭으로 동네에 낙인이 찍혀 이태원 거리는 한동안 적막감이 감돌았다.

이태원에서 이불 등을 판매하는 C씨는 "사고 당시 현장에 있었고 모든 광경을 목격하며 구조활동을 도왔다. 그날 일이 너무 끔찍해서 기억하고 싶지 않고, 생각만 해도 너무 슬프고 힘들다"고 말했다.

또 다른 상인 D씨는 "심리적으로 저 같아도 더 이상 이태원에서 약속을 안 잡을 것 같아요. 이렇게 되면 문 닫을 수밖에 없죠. 누구의 탓도 아니지만 장사하는 입장에서는 경제적인 압박이 오면 굉장히 힘들거든요"라고 말했다. D씨를 포함한 용산구 상인들은 내년 봄이 와도 상황이 좋아지지 않을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태원에서 술집을 50년 동안 운영해온 E씨는 이제 장사가 잘 안될 수도 있는데 어떡하냐는 취재진의 걱정스러운 질문에 오히려 미소 지으며 취재진을 다독였다.

E씨는 "이제 당분간 또 안 되는 거지. 생계는 할 수 없지.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되면 되는대로 살아야지. 그래도 (상인들) 생각해줘서 다행이네"라고 말했다.

지금도 이태원에는 참사로 인한 슬픔에 젖어있는 상인들이 많다. 그 어느 때보다 인파가 몰렸던 참사 당일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고 했다. 밤에는 잠을 잘 못 자고 귀에는 사이렌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며 트라우마를 겪고 있었다. 그렇게 상인들은 10월 29일에 멈춘 이태원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