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미옥 더봄] 하루를 살아도 너(酒)와 함께 살리라(5)

[송미옥의 살다보면2] 기분 좋게 마신 술은 명약이 되고 한잔 술에 취해 그대 이름 불러주니 할머니도 꽃으로 피어났다

2022-11-09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전편에 이어) 지인이 소개해 준 땅은 경매에서 한 번 유찰된 땅이었다. 동네 사람들의 도움으로 우리가 낙찰받았다. 이 경험으로 경매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우리 고유의 집은 초가삼간 집이다. 한지붕 아래서 대가족이 살았고 동물과 함께 온기를 나누고 먹거리를 나누고 어울려 살아왔다. 내가 살던 집도 그런 모양새였다. /게티이미지뱅크

이곳의 위치는 400고지 정도 되는 산속의 옹달샘 같은 숨은 지형이다. 저번엔 700고지 산꼭대기라 시야가 탁 트였는데 이번엔 콕 처박혀 있어서 또 새로웠다. 위쪽으로 독거노인 몇 분이 살고 계셨다. 우리는 다 허물어져서 고대 건축물같이 손으로 빚어 올린 울퉁불퉁한 흙벽만 남아 있는 집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집 앞엔 개울이 있어서 물은 마르지 않고 흘렀다. 사랑으로 어루만지면 온기와 함께 좋은 집으로 태어날 것 같은 애잔한 정이 갔다. 답사 간 날, 마당에 텐트를 치고 잤는데 잠이 잘 왔다.

 젊은 부부가 깊은 산속으로 이사 왔다는 소문은 금방 퍼져 나갔다. 하나 둘 사람 구경을 왔다. 이곳도 입주 선물로 술병을 들고 왔지만 그나마 크기가 작았다. 다 쓰러진 집을 고쳐 산다 하니 우리가 불쌍해 보였나 보다. 1km근방에 사는 이웃들이 무료한 나날에 좋은 놀잇감을 찾은 듯 아침마다 올라와 집 고치기를 도와주었다.

초가삼간 모양이라 온돌방 한 칸에, 화장실을 넣은 주방 한 칸, 방문만 열면 마당인 구조였다. 그들은 산에서 황토를 져 나르고 나는 개천에서 돌을 주워 날랐다. 이웃들이 자기네 창고에 있던 쓰다만 건축재료를 다 갖고 나왔다.

시골집 짓기엔 일가견이 있는 기술자들이라 보수를 드리려고 하면 오히려 섭섭해 했다. 하긴 보수 받기가 애매한 것이 잘 나가다가 술판이 벌어지면 그날 일이 끝나는 꼴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부지런히 술상을 차려 대령했다. 참 이상한 것은 술상은 하루도 쉬지 않고 차려지는데 남편의 몸은 점점 힘이 쌓여 갔다.

 

좁은 마당에 우선 쉬었다 가는 벤치를 만들고 나중엔 칸막이도 설치해 바람을 막았다. 온갖 동물들이 주인을 따라다니며 아침밥 달라고 아우성 중이다. /사진=송미옥

이곳에도 난감한 일이 있었다. 이번엔 윗골 할머니 때문이다. 90세가 가까운 그 어른은 잘 살던 옛날엔 이 골짝의 땅이 모두 당신네 땅이었다. 세월이 흘러 하나 둘 다 사라졌지만 마음만은 아직 당신이 지주였다.

동이 트면 출근하듯 오르내리며 간섭을 했다. 또한 우리가 자식같이 편했는지 노크도 없이 방문을 열곤 했다. 장날이면 먼동이 트기 전 기침소리를 하며 들어오셨다. 머리맡에 앉아 다리가 아프네, 허리가 아프네 하며 소곤거렸다. 그러면서 자긴 조금만 쉬었다 갈 테니 신경 쓰지 말고 자라고 했다. 잠이 오겠나? 하하하.

훗날 보니 꼭대기 집에서 버스정류장 내려가는 길목인 우리 집터는 쉬었다 가는 중간 지점이었다. 여기서도 한 시간을 더 걸어 내려가야 하니 말이다. 오랫동안 쉼터였던 자리를 우리가 차지한 셈이라 우리는 마당에 쉼터 자리를 만들기 전까지 외출복을 입고 잤다.

 남편은 이곳에 들어온 후 그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마음을 나눴다. 남편을 아들 보듯 젊은 남정네 보듯 살갑게 대했다. 그는 그들에게 어르신이란 호칭보다 이름을 불러주었다. 옥*씨~ 춘*씨~ 하고 이름을 불러주면 그들은 버르장머리 없다며 막 나무라면서도 은근히 좋아했다.

그들의 이야기는 막장 드라마보다 더 재미있으면서도 슬펐다. 가끔은 그들의 이야기가 라디오에서 채택되어 방송을 타기도 했다. 이를 녹음해서 들려드리면 너무 좋아하셨다. 그 후론 주위 어르신들이 너도나도 살아오신 생애를 구술하니 그 공책이 쌓여 글쓰기 공부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위인전만 감동과 배울 것이 있는 게 아니다. 엄마라는 이름의 그들은 전쟁에서도 가족을 살려냈고 초근목피의 생활 속에서도 위로는 부모를 모시고 7~8명의 자식을 온전히 길러냈다. 그분들의 생애가 곧 위인의 삶이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한 어른의 웃픈 이야기를 꺼내 본다.

늘그막에 영감님은 10년을 중풍으로 누워 지냈는데 늘 작대기를 허리춤에 두고 자신이 조금만 못마땅하면 휘둘렀다고 한다. 어느 날 대변을 치우는데 무엇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또 때리더란다. 함께 한 50년 억겁의 세월이 하도 억울해서 누워있는 남편에게 이불을 덮어씌우고 때리던 작대기를 빼앗아 흠씬 두들겼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