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핼러윈 피해자를 향한 무차별적 비판···"피해자 탓 멈춰야"
이태원 합동분향소 서울 곳곳 설치돼 "누구나 즐기는 축제"에 간 피해자 탓? 시민 "참사 해결에 도움되지 않아"
"제가 코로나 전에는 이태원 거리에서 사고 피해자처럼 똑같이 놀고 분장했었어요. 그래서 이번에 이태원 압사 사고가 있었을 때 남 일 같지는 않았었어요. 왜냐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제가 그곳에 있었으니, 사고에 있었던 사람이 저였을 수도 있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집에만 있는 건 아닌 것 같았고, 분향소에 와서 사망자를 위해 기도를 좀 많이 하고 싶어서 이곳을 찾았습니다."
- 직장인 고정미 씨와의 인터뷰 재구성
압사로 인해 156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태원 참사에 서울 곳곳에는 애도의 물결이 일었다. 분향소를 찾은 사람들은 누구나 이태원 참사 현장에 있었을 수 있기에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해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핼러윈을 앞둔 29일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일대에 일어난 축제의 장이 순식간에 사람이 죽은 비극의 공간으로 변했다. 녹사평역 광장과 서울시청 광장 등 이태원 사고 사망자의 넋을 기리기 위한 합동분향소가 설치됐다.
2일 여성경제신문은 녹사평역 광장의 합동분향소에서 송파구에 사는 30대 회사원 고정미 씨를 만났다. 고씨는 분향소에서 3분이 넘도록 이태원 참사 사망자를 위해 기도했다.
고씨는 "2018년 핼러윈 날 이태원에서 피해자와 똑같이 놀고 분장하며 축제를 즐겼다"며 "지금은 직장에 다니지만 만약에 25~26살이었으면 (피해자처럼) 놀았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20대 초반의 경우 코로나19의 발생으로 청춘을 보내지 못해 아쉬웠을 거라며, "코로나가 끝나가면서 20대 초반 중반 사람들은 얼마나 놀고 싶겠냐"고 덧붙였다.
코로나19 유행으로 3년간 지역축제나 연례행사가 금지되었고, 모임을 꺼리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특히 20대 초반인 대학생은 대부분 강의가 온라인으로 진행되면서, 오프라인 행사에 참여할 기회가 드물었다.
여성경제신문은 31일 서울시청 광장 및 녹사평역 광장의 합동분향소와 이태원 1번 출구 일대를 방문했다./여성경제신문
이태원 사고가 알려지자 온라인에는 20대 피해자를 향한 비판적인 게시물이 올라왔다. 해외문화인 핼러윈을 즐기기 위해 모인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며 "사람이 몰릴 것을 알면서 왜 그곳에 갔느냐"고 사고 피해자를 탓했다. 행정안전부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집계에 따르면 2일 기준으로 이태원 사고의 사망자 156명 중 104명이 20대였다.
서울시청 광장의 합동분향소를 찾은 유다건 씨(여·22세)는 피해자 대부분이 20대란 이유로 사고 현장에 방문한 피해자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유씨는 SNS에서 피해자를 향한 가감 없는 표현의 게시물에 화가 났다고 말했다. 그는 "핼러윈이니 즐기자고 생각하고 (사고 현장에) 갈 수 있었던 만큼 그런 식으로 공유되는 게시물에 분노했다"고 자신의 심정을 전했다.
이태원 1번 출구에 방문한 30대 직장인 정유나 씨도 "인터넷을 보면 이태원 참사 피해자인 돌아가신 분들 다치신 분들 욕하는데, 도의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해서는 안 될 짓"이라고 말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성명서를 통해 이태원 참사에 대한 혐오 표현의 자제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학회는 "이태원 참사에 대해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유포하는 행위가 고인과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다"며 "혐오와 낙인은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여 재난 상황을 해결하는 데 어떠한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