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은미 더봄] 늠름한 아들의 목에 걸린···그 첫 목걸이 '군번줄'

[민은미의 보석상자] (37) 군번이 적힌 인식표를 거는 체인 인식표는 군인의 신분증 역할 어떤 주얼리보다 귀하고 빛나

2022-11-19     민은미 주얼리 칼럼니스트

최근 주얼리업계의 주요한 키워드 중 하나가 ‘젠더리스(Genderless)’다. 주위를 돌아보면 귀걸이를 한 남자는 흔하다. 우아한 여성의 전유물과도 같았던 진주 목걸이를 한 남자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남녀를 구분하는 경계가 주얼리에선 무너지는 추세다.

하지만 주얼리 착용에 전혀 관심조차 없는 남자들도 여전히 있다. 첫째 아들이 그랬다.

 

농구를 좋아하는 아들을 위해, 아들의 친구가 그려준 그림이다. /민은미

대학생인 아들은 농구를 무척 좋아한다. 프로 농구팀, 대학 농구팀은 물론 고교 농구 선수들 명단, NBA 선수들 명단에 팀 성적까지 줄줄 외우는 척척박사다. 농구 동아리와 교내 스포츠 전문지를 만드는 동아리에서 농구 담당 학생 기자로도 활동했다. 옷은 농구 하는데 편한 운동복이 대부분이었고 멋을 내는 데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런 아들이 목걸이를 착용하고 있는 게 아닌가. 너무나도 낯설게 느껴졌다. 엄밀히 말하면, 아들이 착용한 건 목걸이가 아닌 군번줄(Serial Number Chain)이었지만.

나는 세 아들(셋 중 막내 파코는 반려견임)의 엄마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막연했으나 군대란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가야하는 것이고, 심지어 초·중·고의 연장인 필수 코스라고 생각해 왔다. 아들만 둔 탓에, 그렇게 스스로 주문을 걸어 왔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그런 막연한 생각이 눈 앞의 현실로 다가왔다.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아들이 지난 9월 5일 입대하면서였다.

입대 전야의 아들은 덤덤한 편이었다. 입대하던 날은 태풍 '힌남노'의 영향권에 있던 날이었다. 경기도 화성시 신병교육대까지 자동차로 데려다주려고 했으나 친구들하고 광역버스를 타고 가겠다던 아들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도 무심한 척, 아들이 좋아하는 복숭아와 자두를 전날까지 깎아준 것 말고는 크게 신경 써준 것이 없었다. 물론 막상 보낸 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울적함이 왈칵 밀려왔지만.

아들의 목에 걸린 군번줄과 인식표를 보게 됐다. 군번줄과 인식표 실물을 본 건 처음이었다. /나무위키

그렇게 보낸 아들을 7주(추석 연휴로 인해 통상적인 기간보다 늘어남)만에 만났다. 신병교육대 수료식에서 만난 아들은 군인이 되어서인지 상당히 낯선 모습이었다. 하지만 군복을 입고 베레모를 쓴 아들이 너무나 멋지고 늠름해 보였다. 군번줄에서 아들의 이름과 번호를 본 순간, 어찌나 코끝이 찡했는지···.

군번줄은 인식표를 매다는 체인이다. 인식표(認識票, Identification Tag)는 군인의 이름, 군번, 신원 정보가 새겨져 있는 얇은 금속판으로 군인의 신분증 역할을 한다. 모양은 목걸이와 똑같다. 전시에 하나는 군인이 소유하고, 다른 하나는 소속 부대에 보고하기 위한 목적으로 한 사람에게 두 개씩 지급된다고 한다.

그 군번줄을 이번에 처음 봤다. 영화에서 종종 소재로 나오는 장면들이 있어 알고는 있었지만, 실물을 보게 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들은 고된 훈련의 연속이었던 신병교육대 생활은 너무나 힘든 시간이었다고 전했다. 그랬기에 평범한 대학생으로 지냈던 입대 이전의 하루하루가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 시간인지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 얘기를 들으며 군번줄과 인식표를 유심히 보고 있는 나에게 “군번줄은 항상 몸에 지니고 있어야 한다”고 설명해 주었다.

군번줄을 목걸이로 처음 걸게 된 젊은 청년들이 비단 나의 아들만은 아닐 것이다. 실제로 수료식 여기저기서 눈물을 훔치는 분들을 볼 수 있었으니, 군인이 된 아들을 첫 대면하는 다른 가족, 친지들도 마찬가지 마음이 아니었을까···. ‘늠름하다’가 이렇게 벅찬 단어인 줄 몰랐다.

주얼리의 역사는 무려 기원전 3만년경 선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나긴 역사 속에서 주얼리는 다양한 기능과 역할을 했다. 외모를 꾸미고 돋보이게 하기 위해 몸을 치장하는 것뿐만 아니라 휴대가 쉬운 장점으로 인해, 자신의 신분이나 지위를 나타내는 역할도 해왔다. 군번줄 또한 이런 역할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다.

아들 얘기를 들으면서 군번줄이 그 어떤 주얼리보다 귀하고 값져 보인다는 생각을 했다. 무엇보다 군번줄을 목에 건 늠름한 군인 모두가 보석보다 더 빛나는 존재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