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희 더봄] 영원히 변하지 않는 위대한 로망
[박재희의 그랜드 투어] 미천한 존재들의 위대함 로마의 것이 로망이 되다
로마는 영원한 도시(La Citta Eterna)로 불린다. 서양 문명을 대표하는 세계 도시로 세계의 머리(Caput mundi)라 일컬어진다. 사실 인류 문화의 도시로 로마 앞에 세울 수 있는 다른 곳을 떠올리기는 힘들다.
로마는 내게 괴테를 떠올리게 하는 도시이기도 하다. 태생부터 금수저였던 괴테가 외교관으로 작가로도 성공한 후에 신분을 감추고 2년 가까이 머물렀던 로마에서 그는 제2의 탄생을 맞았다고 했다. 이탈리아 여행 후 평생 로마를 그리워했고 로마가 없었다면 자기도 없었을 것이라는 말도 자주 했다.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에서 내가 밑줄로 그은 부분이 있다.
〈나는 여기서 두 번째 탄생을 맞고 있다. 내가 로마로 들어선 날부터 진정한 재탄생이 시작된 것이다.〉
괴테를 읽은 후에는 더욱 강렬하게 로마를 확인하고 싶었다. 로마의 무엇이 이미 다 가진 사람으로 하여금 그 모든 것을 덮고 삶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도록 만든 것인지,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로마는 유일하고 영원하다’라는 고백을 하게 만들었는지 궁금했다.
기원전 753년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란 로물루스와 레무스 쌍둥이 형제가 로마를 건국했다는 신화가 있다. 왕의 목축업자가 혓바닥으로 두 아이를 핥아주는 암늑대를 발견해서 아이들을 그의 아내 라우렌티아에게 건네주어 양육하게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리비우스는 로마사에 다른 해설도 남겨두었다. 라우렌티아는 그 지역의 평범한 창녀의 이름이고 그녀가 목동들에게 ‘암늑대’라고 불렸다는 설이다. 말하자면 로물루스는 창녀의 젖을 먹고 자란 것이다. 로마사에는 로물루스가 새로 창건한 도시를 강하게 만들기 위해 비천하고 무지한 사람들을 모아들이고 ‘땅에서 솟아난 자녀’로 불렀다고 기록되어 있다.
〈캄피돌리오 언덕 인근 숲 사이에 지역을 확정하고 인근 부족의 다양한 범죄자들이 이곳으로 몰려들었고 그들이 자유민이든 노예이든 상관하지 않았기에, 새로운 거주자들은 이곳에서 인생을 새롭게 출발했다.〉
로마가 외지인들이 만든 나라임은 이렇게 엄연한 기록으로 남아있다. 가난에 찌들고, 죄를 짓고 도망 다니다가 마지막 희망을 품고 도피해 모인 존재들의 도시. 거룩한 혈통의 왕손 대신 창녀의 손에서 자란 미천한 출신을 지도자로 받아들이고 ‘새로운 나’로 태어나겠다는 사람들의 희망을 모아 세운 나라가 로마인 것이다.
이러한 첫 번째 거주자들이야말로 이 도시가 특별한 힘을 가지게 된 출발점은 아닐까. 과거의 모든 것을 벗어 버리고 완전한 오리진의 탄생을 갈망하는 것이 위대한 로마를 만든 힘이었다면 그것은 이후로 변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말은 진리라고 한다. 모든 것이 변한다는 사실만 제외하면 모든 것이 변하고 영원한 것은 없다고 믿는다. 무엇이 달라질 것인가를 알아야 더 나은 미래나 새로운 삶을 설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일 것이다.
모두 변화에 집중하지만 나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고 믿는 쪽이다. 변한 것처럼 보인다고 해도 오리진의 한 부분이며 위대함을 이어 나간다고 말이다.
언젠가 아마존의 창업자이자 초대 회장인 제프 베이조스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인터넷 서점’이라는 발상에서 시작한 미천했던 기업을 세계 최고의 거대 유통기업으로 만든 그에게 미래를 예측하는 질문은 얼핏 당연해 보였다.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변화하게 될 것 같냐는 질문에 그는 골똘하게 생각하더니 말했다. “왜 사람들은 진짜 중요한 것에는 의문을 가지지 않을까요? 무엇이 달라질 것인가가 아니라 변하지 않고 영원할 것은 무엇인가가 정말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에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는 가치, 절대 사라지지 않는 진정한 것이 분명히 있으며 다만 그것이 살아남는다는 말이었다.
각기 다른 형태를 하더라도 그 안의 진정한 것은 살아남았다. 로마가 인류 역사에 등장한 이래 모두가 로마를 복제하고 로마의 후예임을 자처하며 살아남은 것처럼 그렇다. 서로마제국, 동로마제국이야 당연하다고 쳐도 다양한 민족의 왕국이 연합하여 로마의 후계자임을 선포한 신성로마제국이 그랬고 나폴레옹은 스스로 로마 제국의 후계 황제가 되고자 했다. 러시아 황제를 뜻하는 차르(Tsar)가 줄리어스 시저를 일컫는 카이사르(Caesar)에서 나왔음은 그 자체로 상징하는 바가 있지 않은가. 심지어 러시아와 미국 모두 고대 로마의 군대 깃발의 상징 독수리를 국조로 삼고 있다.
어떻게 로마의 것을 말하는 로만(Roman)이 간절히 원하는 갈망, 추앙하는 ‘로망’이 되어 영원할 수 있었을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