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구제금융으로 노벨상 받은 버냉키···양적완화 논란은 여전

금융위기→대공황 전이 막은 최후 대부자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예상 못했지만 오바마 7000억 달러 재정 투입 근거 제공 경제학계 "뱅크런 막은 업적 높이 평가해"

2022-10-11     이상헌 기자
2013년 6월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고강도 긴축 정책 여파로 신흥국 및 아시아발 금융위기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뱅크런에 따른 은행의 줄도산을 막는 것이 최선의 대책이라는 메시지가 노벨위원회에서 나왔다.

10일(현지시각) 스웨덴 왕립 과학원 노벨위원회는 벤 버냉키 전 의장, 더글러스 다이아몬드 미 시카고대 교수, 필립 딥비그 미 워싱턴대 교수 등 3명을 올해 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노벨위원회는 이들의 연구가 "은행의 줄도산을 막는 것이 경제 위기 시 왜 필수적인지에 대해 중요한 발견을 이뤘다"고 밝혔다. 세 수상자는 함께 연구하지 않았지만, 금융위기 시 은행의 역할을 강조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버냉키 전 연준의장은 '헬리콥터 벤'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2006년부터 2014년까지 연준 의장을 지낸 인물이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 위기가 터지자 기준금리를 0%로 내리고, 채권을 무제한으로 매입하는 그의 양적완화 정책은 전임자 앨런 그린스펀의 오락가락 금리정책과는 비교되는 점이 많았다.

앨런 그린스펀 '샤워실 바보' 정책 대조
파격적 헬리콥터 머니로 대공황 막아내

버냉키에 앞서 1987년부터 2006년까지 연준 의장을 지낸 그린스펀의 오락가락 금리 정책은 '샤워실의 바보'를 연상시켰다. 1995~2000년 발생한 미국의 닷컴버블은 연준이 1991년 11월부터 연 5%였던 금리를 1992년 9월 연 3%로 인하한 뒤 약 18개월간이나 유지한 결과로 빚어졌다.

결국 버블이 문제가 되니 그린스펀은 2000년 5월까지 금리를 연 6.5%까지 올렸다.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주식시장은 붕괴했고 2003년 3월 나스닥이 최저점을 찍으며 3년 전의 5분의 1 수준으로 추락했다. 연준은 그해 6월 다시 금리를 연 1%까지 인하해 13개월간 유지했다.

장기간의 저금리 정책으로 유동성이 풀렸는데, 당시 저신용자를 대상으로 확산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에서의 부실이 폭발하면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다. 버냉키는 리먼브러더스 파산 사태가 터지자 기준금리를 0%로 더 내리고, 채권을 무제한으로 매입하는 이른바 소방수 역할을 했다.

10일(현지시각) 스웨덴 왕립 과학원 노벨위원회가 벤 버냉키 전 의장, 더글러스 다이아몬드 미 시카고대 교수, 필립 딥비그 미 워싱턴대 교수 등 3명을 올해 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해 발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다만 노벨위원회는 버냉키의 양적완화 정책이 아닌 그가 1983년 집필한 논문에서 수상 이유를 찾았다. 그는 1930년대 대공황 때에 뱅크런이 은행의 파산에 결정적인 요인이 됐음을 증명하고, 은행의 안정을 유지할 필요성을 제기한 바 있다.

1929년 10월 말 뉴욕증시의 대폭락과 함께 시작된 대공황을 복기하면 제1차 세계대전 후 미국의 달러 가치가 상승하고 영국의 파운드 가치가 하락하는 현상이 발생하자 1924년 연준은 과거의 환율을 유지하기 위해 5억 달러를 풀었다. 이 결과 은행 신용이 40억 달러 증가하고 붐이 발생했다.

결과적으로 1921년 168억 달러였던 농가 및 도시 모기지 대출이 1929년 271억 달러까지 증가했고 주·연방 정부의 부채가 급증했다. 당시 연준은 모든 시중 은행에 지급준비금 보유 의무를 부과한 상황이었지만, 은행의 지급 능력에 대한 불신이 확산되면서 연쇄적인 뱅크런이 발생했다. 

당시 후버 대통령의 대선 공약을 위해 공화당이 통과시킨 스무트 홀리 관세법은 대공황에 불을 지폈다. 다른 국가들이 미국에 금수조치를 취하자 미국 농산물 가격이 폭락하고 수만명의 농부들의 파산이 이어졌다. 이는 지방은행의 도산과 은행 공황으로 이어져 경기 침체를 장기화시켰다. 

미국의 수출액도 기존 52억 달러에서 21억 달러로 대폭 줄어들고 말았다. 특히 면화나 담배 등의 수출이 급격히 감소해 관세법의 혜택을 받아야 할 농민들이 오히려 더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게다가 7.8%였던 실업률이 25.1%까지 치솟았으며 전 세계의 교역량은 1/3로 축소됐다.

버냉키의 연구는 이러한 대공황을 분석한 것이었다. 그는 논문을 통해 은행 파산 때문에 신용 공급이 위축되고 투자 부문이 타격을 받아 경기 침체가 매우 깊어지고 장기화됐음을 증명했다. 대공황 당시 미국 경제학자들은 은행 도산을 단지 경기 침체의 결과로 봤다. 노벨위원회는 "버냉키의 연구는 대공황을 이해하는 데 적합할 뿐만 아니라, 경제에서 은행의 중요한 역할에 대한 증거를 제공하는 데에도 더 일반적으로 적절했다"고 설명했다.

스웨덴 왕립 노벨위원회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발표와 함께 첨부한 1930년대 대공황 상태 당시 뱅크런을 묘사한 그림. /노벨위원회

급한 불 끈 소방수 역할 잘했으나
양적완화 따른 통화인플레는 숙제

경제학계에선 버냉키의 논문이 금융위기 직후 집권한 오바마 정부가 7000억 달러 상당의 구제금융을 집행하는데 이론적 근거가 된 것으로 보고 있다. 노벨위원회 역시 당시의 구제 금융 조치가 대공황이 아닌 대침체 수준에서 위기를 막아낸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은행구조조정의 본질은 소위 공적자금, 납세자의 돈으로 은행의 대차대조표를 청소하는 작업이다. 1997년 외환 위기를 겪은 한국 정부가 50조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한 조치가 대표적인 사례다. 일부 은행은 합병되고 잉여인력을 해고하는 과정에서 부실채권을 감축하고 자본을 재확충했다. 

버냉키는 소방수 역할을 잘했다는 이유에서 노벨상을 거머쥐었지만, 금융위기를 예상하지 못한 실책에 대한 비판을 받고 있다. 단기 부채를 가지고 와서 장기로 여신을 주면 안 된다는 것이 금융 상식이지만, 미국에서는 저신용자를 대상으로 하는 장기간의 고정금리 서브프라임(sub-prime) 모기지 대출이 확산했고 이로 인해 리먼 브라더스 사태가 터졌다. 

한편에선 통화 인플레이션을 유발한 양적완화 정책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2004년 노벨상을 수상한 에드워드 프레스콧 애리조나 주립대학교 교수는 "양적완화 정책이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되었는지 묻는다면 단호하게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라면서 "그래도 버냉키가 잘했던 한 가지를 꼽자면 2008년 9월 금융위기 이후 뱅크런 위험을 막은 최후의 대부자 역할을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