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희 더봄] 내 말이 잔소리라고?
[고현희의 마음을 여는 말하기 비법](2) 나는 잔소리 안 하는 사람이지! 잔소리 대마왕은 누구? 잔소리라는 표현에 동의하세요?
“지구를 위해서 물휴지를 사용하지 말아줄래?”
“이번만···.”
“이번이라도 안 쓰길 바라는데, 어때?”
“맨날 잔소리야···.”
“헉! 내 말이 잔소리라고?”
‘잔소리’는 일반적으로 듣기 싫은 말이다. 사전에는 쓸데없이 자질구레한 말을 늘어놓는 것 또는 그 말 자체를 잔소리라고 한다. 필요 이상으로 듣기 싫게 꾸짖거나 참견할 때도 잔소리라고 한다. 그렇다면 나는 잔소리를 하는 사람인가, 잔소리를 듣는 사람인가? 하기도 하고 듣기도 하는가?
스스로를 잔소리 대마왕이라고 규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 대부분은 나는 잔소리를 많이 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것이고, 하는 잔소리보다는 듣는 잔소리가 더 많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짐작해본다. ‘잔소리’라고 규정하는 말을 한 사람과 이 표현을 들은 사람이 그 표현에 합의할 수 있을까? 합의가 된다고 해도 이 표현을 들은 사람은 유쾌하지 않을 듯···. 더구나 합의가 안 된다면 이어지는 대화는 불통으로 향할 것이다.
‘맨날, 언제나, 항상, ~할 때마다, 번번이, 또’ 등의 반복을 표현하는 단어도 이 표현을 한 사람과 들은 사람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정확한 날짜 혹은 요일, 숫자 등으로 표현하지 않고 뭉뚱그려 반복된다는 표현을 하는 것은 소통에 도움 되지 않는다. 자신이 ‘맨날’ ‘잔소리’를 했다고 인정하는 사람이 있을까?
‘잔소리’라는 표현은 평가이고 판단이다. 평가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고, 반복한다는 의미의 뭉뚱그려진 표현을 멈추고 현재의 상황만을 말하는 것이 소통에 도움되는 말하기이다.
위의 대화에서 ‘잔소리’와 ‘맨날’이라는 표현을 바꾸면 아래와 같이 될 수 있다.
“지구를 위해서 물휴지를 사용하지 말아줄래?”
“이번만···.”
“이번이라도 안 쓰길 바라는데, 어때?”
“지금은 그 의견을 듣고 싶지 않아! 그냥 쓸 거야.”
이 글을 읽는 지금의 느낌은 무엇인가? 흥미롭다, 재미있다, 이상하다, 답답하다, 혹시 별 느낌 없다면 무덤덤하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자신의 느낌을 말하는 것을 자주 듣기 어렵다. 상대의 느낌을 짐작해서 물어보는 것은 더욱 그렇다. 느낌 표현이 서툴고 어색한 사회이다. 그래도 느낌을 표현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고 있다고 보인다. 자신의 느낌을 표현하는 대화는 듣는 사람이 비난으로 듣지 않게 된다. 솔직하게 자신의 느낌을 표현하는 것이 소통에 도움이 된다. 상대의 느낌을 짐작해서 물어보는 것은 소통에 더욱 도움이 된다.
위의 대화에 느낌을 넣으면 아래와 같이 될 수 있다.
“나는 물휴지를 쓰는 것이 불편해. 지구를 위해서 물휴지를 사용하지 말아줄래?”
“이번만···.”
“물휴지가 편하긴 하지?”
“응! 이게 편해.”
“그래도 안 쓰길 바라는데, 어때?”
“답답하지? 그런데 지금은 그 의견을 듣기 싫어. 그냥 쓸 거야.”
“그렇구나···. 그럼 다음에는 편해도 안 쓸 수 있을까?”
“알겠어. 다음엔 안 써볼게.”
“고마워, 내 마음을 알아줘서···.”
느낌을 넣은 대화가 처음의 대화와 결이 달라진 것이 보인다면 말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힘이 생긴 것이다. 내가 사용하는 단어를, 문장을 세밀히 알아채면 소통을 방해하는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 ‘아니’, '짜증 나', ‘휴~’, ‘음~’을 하루에 5번 이상 말하거나 (5번은 글쓴이의 생각임), ‘나’로 시작하는 말보다 ‘너’로 시작하는 말을 더 많이 하는 것을 알아챈다면 말을 바꿀 수 있는 첫 계단에 올라선 것이다. 인식한 것은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인식하지 못하고 반복하는 것을 습관이라고 한다. 습관은 그래서 바꾸기 참 어렵다.
마음을 여는 말하기를 하려면 ‘잔소리’처럼 판단하는 단어를 알아채고 사용을 멈추어야 한다. 현재의 상황을 세밀하게 표현하면서 느낌 단어를 사용하면 소통으로 가는 길에 올라서게 될 것이다.
“나는 지금 마지막 문장을 적으면서 홀가분한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