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 더봄] 이번엔 영화에 도전하다
[김정희의 좌충우돌 연기도전기] 연출가가 들려주는 소리를 듣고 각자 시나리오 작성해 토론하고 그림으로 스케치···동영상 촬영
2020년 겨울, 낭독극을 발표한 후 평가회를 가졌다. 내년에도 올해처럼 같은 연출가 선생님을 모시고 연기지도를 받기로 했다. 연출가 선생님께서 이번엔 연극이 아닌 영화 촬영을 해 보는 것이 어떠냐고 하셨다. 재미있을 것 같았다. 연극은 현장에서 진행되는 생방송과 다름없기에 연극 소품, 무대장치, 사소한 실수, 배우들의 미세한 눈 떨림까지 현장에서 생생하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영화는 이미 촬영된 장면을 편집해서 상영하는 것이기에 그 과정을 볼 수 없다. 나는 영화가 어떻게 촬영되는지 실제로 경험해보고 싶었고 궁금했다.
첫 시간에 우리는 각자 짧은 시나리오를 써 보기로 했다.
연출가 선생님께서 여러 가지 소리를 들려주었다. 새소리, 도마소리, 물소리, 문 닫는 소리, 쿵쾅쿵쾅 부딪히는 소리 등등. 그 소리를 듣고 각자 시나리오를 구성해서 말하고 그 시나리오에 대해 궁금한 것을 묻고 답했다.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수업 방법이었다. 소리를 듣고 시나리오를 쓴다는 것이 신기했고 소리에만 의지해서 시나리오가 쓰여진다는 것도 신기했다.
나는 이런 시나리오를 구성했다. 새소리 물소리가 들리는 깊은 산 속에서 어떤 부부가 살고 있다. 부인은 몸이 불편해서 지팡이를 짚고 있다. 남편이 산속에서 채취한 나물을 가져오면 부인이 요리한다. 마늘 찧는 소리가 산속에 울려 퍼진다. 어느 날, 깜깜한 밤에 벽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바람 소리에 문이 삐거덕거리는 기분 나쁜 소리였다. 한밤중에 갑자기 들리는 그 기분 나쁜 소리는 부부의 머리카락이 곤두서게 했다. 때맞추어 밖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쿵쾅쿵쾅 울려대는 그 소리는 한 명이 아닌 여러 명이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였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이런 내용으로 어떤 작가의 인생을 구성해보려고 했으나 앞뒤 내용이 맞지 않아 질문에 답하느라 애를 먹었다. 커뮤니티의 한 회원은 영화 주인공이 체코 여행 중 공원을 거닐면서 새소리 물소리를 듣고 있는 것으로 설정했다. 또 다른 회원은 이십 년 전 대학 교정을 거닐면서 있었던 일을 추억하는 시나리오를 구성했다. 같은 소리를 듣고서 이렇게 다른 시나리오를 쓸 수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약간 흥분했다.
그리고 각자의 시나리오에 빠져들었다. 시나리오를 듣는 순간순간 궁금한 내용들을 묻고 대답했다. 그 질문 중에는 시나리오의 구성이 어색해서 앞뒤가 잘 맞지 않는 내용들도 있었고 질문에 답하다 보면 시나리오 내용이 수정되기도 했다. 내용에 맞추어보려고 이리저리 둘러대면서 시나리오 쓰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새로운 시도에 대해 신선함을 맛보았다. 대부분 인생의 쓴맛 단맛을 맛본, 앞머리가 하얗게 변한 반백 년 넘은 세월을 산 사람들이지만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학생처럼 호기심과 새로움에 눈이 반짝였다. 소리를 듣고 시나리오를 구성한다는 이런 수업 방법이 다들 신기하기만 했다.
또한 시나리오를 쓰고 내용을 상의하면서 그 내용에 맞는 글만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 글 내용에 부합되는 그림도 스케치했다. 스케치한 그림에서 배경이나 액션 자세가 나오기도 했다. 그것을 기초로 하여 연기를 하고 그 장면을 동영상으로 촬영했다. 동영상을 보고 서로의 의견을 수정 보완 후 다시 재촬영했다.
그 과정을 배우면서 텔레비전이나 영화에서 전개되는 내용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다음 장면에 어떤 내용이 나올지 궁금하기도 했다. 또 연기자의 연기 모습을 세심하게 관찰하는 계기가 되었다. 연속극을 볼 때 연기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액션이나 표정, 말소리에 집중해 드라마를 보게 되었다. 연기자의 연기가 자연스러운지 화내는 장면에서 감정의 변화도 있는지 소리만 크게 지르는지도 살피게 되었다. 관심을 가진다는 것이 전체뿐만 아니라 그 전체를 구성하는 세세한 부분까지 살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앞에서 연기 장면을 찍은 동영상을 편집도 했다. 시나리오를 구성하고 연기를 배우고 촬영과 편집을 하면서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배우고 익혔다.
이러한 과정을 배우고 익힌 내용을 바탕으로 우리는 어떤 내용의 영화를 찍을지, 실내 촬영, 실외 촬영 장면의 구성은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의논했다. 상의한 내용을 종합하여 연출가가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제목은 『언니 잘 먹었어』였다.
병원에 입원한 주인공이 갖가지 반찬을 만들어 준 친구와 언니에게 퇴원 후 멋진 저녁을 사야만 하는 내용이었다. 난 영화 주인공의 친구인 ‘인애’ 역할이었다. 촬영하기까지의 과정이 너무 재미있어서 ‘이번에도 조연이구나’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주연, 조연 상관없었다. 청룡영화제에 나갈 영화가 아닌데 주연이면 어떻고 조연이면 어떠리.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어진들 어떠하리, 재미있게 영화 찍어 보고 즐기면 된다는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