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재 칼럼] 바이든 세계 전략의 일환인 미국의 강달러 정책

[김성재의 국제금융 인사이트] 슈퍼파워 지위 회복 위한 강달러 유지 전망

2022-09-29     김성재 가드너웹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백악관 루스벨트 룸에서 고액 정치 자금의 출처 공개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법안(Disclose Act)에 관해 연설하고 있다. /워싱턴DC EPA=연합뉴스

넷플릭스에서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고층 빌딩 사이를 유유히 헤엄치고 있는 거대한 고래의 모습이다. 번뜩이는 천재성이 빛나는 우영우 변호사는 사건이 막힐 때마다 고래를 떠올리며 기발한 영감을 얻곤 한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앓고 있는 그에게 포근하게 보이는 고래는 영혼의 안식처 같은 존재이다. 반면 소설 ‘모비딕’에 등장하는 흰 향유고래는 바닷속 난폭자의 대명사이다. 길이 27m가 넘는 거구에 민첩성과 교활함까지 갖추고 고래잡이에 나선 숱한 어부들을 해친다.

포경선의 선장인 에이허브(Ahab)도 모비딕에게 한쪽 다리를 잃었다. 그는 평생 이를 갈며 이 거대한 흰고래(white whale)를 잡기 위해 전력투구했다. 하지만 꿈을 이루지 못한 채 결국 모비딕에게 목숨을 잃고 만다. 이처럼 흰고래는 반드시 잡아야 하지만 쉽게 포획할 수 없는 먼 신기루 같은 목표를 상징한다.

현재 미국 경제에 있어 가장 큰 난제는 인플레이션이다. 그러면 백악관에게 인플레이션은 흰고래일까? 만약 바이든에게 인플레이션이 그런 의미로 다가간다면 그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인플레이션을 퇴치하고 물가가 잡히기만 학수고대하면서 그 한 가지 목표에만 집중할 것이다.

실제 바이든 대통령은 수차례에 걸쳐 인플레이션이 정책의 최우선 어젠다임을 강조했다. 전략비축유를 풀어 휘발유 가격을 잡고 공급망 회복을 위해 분투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물가 잡기가 바이든의 최상위 과제라면 이를 위해 몇 가지 선결문제를 먼저 해결했어야 한다.

우선, 유럽에 에너지 위기를 초래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종결을 위해 불철주야로 뛰어야 한다. 중간에서 양국 간 협상을 유도하고 휴전을 위한 조건을 절충하는 노력을 보여야 한다. 그러나 미국은 거액의 무기 지원을 확대할 뿐 협상 중재에 진지한 자세를 보이지는 않고 있다.

둘째로,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라는 장기 과제를 일시 미루고 물가 불안의 근원인 공급망 복구에 포커스를 맞춰야 한다.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공급망에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는 중국에 대한 백신 공급 등도 검토해야 한다. 그러나 바이든은 중국 봉쇄에 더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셋째로, 또 하나의 장기 과제인 기후변화 대응과 소득 형평성 제고를 위한 예산 증액을 지양하고 재정 긴축에 나설 필요가 있다. 그런데 바이든은 화석연료 산업에 대한 지속적 견제와 학자금 대출 감면, 재생에너지 및 반도체 산업에 대한 투자 등 재정 확장을 서슴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최근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달러화 강세가 심화하고 이로 인해 다른 나라들의 수입 물가가 오르면서 글로벌 인플레이션 전이 현상이 확산하고 있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가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할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이 상태가 수년간 지속되면 그간 연준의 저금리 정책으로 비대해진 유로달러 시장에서의 연쇄 부도가 외환위기의 도미노 현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 1980년대 남미와 1990년대 아시아 외환위기도 연준의 급격한 금리 인상과 달러 강세의 결과였다.

28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원/달러 환율이 1430원대를 넘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실제 미국에 있어 1970년대는 되돌아보고 싶지 않은 암흑의 시기였다. 베트남 전쟁에서 소련의 지원을 받은 베트콩에게 패했고 중동에서도 외교적으로 고전하면서 오일쇼크로 인해 경기침체와 물가 불안이 동시에 진행되는 스태그플레이션의 늪에서 허우적거렸다.

결국 인플레이션이라는 흰고래에만 집중했던 폴 볼커 전 연준 의장이 기준금리를 20% 위로 올리는 극약처방을 내리면서 물가가 잡혔다. 그런데 당시 세계 경제는 깊은 부작용에 시달렸다. 

1980년에서 1985년까지 글로벌 주요 통화에 대해 달러화가 50% 넘게 상승하는 ‘초강력 달러 시대’가 장기간 지속됐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세계는 달러화 강세와 그로 인한 달러화 부채의 가치 급등으로 신음했지만 레이건의 미국은 초강대국의 면모를 되찾았다. 전 세계에 뿌려진 달러의 힘을 실감한 각국 정부는 알아서 미국에 협조적 자세로 나왔다. 이를 바탕으로 ‘플라자 합의’를 이끌어낸 레이건은 전후 최장기 호황의 문을 열어젖혔다.

달러 파워와 미국의 견조한 경제 성장은 전 세계를 위협하던 소련과 동유럽의 공산주의를 끝장내는 데에도 크게 기여했다. 한편, 강 달러 정책은 빌 클린턴 행정부 2기를 이끌었던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에 의해 다시 추진됐다. 

‘채권대학살’을 가져왔던 1995년까지의 연준 금리 인상에 이어 진행된 달러화 강세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신흥국 경제를 강타해 외환위기를 초래했다. 하지만 달러 파워와 견조한 경제 성장을 바탕으로 클린턴의 미국은 지구상 유일의 슈퍼파워로 군림했다.

그렇다면 글로벌 기축통화인 달러를 무기로 공산주의를 끝장내고 미국의 부활을 이끌어낸 레이건과 미국 시스템을 글로벌 스탠더드로 격상시킨 클린턴의 신화를 직접 목격한 노회한 바이든이 달러 파워의 위력을 모를 리가 없다. 

결국 바이든은 상대적으로 견조한 미국 경제의 펀더멘털과 여전히 강력한 달러화의 힘을 이용해 동맹을 규합하고 중국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꺾으려 할 것이다. 다른 주요 통화가 흔들리고 러시아의 석유도 힘을 잃은 상태에서 바이든은 지정학적 우위를 확정코자 할 것이다.

그런데 달러 파워가 지정학적 구도를 바꾸는 데에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된다. 그것이 왜 1980년대 전반과 1990년대 후반 달러화가 스마일을 보이며 5년여 초강세를 지속했는지를 설명해 준다. 달러화 강세는 단순한 경제적 현상이 아니라 지정학적 전략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플레이션은 연준의 흰고래가 될 수는 있지만 바이든 백악관의 모비딕은 될 수 없다. 바이든은 흰고래만 열심히 쫓는 연준이 만들어준 강달러의 환경에서 신나게 헤엄치고 노는 슈퍼 고래를 지향할 것이다. 미국이 시스템적 위기에 빠지지 않는 한 한미통화스왑의 재개나 약달러 정책으로의 선회를 성급하게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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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재 가드너웹대학교 경영학교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종합금융회사에서 외환딜러 국제투자업무를 7년간 담당했고 예금보험공사에서 6년간 근무했다. 미국에서 유학하여 코넬대에서 응용경제학석사,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경영학박사 (파이낸스)를 취득했다. 2012년부터 노스캐롤라이나주 가드너웹대학교에서 재무·금융을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