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깐팩] 尹 '펠로시 패싱' 탓에 美 '전기차 패싱'? 사실일까
IRA 법안 통과로 경제 피해, 책임 공방 전문가 "두 사안 연결은 과한 억측" 블룸버그 추측성 보도, 韓 기자가 써
최근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통과로 한국산 전기차가 보조금을 배제당하자 윤석열 대통령 책임론이 일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소위 '펠로시 패싱'이 한국 전기차 패싱'을 불렀다고 외신들이 보도하고 있다"고 직격했다.
이 대표가 14일 국회에서 "지금 우리 전기차 수출 기업들이 미국 시장에서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됐다. 외교 실패에서 온 경제 실패의 대표적 사례"라고 한 주장은 사실일까. 여성경제신문이 팩트체크한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의 지난달 3일 방한 당시 대통령실의 ‘의전 홀대’ 논란이 불거졌다. 이에 이 대표가 언급한 미 블룸버그 통신은 <한국은 바이든의 전기 자동차 추진에 '배신'을 본다> 제목의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윤 대통령이 지난달 방한했을 때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과 직접 면담을 하지 않아 '치명적인 실수'(deadly mistake)를 저질렀다고 이 사건에 정통한 두 번째 소식통이 전했다. 그러한 면담은 법안이 통과되기 전에 '변화를 모색하는 결정적인 기회'(crucial chance to seek changes)를 제공했을 수 있다고 소식통은 말했다."
하지만 펠로시 의장이 불쾌감을 가져서 미국에 돌아가 IRA 법안을 그대로 통과하게 했다는 가정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외신 보도이지만 한국인이 썼기 때문이다.
해당 기사를 작성한 기자는 서울에 주재하는 이모 기자와 김모 기자이다. 이 중 이모 기자는 현재 용산 대통령실에 출입하고 있다. 이들이 취재원으로 언급한 '두 번째 소식통'의 국적은 기사에 나오지 않았지만, 한국인일 가능성이 높다. 기사에 나온 첫 번째 소식통이 한국 정부 관계자이기 때문이다.
기사는 초반부에서 "한국 기업의 대규모 미국 투자 발표 이후 윤석열 한국 대통령 정부는 이 조치를 불공정한 조치로 보고 있다고 내부 숙의를 논의하고 있는 익명을 요청한 관리가 말했다"고 언급했다. 문맥상 두 번째 소식통의 국적도 한국 정부 관계자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블룸버그 한국 주재 기자는 과거에도 자극적인 표현으로 정치권에서 논란이 된 바 있다. 지난 2019년 3월 블룸버그 이유경 기자가 쓴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 김정은 UN 수석대변인 되다>라는 제목의 기사는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국회 연설에서 인용해 파장이 일었다.
당시 민주당은 이 기자를 향해 "미 국적 통신사의 외피를 쓰고 국가원수를 모욕한 매국에 가까운 내용"이라며 "한국인 외신주재원이 쓴 검은 머리 외신 기사에 불과했다"고 비난하는 논평을 냈다가 외신 기자 단체의 반발이 일자 사과했다.
외교 안보 전문가들은 '펠로시 패싱' 사건과 '한국산 전기차 차별' 사건을 연결짓는 것은 무리라고 봤다. 김태형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15일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펠로시 의장이 그 자리에 있는지 꽤 오래됐는데 '한국에 불이익을 주자'는 마음으로 권한을 행사했다는 건 굉장히 쪼잔한 사람으로 보는 것"이라며 "패싱 사건과 연결시키는 건 과한 억측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미국이 최근에 하는 공급망이라든지 첨단 기술 분야는 일단 중국을 견제하는 게 큰 목표이긴 한데, 어쨌든 자국 산업 육성도 굉장히 큰 과제"라며 "올해 또 중간선거도 있어서 펠로시 방한과 크게 상관없이 미국은 동맹국들한테 좀 비판을 받더라도 법안을 처리할 작정이 있었던 걸로 보인다"고 했다.
펠로시 의장과 면전에서 대화해 봤던 백승주 전 국민의힘 의원도 이 대표의 주장에 반박했다. 국민대학교 정치대학원 석좌교수인 백 전 의원은 2019년 2월 국회 방문단 자격으로 미 의회를 방문한 바 있다.
백 전 의원은 이날 본지에 "미국의 문화라는 게 상대방의 휴가 같은 사적인 일정을 존중해 주는 부분이 있는데, 윤 대통령과 만남이 없었다고 전기차 보조금을 배제당했다는 건 지나친 확대 해석"이라며 "만약 윤 대통령이 만났으면 법안 수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는 건데, 그런 민주당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펠로시 의장과 윤 대통령 면담은 휴가였어도 이뤄졌어야 했다. 새로운 어떤 채널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있었는데 아쉽다"며 "다만 그러지 않았다고 미국 정책이 그렇게 결정됐다는 생각을 하는 건 애매한 부분이 있다"고 덧붙였다.
펠로시 의장이 '자국 우선주의'가 담긴 IRA 통과 막판에 특정 국가 정상과 순방에서 건의를 들었다고 특혜를 주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IRA는 지난 7월 말 법안 발의 2주 만에 상·하원을 통과했다. 일반적으로 입법 과정에서 의견을 제시하고 수차례 조정되는 과정을 거쳐 법안을 최종 확정하는데, 미국 여당인 민주당이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기습처리한 셈이다.
국제외교에서는 외국 인사가 올 때 카운터 파트너(대화 상대)를 정해놓고, 회담 사전 실무 조율을 하는 것이 기본 룰이다. 문재인 정부 외교특보였던 문정인 세종연구소 이사장은 지난달 5일 KBS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펠로시 의장의 카운터 파트너는 김진표 국회의장이기 때문에 대통령이 상대는 아니다"라며 "미국에서 권력 서열 3위 인사가 왔다고 해서 지나치게 환대해도 문제고 홀대해도 문제인데 무난했다"고 말했다.
일본은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펠로시 의장을 만날 때 펠로시 의장 아시아 순방 목적이 '안보'였던 만큼, IRA 법안 내용을 문제삼는 '경제' 메시지는 회담 테이블에 올리지 않았다. 국가 정상이 펠로시 의장을 만나고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IRA 피해국을 면치 못한 것이다.
IRA는 미국·캐나다·멕시코에서 생산한 전기차 등을 구매하는 미국 소비자에게 최대 7500달러의 세제 혜택을 제공한다. 일본, 한국, EU 등에서 만들어 미국으로 수출한 전기차는 보조금 대상에서 배제된다.
한국의 전기차 수출에 피해가 예상되지만, 직접적인 피해를 받는 상대는 현대·기아자동차일 뿐이다. IRA가 국가 정상급 회담에서 논의되기 어려운 이유다. 미국은 로비가 합법화돼 있어 경제 관련법은 이해관계자인 기업이 법안 통과 전 로비를 한다. 현대차 등 우리 대기업은 워싱턴에 로비용 사무소를 두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이미 가동 중인 미국 알라바마 공장 내 라인 전환을 통해 GV70 전기차 생산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미국 조지아주 공장 설립 시기도 2024년 하반기로 앞당기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