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 더봄] 초로의 록 밴드가 전한 열망에 움직이다

[김현주의 텐션업 갱년기] 38년 만에 한 무대에 선 배철수와 구창모 송골매의 날갯짓에 마음 실은 중년 관객들

2022-09-13     김현주 매거진 편집장
9월 11일 올림픽공원 케이스포(KSPO)돔에서 열린 송골매 전국투어 콘서트 열망. / 사진=드림메이커엔터네인먼트

“세상만사 모든 일이 뜻대로야 되겠소만 그런대로 한 세상 이러구러 살아가오~”

배철수가 연주하는 기타 리프에 관객들은 모두 일어나 떼창을 불러댔다. 아래 위로 청청패션을 하고, 거친 웨이브의 그레이 헤어가 로커로서의 그의 예전 모습을 떠오르게 했다. 물론 그의 옆 자리에는 언제나처럼 미소를 띤 곱슬머리의 보컬 구창모가 서 있었다.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KSPO DOME)을 꽉 채운 9500여 명의 관객들은 그렇게 2시간 40여 분 송골매와의 시간을 마무리해 갔다. 

송골매는 초등학교 시절 만난 내 인생의 첫 록 밴드다. 청바지를 입고 장발을 흔들며 연주하는 송골매의 노래는 록이라고는 하지만 한 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귀에 착 붙는 멜로디의 곡들이었다. 그래서인지 열 살 즈음의 나 역시 송골매가 TV에 나올 때면 언제나 브라운관 속 달콤한 목소리와 흥겨운 비트에 맞춰 소리 높여 함께 노래했던 것 같다. 이후 시나위, 부활, 들국화 등 좋아하는 밴드들의 카세트 테이프가 책상 위에 쌓여 가긴 했지만, 처음으로 록 필을 느끼고 빠져든 건 송골매가 확실하다. 

그런 ‘송골매’가 공연을 하다니! 1984년 구창모의 솔로 탈퇴 이후 각자 활동을 해 오던 송골매가 38년 만에 한 무대에 선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부터 공연장에 직접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어릴 적 목청껏 불렀던 송골매의 노래를 다시 한번 같이 불러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추석 연휴 다음 날인 그들의 첫 공연날을 D-Day로 정하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함께 가기로 했던 남편에게 다른 일정이 생겼다. 갑작스러운 상황이었지만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섭렵하고 있는 딸 아이가 있기에 동료 걱정은 하지 않기로 했다.

“이 분위기 무척 낯선데, 여기 관객들 모두 엄마 또래이거나 엄마보다 나이가 많은 분들이네. 아는 노래도 많이 없는데 재미없을 것 같아. 게다가 난 록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 엄마.”

막상 공연장에는 따라왔지만, 주변을 둘러본 후 분위기가 심드렁해진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봐도 우리 애가 가장 어린 관객 같았다. 앞자리와 옆자리는 대부분 5,60대 부부들이 앉아 있었고 뒷자리에는 그 또래의 여자 친구들이 함께 온 듯했다. 대부분의 관객이 그랬다. 간혹 우리 아이처럼 엄마와 함께 온 젊은 관객도 눈에 띄긴 했지만 그것마저도 2,30대 친구들이었다. 음악을 좋아하는 아이의 귀가 자연스럽게 열리길 바랄 수밖에 없겠다 싶었다. 

'어쩌다 마주친 그대'와 '모두 다 사랑하리'가 실려 있는 1982년에 발표된 송골매 2집 앨범 표지. /사진=송골매 공식 홈페이지

공연이 시작되자 송골매가 날갯짓을 하며 날아오르는 인트로 영상이 화면을 채우고 중년 남녀들의 모습이 보여졌다. 2022년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5,60대의 일상, 그들이 마음 속에 담아두고 있던 젊은 시절의 열망을 떠올리는 스토리였다(콘서트의 이름도 ‘송골매 열망’이다).

객석의 관객들은 모두 자신의 이야기인양 몰입하기 시작했다. 늘어진 카세트 테이프를 연필로 감아 돌리는 모습이 낯설다는 아이에게 ‘엄마 때는 다 저렇게 했어’라고 말하며, 나 역시 7,80년대 내 모습과 주변 풍경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어쩌다 마주친 그대’로 시작된 무대는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인 1978년 TBC 해변가요제에서 불렀던 ‘구름과 나’(블랙테트라의 구창모)와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활주로의 배철수)로 이어졌고 이후 앵콜곡 ‘모두다 사랑하리’까지 2시간 40분 가까이 쉬지 않고 진행됐다.

공연 앞 부분에는 몇십 년 만에 함께 무대 위에 섰다는 설레임과 감격에 박자를 놓치기도 했지만 분위기가 무르익을수록 두 사람의 보컬은 젊은 시절 감성과 다르지 않은 단단함을 보여주었다.

무대 설치 역시 객석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구창모와 배철수, 두 뮤지션이 올라선 무빙 스테이지는 돔 실내를 가로지르며 분위기를 점점 더 고조시켰고, 무대 위 스크린에 설치된 커다란 날개 형상은 마음 속 열망을 찾아 다시 한번 비상하려는 송골매의 바램을 전하는 듯 반짝였다.

송골매의 뮤지션으로서 뭉친 두 사람의 공연을 보면서 나 역시 내 마음 속에 지금까지 남아있는 열망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끄집어 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칠순이 가까운 두 뮤지션이 나누는 행복한 표정을 마주한 관객들 모두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공연이 끝나자 중학생 딸 아이가 아빠 대신 오길 잘 했다며 말을 건냈다.

“엄마, 배철수 아저씨 너무 멋있는데. 잘생겼어, 내 스타일이야!” 송골매가 전한 열정을 아이도 느낄 수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 올해 일흔이 된 뮤지션인데, 의외인데? 네가 좋아하는 세븐틴은 어쩌고···?”

농담처럼 답했지만, ‘정말 그렇지!’라는 공감의 표정을 아이도 놓치지 않았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