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익종 더봄] 여행을 떠나요~~

[한익종의 삶이 취미,취미가 삶] 삶이 곧 여행이다 여행, 그 황홀한 만화경 속

2022-09-09     한익종 발룬티코노미스트·알나만교장
여행은 확실히 사람을 흥분시키며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심을 유발시키는 행위다. 여행하면 연상되는 낱말이 기대, 희망, 꿈, 낭만, 추억 등이니 말이다. /게티이미지뱅크

“푸른 언덕에 배낭을 메고 황금빛 여행 축제를 여는

광야를 향해서 계곡을 향해서,

먼동이 트는 이른 아침에 도시의 소음 수많은 사람

빌딩 숲속을 벗어나 봐요.

그 곳으로 여행을 떠나요-----”

 

와우~~이 노래의 가사처럼 사람을 달뜨게 하고 황홀경에 빠져들게 하는 노래가 있을까 싶다. 푸른 언덕, 황금빛 축제, 먼동이 트는 아침···.

여행은 확실히 사람을 흥분시키며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심을 유발시키는 행위이다. 여행하면 연상되는 낱말이 기대, 희망, 꿈, 낭만, 추억 등이니 말이다.

그러나 여행을 마냥 예찬할 일만은 아니다. 어떤 이는 집 떠나면 개고생이라고 고개를 젓는가 하면 돌아올 수 없는 여행도 있으니 말이다.

(인생을 여행이라고 말할 때) 어떤 이는 여행이 곧 삶이고 여행을 놔두고는 인생을 논할 수 없다라고 얘기하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여유로워서 좋겠다, 팔자 편한 소리 하고 있네, 돈 많은 사람들의 객기네'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이렇듯 부정적 얼굴도 갖고 있으니 이를 극복하고 여행 예찬을 펼치기 위해서는 여행에 대한 긍정적 개념 정립(?)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출구를 바라보고 있는 필자. 여행은 피곤한 삶에 돌파구를 마련해 주는 귀한 역할도 한다. 단, 돌아오는 조건으로 /사진=한익종

영어 사전을 보면 여행은 TOUR, JOURNEY, TRAVEL, TRECKKING 등 다양한 단어로 정의돼 있다. 짧은 일정의 나들이, 업무차 방문, 이웃 동네 산책, 달구지를 타고 떠나는 일정, 먼 거리의 떠남···.

그런데 우리네 표현으로는 퉁 쳐서 '여행'이라고 부르니 그 복잡다단함과 미묘함을 이해하기 어려울뿐더러 여행에 대한 오해(?)를 불러오는 것 같다.

우리는 여행하면 돈을 들여서, 먼 거리를, 비교적 오랜 시간에 걸쳐, 탈 것을 타고···. 뭐 이런 정도로 받아들이니 귀찮은 행위, 여유 있어야만 하는 일 따위로 치부하는 것 아닐까.

그런데 여행에 대한 영어식 표현을 모두 동원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행하는 모든 삶이 곧 여행이라고 이해한다면 여행은 피할 일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즐겨야 할 일이다. 많은 예인들이 인생을 돌아올 수 없는 긴 여행이라고 표현했듯이.

그러나 여행은 삶의 범위 안에서 돌아옴을 전제로 한다. 돌아올 수 없는 여행이라면 '떠남'이지 여행은 아니다. 사회로, 집으로, 심지어 내 자신으로 돌아오는 것이 여행이라고 이해한다면 우리는 매일, 매시간 여행하고 있다.

동네 산책으로, 직장 출근으로, 이웃 방문으로, 시장 보러···.

그렇다면 인간사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는 여행이 인간에게 미치는 긍정적 영향은 무엇이고 매 순간 여행을 즐겨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여행은 사람을 무료하거나 게으르게 하지 않는다. 게으름과 무료가 도태라는 것을 알게 한다. 칭기즈 칸이 유언으로 "내 자손이 비단 장막이 처진 구중궁궐에 머무르는 순간 몽골 제국은 멸망할 것이다"라고 말했고 그 말대로 원나라가 망한 사례가 보여 주듯이. 머무름은 곧 썩음이요, 죽음이다.

여행은 시나브로 사그라드는 감성과 지성을 자극해 삶에 멜로디를 불어넣어 준다. 아리스토텔레스, 칸트나 모차르트, 고갱, 헤밍웨이 등 수많은 거인의 역사를 보자.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시들어 가는 열정을 일깨워 주는 효소로써 여행보다 좋은 것은 없더라.

여행은 내 표현대로라면 자신을 낯선 환경에 의도적으로 노출시킴으로써 자신의 본질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또한 오래 전 지방의 학생과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한 토크 쇼에서 밝혔듯이 여행은 지식을 지혜로 변환시키는 트랜지스터다.

여행에 대한 나의 예찬론은 끝이 없다. 나의 여행 예찬론은 어디서 왔을까?

바로 내 삶의 궤적을 보면 알 수 있다. 한마디로 내 삶은 온전히, 여행이 갖는 긍정적 영향을 그대로 받았다 하겠다.

그렇다고 내 삶이 완전무결한 삶, 행복 극치의 삶이라는 건 아니다. 그러나 돌이켜 후회 없는 삶, 내일을 그려도 바꿔 보고 싶은 삶이 아니라는 점에서 말이다.

돌이켜 보면 내 삶의 전환점은 크게 두 번 있었던 것 같은데, 한 번은 대학입시 실패 후 고산 윤선도 선생을 찾아 전라남도 보길도로 무전여행을 떠났던 때였고, 또 한 번은 언어 관계로 연수는 거의 포기한 채 시종일관 여행으로 마무리된(연수 대신 쓴, 영어 일기 254 steps America) 미국 연수(2000년도)였다. 둘 다 여행 후이다.

 

차마고도에서 양떼에게 길을 비켜주는 여행객. 여행은 배려와 내려놓음을 배우게 한다. /사진=한익종

우리는 흔히 지구별에 여행 온 소풍객이라는 표현을 쓴다. 시인들은 흔히 일생을 긴 여행이라고 노래한다.

그러나 내가 여행 예찬론을 펼치는 이유는 철학적, 시적 표현에 기반한 것은 아니다. 돌아오지 않는, 돌아오지 못할 여행은 여행이 아니다. 우리가 즐기고자 하는 여행은, 여행의 목적은 돌아옴을 전제로 한다.

나 자신, 가정, 사회로의 돌아옴. 돌아와서 느끼는 감정, 내가, 내 가정이, 나의 사회가 소중하고 의미 있다는 것에 대한 느낌, 새로워진 나···.

그렇기에 여행이 소중한 것 아닐까.

“마음의 짐, 무거운 욕심 모두 내려놓고 여행을 떠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