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익준 더봄] 우리들의 가을 블루스 - 秋夕 (추석)
[최익준의 청춘을 위하여] (8) 30년 전 고향 바다서 느낀 결핍과 상처 나를 일으키는 힘이 되고 미래의 나 발견 올 추석엔 고향서 치유의 보름달 맞을 터
이번 추석, 고향바다로 갈까?
여름 내내 목이 터져라 오페라 공연을 하던 여름 매미들의 포르테(Forte) 합창소리가 점점 시들어 가며 소심한 발라드 소리로 들리는 9월의 첫 주말입니다.
산책길 하늘 홍수와 태풍에 지친 초저녁 석양과 먹구름 사이로 초승달 하나, 달랑, 고향바다 그리운 내 마음처럼 걸려 있습니다.
그래요! 오늘은 '가을 초승달’이 되었답니다
가을의 전령사 전어구이 길거리 냄새 하나 만으로도, 사연 많고 땀내 나던 늦여름 매미들의 아우성을 가볍게 모두 물러나게 합니다.
그 다음, 9월 초가을 공연 소식들이 스마트폰과 이메일 공간으로 속속들이 파고 들어와 초승달 같은 내 마음을 가을의 한가운데로 초대합니다.
가을이 오면 세상은 붉고 노랗게, 언어로 감당할 수 없는 화려함의 색으로 물들겠지요. 풍요의 숲속에서 비스듬히 걸터앉아 포도주에 취한, 그리스 신화의 슬픈 귀족 디오니소스(Dionysus)처럼 낮술 한 잔 걸치는 상상으로 9월을 맞습니다.
검붉은 포도주와 포동포동 살찐 가을 전어, 햇과일을 안주 삼은 가을의 오후를 상상합니다. 가을의 색감과 단맛 과일의 풍성함은 우리가 초라하게 늙어감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하는 청춘의 최면제 같습니다.
사랑의 결핍같은 가을 초승달
가을 초승달을 바라보면 우주의 수억 광년 우리가 알 수 없는 먼 곳으로부터 내려온, 아득하고 허전한 결핍의 감정들이 내 몸 안으로 스며듭니다. 초승달은 완전한 보름달(Full Moon)로 가지 못한 허기짐입니다.
더 이상 볼 수 없는 부모님, 부모님의 부모님, 그리고 그 부모님들의 부모님들···. 질량 불변의 법칙이 영혼에도 적용된다면 모두 저 하늘 초승달로 떠 있을 겁니다.
지금은 고아로 살아가는 저에게 안타까운 달빛으로 찾아와 밤길 산책길을 비춰 주실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난다면 언젠가 내 아이들 그리고 내 아이들의 아이들도 오늘처럼 초승달에 걸어 둔 제 사랑의 달빛을 받겠지요.
9월의 초승달이 '부산으로 가라' 말을 걸어옵니다
의식의 흐름은 30년전 가을, 부산에서 서울로 떠나 온 청년의 이야기로 이어 갑니다. 부산이 고향인 이십 대 청년은 통기타를 치는 친구와 함께 “The Sea of Heart break”를 부르며 광안리 달빛과 파도를 안주삼아, 노래 한 곡에 소주 한 모금으로 상심한 청춘을 달래곤 했지요.
청년은 결심했지요. 노랫말처럼, 가족의 이별과 가난의 상처가 깃든 부산과 헤어질 굳은 결심을 했지요. 쓸쓸함을 견딜 수 없을 때 찾아가면 늘 말없이 받아 주던 친구같은 광안리 해변 모래밭은 청년에게 영혼의 쉼터로 자리 잡았지요.
학업을 마친 청년에게 부산으로부터 이별은 청년에게 한줄기 빛과 같은 것이었지요. 영화 ‘빠삐용’의 주인공 죄수가 바닷속으로 탈출을 감행하던 장면처럼, 청년에겐 쓸쓸한 상처로 남은 부산 바닥을 떠날 수 있는 글로벌 기업의 서울본사 직장 티켓을 쟁취한 설렘으로 서울행 기차표를 끊었지요.
첫 출근을 위해 서울역 근처 청파동 하숙집으로 찾아가는 부산역발 열차를 타던 날이 9월의 초하루 저녁이었지요. 짙은 고동색 세면 가방에 속옷 한 벌, 세면도구, 미처 다 읽지 못한 스페인 작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Miguel de Cervantes)의 베스트셀러 『돈키호테(Don Quixote)』 번역서와 애지중지 일기장 한 권 달랑 넣고 떠난 내 고향은 부산이지요.
30년이란 시간이 서울과 해외의 출장지에서 바쁘지만 무탈하게 흘렀지요. 청년이 간절히 떠나고 싶던 고향 부산은 시간이 갈수록 거꾸로 점점 그리움의 대상으로 시간과 함께 변해 갔지요.
30년전 서울에 도착하여 첫 출근한 날, 일기장엔 이렇게 씌어 있었군요
“보름달 둥근 미래의 어느 추석날 운전기사가 딸린 리무진을 타고 내가 쓴 시집/에세이 한 권 들고, 더 이상 상처받지 않을 때 비로소 귀향을 생각해 보겠다. 그 때까진 고향에 가지 않겠다”
촌스럽고 단순한 욕망을 기록한 치기 어린 7080 청년의 문장이지만, 어쩌면 고향에서의 결핍은 성장을 꿈꾸는 디딤돌이었으며 부족한 경험과 지성을 채워 내겠다는 출사표 아니었을까요?
여전히 운전기사가 딸린 리무진도 없고, 시집 한 권 쓰지 못했지만 이번 가을의 초승달은 저에게 이만 하면 됐으니 고향에서 보름달을 만나라고 말을 걸어옵니다. 고향의 광안리 바다는 내가 무엇을 하든 언제 가든 거기 있다고 말 걸어옵니다.
고향은 영혼이 떠날 수 없는 곳이며, 노자가 말하는 인생의 ‘비움과 채움’을 계산하지 않아도, 초승달같은 결핍의 상처가 치유의 보름달로 만날 수 있는 곳이 우리의 고향이라 말을 걸어 줍니다.
이번 추석은 부모님이 없는 고향 부산 바다로 갈 심산입니다. 다시 돌아간 광안리에서 옛 친구와 보름달을 보며 ‘Sea of Heart Break’ 노래를 부르려 합니다. 세월은 가도 추억은 생생하니 앵콜곡 '상심의 바다' 노래를 부르려 합니다.
상처와 결핍의 고향은 실은 나를 일으키는 힘이 되었고 미래의 나를 발견한 곳임을 깨달았지요. 이번 추석 광안리에 가면 한가위 달빛의 부모님을 환하게 뵈려구요.
당신의 보름달은 어디에 있을까요?
(PS : 부산에 여행 가시면 여행객 붐비는 광안리/해운대도 좋지만 고즈넉한 분위기에 가성비 횟감이 있는 다대포, 기장, 송정, 영도 태종대와 송도를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