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비대위 내홍, 삼국지로 보니···이준석, 천하이분 막은 '제갈량'

상대 힘 인정 않은 오나라, 친윤계와 닮아 북방 위나라, 이재명이 차지한 민주당 李, 한 수 앞 내다본 가처분으로 전화위복

2022-08-29     이상무 기자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가 17일 오후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당 비상대책위원회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사건의 심문을 마친 후 법원을 빠져나오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연합뉴스

"본인의 정치 권력이 사라지거나 본인이 공천을 못 받을 정도의 위기감을 느끼면 '사성가노'(四姓家奴)를 꼭 하는 분들이다."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가 소위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를 겨냥해 정치 지형을 삼국지연의에 비유하면서 한 말이다. 최근 국민의힘 내 권력투쟁을 보면 중국 고전 속 난세의 영웅호걸이 계략을 쓰는 모습과 꽤 들어맞는 형세다.

이 전 대표는 이달 초 한 명의 생부와 두 명의 의부를 돌아가며 섬겼던 여포를 빗대, 바른정당에 참가했던 권성동·장제원 의원을 세 개의 성(姓)을 가진 삼성가노라고 비판했다. 사성가노는 이보다 더 나빠질 수 있음을 뜻한다.

또한 앞서 이 전 대표는 지난해 윤석열 대선 후보가 입당할 때 제갈량의 '금낭묘계'도 언급했다. 제갈량이 조자룡에게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하나씩 꺼내 실행하라"면서 준 계책이 담긴 비단 주머니 3개를 가리킨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로도 이 전 대표를 삼국지 속 전설적 책략가인 제갈량에 빗댈 수 있을까? 윤핵관들이 비상대책위원회를 세워 국민의힘을 단숨에 차지하려다 좌절을 겪은 현 상황을 '천하이분지계'로 보자면 그럴듯하다. 오나라의 주유는 적벽대전이 끝나자 천하를 북쪽의 조조군, 남쪽의 손권군으로 이등분하자는 계책을 내세웠지만 요절해 꿈을 못 이뤘다.

반면 제갈량은 처음부터 조조·손권·유비가 광활한 대륙을 서로 균형 있게 견제하는 '천하삼분지계'를 제시했다. 북방은 더불어민주당에 해당한다. 손권과 유비가 한때 손잡아 조조군을 격파한 적벽대전은 오늘날 3·9 대선과 6·1 지선을 방불케 했다.

지선 승리 후 국민의힘은 이준석계와 친윤계 두 축의 세력으로 나뉘었다. 둘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상대방의 힘을 인정했느냐다. 이 전 대표는 윤 대통령과 윤핵관들이 향후 5년간 권력을 누릴 것을 인정한 상태에서, 자신의 남은 1년 임기 동안 권한을 써서 세력 기반을 다지려 했다. 애초부터 선거 승리가 목적이 아니었다면 섞이기 어려웠을 두 세력이 멀어지는 것은 언뜻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이 전 대표는 혁신위를 구축하고 당 조직·공천체계 개선 등 전반적인 정당 개혁에 박차를 가했다. 자신의 잇속을 채우려 한다는 오해를 살만한 행동은 하지 않았다. 자기 영역을 안정시키고 군비를 확충해, 장기적으로 촉 땅의 정벌을 생각한 제갈량다운 계략이었다.

북방의 민주당은 조조가 적벽에서 패했지만 건재했듯이, 이재명 의원은 대선 패배 후 보궐 선거로 여의도에 입성해 당권까지 차지하는 막강한 세력을 과시하는 형국이다. 이 전 대표는 자칫하다 밀리면 지는 2024 총선을 준비하려 일찍이 공정한 시스템 재정비에 나섰던 것이었다.

그러나 친윤계는 이 전 대표 존재 자체를 부정하기 시작했다. 이 전 대표를 둘러싼 의혹에 대한 경찰 수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윤리위를 개최해, 6개월 당원권 정지 징계를 하도록 움직였다. 원래 정치권에서 이런 '토사구팽'은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하는 게 맞지만, 윤 대통령과 권 원내대표가 주고받은 '체리따봉' 문자가 공개되면서 그 속내가 드러났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29일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그동안 당내에서 벌어졌던 권력투쟁을 보면 삼국지 인물들이 서로 속고 속이는 모습과 닮았다"며 "한 쪽이 이기는 것처럼 보여도 다른 쪽은 절대 만만하게 물러나지 않는다. 어떤 카드를 꺼낼지 도통 예측하기 어려운데 결국 승자는 국민 편"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29일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그동안 당내에서 벌어졌던 권력투쟁을 보면 삼국지 인물들이 서로 속고 속이는 모습과 닮았다"고 말했다. ㈜하이원엔터테인먼트의 웹 게임 '삼국지존' 대표 이미지. /연합뉴스

윤리위 징계 후 이 전 대표는 전국을 돌며 여론전을 폈다. 윤핵관은 이를 신경 쓰지 않는 듯, 최고위원 사퇴 후 비대위 설립이라는 계책을 썼다. 인위적으로 이 전 대표의 복귀까지 막고 조기 전당대회를 노린 것이었다. 마치 주유가 형주 남부 4군을 평정한 유비를 무시한 것과 닮았다. 차기 당권 주자로는 안철수·김기현·나경원 등 쟁쟁한 장수들이 후보로 꼽힌다.

하지만 한 수 앞을 내다본 이 전 대표의 가처분 신청으로 결과는 뒤집혔다. 주유가 제갈량의 지략을 뛰어넘지 못한 것과 비슷하다. 법원은 26일 국민의힘이 비대위 전환 국면 당시는 '비상상황'이었다고 볼 수 없다며 전국위원회의 주호영 비대위원장 의결을 무효로 봤다.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은 국민의힘 지도부는 혼돈에 빠졌다. 젊고 유능한 주유가 병으로 죽자 당황했던 오나라의 모습과 유사하다. 주유는 죽기 전 “하늘은 주유를 세상에 내놓고, 어째서 제갈량을 또다시 내셨습니까?”라며 탄식한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의힘의 법원 판결 이후 대처는 오나라와 달라 보인다. 오나라의 경우 천하이분지계를 포기하고 온건파인 노숙을 주유의 대체자로 내세워 시국을 수습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권 원내대표를 비대위원장 직무대행으로 선출하고, 추석 전까지 새로운 비대위 구성을 추진한다는 강공 모드다.

이 전 대표는 비대위의 활동에 대한 추가 가처분 신청을 했다. 이 전 대표의 소송 대리인단은 입장문을 통해 "무효인 비대위가 임명한 '무효 직무대행'과 '무효 비대위원'은 당을 운영할 적법한 권한이 없다"고 주장했다.

향후 권력 투쟁은 어떻게 전개될까. 이 전 대표는 당원권 정지 징계가 종료되는 내년 1월 복귀할 수도 있다. 다만 지지세를 키우고 명예회복을 했다고 해도, 눈앞의 형세는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그때는 아마 이 전 대표가 제갈량의 '출사표'(出師表)를 페이스북에 인용하며 당원들 앞에서 비장한 각오를 다질지도 모른다.

출사표는 촉한의 재상 제갈량이 위나라를 정벌하고자 황제 유선에게 올린 표문이다. 나라의 장래에 대한 제갈량의 걱정과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 주된 내용을 이루며, 그 진정성이 표문 전체에 절절히 녹아있다. 옛말 중에 "출사표를 읽고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충신이 아니다"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첫 구절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선제(先帝)께옵서는 창업하신 뜻의 반도 이루지 못하신 채 중도에 붕어하시고, 이제 천하는 셋으로 정립되어 익주가 매우 피폐하오니, 참으로 나라의 존망이 위급한 때이옵니다. 하오나 폐하를 모시는 대소 신료들이 안에서 나태하지 아니하고 충성스러운 무사들이 밖에서 목숨을 아끼지 않음은 선제께옵서 특별히 대우해 주시던 황은을 잊지 않고 오로지 폐하께 보답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