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미옥 더봄] 비가 오면 생각나는 사람이 되어

[송미옥의 살다보면2] 더불어 산다는 것은 헝클어진 마음 하나 붙잡아주며 힘든 시간을 함께 이겨나가는 것

2022-08-17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수해복구 현장 /사진=여성경제신문

황당한 비 피해에 일상이 뒤숭숭하다.

오늘밤 또 폭우가 내린다는 뉴스에 강가에 사는 나 역시 종일 밭 설거지를 하고 바싹 긴장상태다.

라디오를 듣다가 간접피해를 입은 어느 분의 말에 찐한 감동이 일었다.

‘전기까지 나간 캄캄한 밤, 방안 구석구석을 알아서 청소해주던 로봇청소기가 방향을 잃고 여기저기 헤매며 웅웅거렸습니다. 청소가 끝나면 스스로 착지하던 자기 집을 바로 앞에 두고도 빙빙 돌며 허둥대는 꼴이, 전기 하나 꺼졌을 뿐인데 우왕좌왕하는 내 모습이랑 너무 닮아 많이 우울했습니다.‘

정말이지 잠깐의 정전에도 소스라치는데 이번 비로 장기간 전기가 끊기고 물에 잠긴 냉장 냉동식품이 폐기되는 모습은 티브이를 보는 것뿐인데도 마음이 아프고 아려온다.

여기저기 채널에서 폭우소식에 어수선할 때 일 년에 서너 번 안부를 묻는 지인에게서 문자가 왔다.

“안동 소갈비 요리가 최고라고 방송에 나오네요. 이 비가 그치면 가 볼까요?”

며칠째 비로 마음까지 눅눅하고 칙칙한 지금 뜬금없이 갈비라니, 그래도 나는 금방 기분이 좋아져서 ‘이렇게 안부를 주시니 감사합니다. 좋지요!’라고 답장을 보냈다.

 

아픔도 고통도 작아지는 '시간'이라는 선물···. 언제 비가 왔냐는 듯 얼굴을 내민 햇살이 눈부시다. /송미옥

2007년도인가, 우리가 시골로 내려온 다음 해 그곳도 비가 억수같이 내려 물에 잠긴 이웃들이 참 많았다. 산사태 때 피해를 본 아랫마을 사람들의 표현에 의하면 나무가 축지법을 쓰듯 성큼성큼 뛰어 내려와 순식간에 마을을 덮쳤다고 했다.

함께 귀농교육을 받던 회원도 집이 물에 잠겼다. 며칠 동안 남편과 함께 새벽밥을 먹고 달려가 쓰레기를 치우고 쓸고 닦았다.

그때 내가 열심히 팔을 걷어붙이고 일한 속마음엔 봉사라는 마음속에 숨어 있는 욕심도 있었다. 우리가 피해를 안 봤으니 다행이고, 우리 대신 누군가가 피해를 입은 것 같은 마음에 송구스러워 온 힘을 다해 일했다. 또한 무엇이든 열심히 봉사할 테니 시한부 남편의 생명을 조금만 더 연장해 달라고 신에게 흥정도 했다.

지나고 보니 내 삶이 힘들고 고통스러웠다고 엄살을 부려도 아픔이나 큰 고통을 내가 직접 겪어보지 않았다. 아무리 열심히 간병을 하고, 열심히 봉사를 했다 해도 내가 당해보지 않고서는 아픈 당사자의 마음을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그러나 사람에겐 헝클어진 마음속 올 하나 붙들어주는 일도 의지가 되고 따뜻하다고 한다

지금 그곳은 세계에서도 자랑하는 국립 백두대간 수목원이 들어섰다.

15년의 시간이 지났건만 비슷한 뉴스만 나오면 핑계를 대어 선물을 보내오고 밥을 사 주시곤 하는 지인은 세월이 흘러도 큰비만 내리면 가슴이 뛴다고 한다.

비싼 밥을 사준다는 건 지금의 삶이 평안하고 여유로우며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 같아 기분이 좋다. 이참에 만나면 그 옛날의 삶터인 그곳에 한번 다녀오자고 해봐야겠다. 어젯밤 내린 비로 오늘 뉴스도 어수선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라살림하는 위정자들은 헝클어진 마음속을 더 뒤집어 놓으니 대략난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