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d의 역습]⑤ 포스트 코로나 시대 ‘거인’이 된 美 연준‧‧‧신흥국 자본유출 ‘공포’

美 총예산 절반 2900조원 지원금 쏟아내 사상 최악 인플레에 ‘거인 보폭’ 금리인상 침체 우려에 ‘킹달러’ 신흥국 이탈 가속

2022-08-11     최주연 기자

반세기 만에 스태그플레이션 시대가 돌아왔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6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 금리를 0.75% 포인트 인상한 자이언트 스텝을 단행했다. 비둘기파로 분류되는 파월에게 레이건 시대 폴 볼커의 역할을 요구할 만큼 글로벌 경제가 급변하고 있다.

앞으로도 연방준비제도(Fed)가 볼커를 소환해 초고강도 금리 인상을 계속한다면 어떻게 될까? 당시 소련과 동유럽이 겪었던 위기는 비기축통화국인 신흥국에 곧바로 닥칠 전망이다. 국제금융시장에서 자동현금인출기(ATM)로 불리는 한국도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코로나 팬데믹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소용돌이가 몰아치는 국내외 경제는 1970~1980년대와 데칼코마니 양상이다. 여성경제신문이 당시와의 유사점을 살펴보고 미국의 긴축 정책이 국내외 경제에 미칠 영향을 다섯 차례에 걸친 시리즈로 짚어본다. [편집자주]

① 반세기 만의 스태그플레이션과 자이언트 스텝
② 반복하는 위기···한국 1970년대와 뭐가 다른가
③ '회색코뿔소' 앞에 선 파월, 고용 믿고 경제위기 부정
④ 버블 붕괴 템플릿 : 닷컴과 모기지의 배신
⑤ 포스트 코로나 시대 ‘거인’이 된 美 연준‧‧‧신흥국 자본유출 ‘공포’

코로나19 사태로 2020년 세계성장률은 –3%대를 기록했다. 미국은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양적완화 정책을 펼쳤고 이로 인해 최악의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다. 연준이 물가를 잡기 위해 ‘자이언트스텝’에 나서면서 달러화 가치가 급상승하면서 신흥국의 달러화 유출도 본격화되고 있다. /연합뉴스, 여성경제신문 재편집

코로나19는 대양적완화의 시대를 열었다. 한국을 비롯한 미국, 일본, 중국, 프랑스, 독일 등 침체되는 소비와 생산을 일으키기 위해 무차별적으로 돈을 풀었다.

특히 미국은 코로나19 피해 확산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2년간 대출 조건을 완화하고 지원금을 홍수처럼 쏟아냈다. 50개 주는 현금 무더기에 잠겼고 미국은 41년 만에 최악의 인플레 폭탄을 맞았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물가를 잡기 위해 ‘자이언트스텝(한 번에 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에 나섰다. 28년 만에 거인이 된 연준의 거대해진 금리인상 보폭만큼 달러화 가치가 급상승하고 있다. 이 바람에 신흥국의 달러화 유출도 본격화되고 있다.

다시 돌아온 양적완화의 시대
국민 손에 현금 쥐여 경기부양


신종바이러스가 막 세계를 집어삼키기 시작했던 2020년. 이미 미국은 2019년 8월부터 금리인하기에 들어선 상태였다. 연준 수장인 제롬 파월 의장은 1%대 저금리 정책을 펼쳤고 가계부채 합계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부채 합계를 넘어서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2020년 1월 20일, 중국 우한에서 입국한 30대 미국인을 시작으로 아메리카 대륙에 신종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한다.

2020년 1월 20일, 중국 우한에서 입국한 30대 미국인을 시작으로 아메리카 대륙에 신종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한다. 사진은 2020년 9월 8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비스마르크에 있는 비스마르크 이벤트 센터 안에서 COVID-19 검사를 위해 차량이 줄을 선 모습. /AP=연합뉴스

3월 26일 미국은 코로나 확진자 수가 10만명을 육박했다. 머지않아 확진자 수는 중국과 이탈리아를 넘어 세계 1위가 됐다. 연준은 2020년 3월에만 기준금리를 두 번 인하, 총 1.50%포인트를 내리며 제로금리(0.00~0.25%) 시대를 연다. 미국의 거침없는 양적완화 방아쇠가 당겨진 것이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코로나19 긴급 예산으로 2조 2300억 달러(한화 약 2900조원)를 통과시켰다. 이 뿐 아니라 국채 및 주택대출담보증권(MBS)을 무제한으로 매입했다. 특히 1000억 달러 규모의 가계 대출을 확대했다. 그야말로 대출 신청서에 사인만 할 수 있으면 누구나 돈을 빌릴 수 있던 때였다.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와 속출하는 사망자에 미국 고용시장은 초토화됐다. 4월 미국 실업률은 14.7%를 기록했다. 전달 실업률은 4.4%에 불과했다. 이 추세라면 1930년대 대공황 수준(24.9%)의 실업률에 육박할 것이라는 공포감이 조성됐다.

3월 셋째 주부터 6주 동안 3030만 건의 실업수당 신청이 쇄도했다. 이는 미국 전체 노동력의 18.4%에 해당하는 인력이었다. IMF는 4월 발표한 당해 미국의 경제성장률을 –5.9%(세계 경제성장률 –3%)로 전망했다.

캘리포니아주 LA와 롱비치 항구에는 트럭 기사가 부족해 컨테이너가 쌓여갔다. 사진은 LA 롱비치 항구 /로이터=연합뉴스

일할 사람이 없으니 공급망 경색은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캘리포니아주 LA와 롱비치 항구에는 트럭 기사가 부족해 컨테이너가 쌓여갔다. 지구상에 모든 항구는 미국과 같은 장면을 연출했고, 결국 세계적인 공급망 둔화를 가져왔다.

이듬해에도 미국은 국민 손에 현금을 쥐어줬다. 새 행정부 수장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021년 3월 1억 9000억 달러(한화 약 2290조원) 규모의 코로나19 구제 법안을 통과시켰다. 연준은 제로금리를 유지하면서 매월 1200억 달러 국채를 매입했다. 0% 금리는 이듬해 3월까지 계속됐다.

‘돈 뽕’ 부작용에 치솟은 9% 물가
자이언트스텝에 신흥국은 ‘화들짝’


미국의 인위적인 경기부양은 결국 고물가를 동반하고야 말았다. 지난해 미국의 연간 GDP성장률은 5.7%로 37년 만에 최고치(1984년 7.2% 성장)를 달성했지만, 41년 만에 최악의 인플레이션(6월 물가상승률 9.1%)도 소환했다. 인플레가 바이든 행정부의 천문학적인 양적 완화와 연준의 통화 완화 정책 덕이라는 것에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연준은 지난 두 달 동안 두 번 연달아 자이언트스텝을 단행했다. 6월 FOMC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올린 지 한 달여 만인 7월 28일 또 한 번의 자이언트스텝을 결정한 것이다. 이 같은 큰 폭의 금리인상은 28년 만의 일이었다.

미국의 인위적인 경기부양은 결국 고물가를 동반하고야 말았다. 41년 만에 최악의 인플레이션(6월 물가상승률 9.1%)도 소환했다. /자료=BLS, 여성경제신문 재구성.

연준의 공격적인 금리인상은 신흥국에 대한 자본 유출을 불러왔다. 미국 금리가 높아지면서 ‘달러 캐리 트레이드’ 청산이 가속화됐기 때문이다.

캐리 트레이드(Carry trade)는 금리가 낮은 국가에서 화폐를 빌려 타국의 고금리 금융자산에 투자하는 것을 말한다. 미국이 신흥국보다 금리가 낮을 때 외국인들은 미국 은행에서 싼 이자로 달러화를 빌려, 그보다 금리가 높은 한국과 같은 신흥국 통화나 주식, 채권 등에 투자해왔다. 즉 달러 캐리 트레이드로 리스크 없이 금리 차이만으로도 돈을 번 것이다.

그런데 연준의 금리인상으로 미국에서 빌린 달러화에 대한 이자를 더 많이 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수익성 악화는 곧 캐리 트레이드 청산 압력으로 작용했다.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까지 겹치면서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 심리가 높아진 것도 신흥국 자본 유출 요인이 됐다.

신흥국 자본 유출 5개월 연속 ‘순이탈’

올해 3월부터 신흥국 달러 유출은 계속되고 있다. 7일 국제금융협회(IIF) 통계에 따르면 지난 3~7월 한국, 중국, 싱가포르, 대만 등 신흥국에서 외국인 자금 380억 달러(한화 약 49조6600억원)가 순유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5개월 연속 순이탈은 2005년 이후 최장 기간이다. 7월 중에만 105억 달러(한화 약 13조7025억원)가 유출됐다.

달러 보유액이 부족한 국가들은 연쇄적인 외환위기에 빠지고 있다. 특히 남아시아 신흥국은 상황이 심각하다. 스리랑카는 지난 5월 디폴트를 선언했다. 파키스탄은 지난달 국제통화기금(IMF)에 11억 7000만 달러를 지원받기로 했고 방글라데시도 지난 24일 IMF에 45억 달러 규모의 차관 지원을 요청했다. 가나 등 아프리카 신흥국들도 디폴트를 선언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국제금융협회(IIF) 통계에 따르면 지난 3~7월 한국, 중국, 싱가포르, 대만 등 신흥국에서 외국인 자금 380억 달러(한화 약 49조6600억원)가 순유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5개월 연속 순이탈은 2005년 이후 최장 기간이다. /자료=IIF, 여성경제신문 재구성.

한국도 안전하진 않다. 한국은 미국과 기준금리가 역전된 국가 중 하나다.(한국 2.25%/미국 2.5%)

몇 해 국내 주식시장에서 연간 외국인 순매수 규모는 마이너스를 지속하고 있다. 한국거래소 정보데이터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7월까지만 국내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자본은 18조원이 유출됐다. 2020년과 2021년에도 각각 24조원, 26조원이 빠져나갔다.

반면 원화채 순매수는 호조세를 보이고 있다. 외국인의 원화채 매수세는 다소 둔화세를 보이고 있지만 이탈로 이어지진 않고 있다. 연준이 처음 자이언트스텝을 단행했던 6월에도 외국인은 원화채를 10조원이 넘게 순매수했다. (△1월 6.8조 △2월 6.4조 △3월 6.3조 △4월 4조 △5월 6.4조 △6월 10.5조 △7월 6.2조)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은 본지에 “우리나라 국채는 신용도가 높은 것에 비해 수익률이 좋다. 10년물을 놓고 보자면 미국 국채(2.794%)보다 한국 국채(3.2120%) 금리가 더 높다”면서 “운용자 입장에서는 기준금리보다 시장금리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자금 유출이 없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공 연구원은 “국내 들어오는 외국 자금 성격이 개인 자금보다는 중앙은행 외환보유고나 국부펀드 등의 공공 자금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매매에 민감하지 않다”면서도 “기준금리 역전 폭이 더 커지고 시장금리도 역전된다면 그때는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문지성 ADB연차총회준비기획단장도 “(외국인 투자자들이) 가급적 채권은 만기까지 들고 가려 하지만 유동성이 좋기 때문에 시장 분위기가 바뀌면 언제든지 팔고 정리할 가능성은 있다”고 강조했다.

미 금리인상 할수록 ‘강달러’ 기조 지속
물가‧실업률이 관건…인상 시그널 ‘곳곳’


이처럼 미국의 금리인상은 신흥국의 경제 상황을 좌지우지한다. 달러 가치가 높아질수록 달러에 대한 투자는 많아지는 반면 신흥국 경제를 바치고 있던 외국인 자본이 유출되고 이는 곧 외환위기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연준은 언제까지 얼마나 금리를 올릴까.

연준은 물가상승기에 실업률이 안전하게 내림 추세일 때 금리를 큰 폭으로 인상했다. [A]는 닷컴버블, [B]는 글로벌 금융위기, [C]는 7년 0.25%대 저금리에 마침표를 찍었던 2015년 말, [D]는 제롬 파월 의장이 금리인상에 시동 건 올해 3월이다. /자료=Fed, BLS, 여성경제신문 재구성

지난 24년간 연준이 큰 폭으로 금리를 인상할 때는 몇 가지 특이점이 있었다. 물가만 높아서는 선뜻 칼을 뽑지 않았다. 연준은 물가상승기에 실업률이 안전하게 내림 추세일 때 금리를 큰 폭으로 인상했다. 미국 경제에 닥칠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포석을 까는 것이다.

미국의 금리 인상은 2000년대 들어 크게 총 네 시기로 나눌 수 있다. 그래프상 [A]는 닷컴버블 [B]는 글로벌 금융위기 [C]는 7년 0.25%대 저금리에 마침표를 찍었던 2015년 말 [D]는 제롬 파월 의장이 금리인상에 시동 건 올해 3월이다.

그래프에서처럼 네 시기는 소비자 물가상승과 동시에 실업률이 안정을 찾았던 때다. 2021년 중반 금리 인상 압력에도 파월 의장이 금리를 동결했던 것은 ‘올릴 때’가 아니었던 것이다. 실업률이 14.7% 최고점을 찍은 2020년 4월을 지나 2021년 8월까지도 미국 실업률은 6% 내외였다. 2022년 3월이 돼서야 3%대로 내려앉았다. 파월 의장은 3월이 돼서야 금리 인상 카드를 들었다.

파월 의장은 미국 경제에 대해 “매우 강한 노동시장”과 “최저수준인 실업률” 등의 평가를 자주 내고 있다. 지난 6월 열린 유럽중앙은행(ECB) 컨퍼런스에서도 파월 의장은 “강한 노동시장을 유지하면서 인플레이션을 2%로 되돌릴 길이 있다고 생각한다. 할 수 있다고 믿는다”라고 강력하게 말했다. 이 발언이 공격적인 금리 인상의 시그널이라는 해석은 역사적인 맥락에서 나온다.

2년 안에 3% 이상 금리 인상 시
신흥국 금융 위기 가능성 높아져


우려가 되는 것은 연준이 큰 폭의 지속적인 금리인상 이후 아시아 혹은 전 세계 경제에 큰 금융 위기가 덮쳤다는 것이다. 1994~1995년 총 3% 인상 이후 2년 있다가 아시아 금융위기가 발생했고, 2004~2006년 4.25% 인상 이후 2년의 시차를 두고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했다.

미국 7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이 9.1%로 41년 만에 최고치인 만큼 7월 실업률은 1969년 이후 최저치인 3.5%를 기록하고 있다. 물가를 잡기 위한 연준이 금리를 오랫동안, 크게 올리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한편 투자은행 JP모건과 통화정책 분석기관 LH마이어는 9월 기준금리 인상 폭을 종전 0.5%포인트에서 0.75%포인트로 상향 조정했다. 씨티그룹은 1%포인트 인상 가능성까지 제시했다.

연준이 큰 폭의 지속적인 금리인상 이후 아시아 혹은 전 세계 경제에 큰 금융 위기가 덮쳤다. 사진은 지난달 12일 코스피가 2310대로 하락한 모습. /연합뉴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여성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과거 사례를 볼 때 연준이 1~2년 사이 3% 이상 급격히 금리 인상을 하면 신흥시장에 위기가 오곤 했다. 이번에도 그런 상황이 온다면 위기가 올 가능성도 있다”면서 “경상수지와 무역수지를 흑자로 전환시키면 국가신뢰도가 올라감에 따라 자본유출을 막을 수 있다. 통화 스왑 방법도 있지만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