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미옥 더봄] 백년을 살아도 두려운 저쪽세상

[송미옥의 살다보면2] 어르신들의 살아온 연륜은 때론 우화가, 신화가 되어 힘든 삶의 무게를 덜어준다

2022-08-03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119가 벌써 두 번째 출동이다. 며칠 사이 가까운 지인 세 분이 삶에서 죽음으로 이동하셨다. 한 어르신은 100세가 가까웠지만 건강하고 정신도 맑으셨는데 요양사분이 방문한 날 밭에 쓰러져 계신 걸 발견했다. 다음날 어르신이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돌아가신 분에겐 죄송하고 송구스러웠지만 참으로 복 받은 노인이란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엔 동네분들 대접한다며 손수 손칼국수를 밀어 오시고, 백년의 세월을 살아오며 터득한 연륜으로 힘든 이웃들에게 우화로, 때론 동화로 삶의 해답을 알려주시던 분이다. 요 며칠 어르신과 함께했던 이야기를 꺼내보며 추모해 본다.

“날 보고 ‘제발 일하지 말고 노소’ 말하지만 내하는 일이 놀자고 하는 거여.

평생 일만하고 살아왔으니 요즘은 그나마 내 하고 싶을 때만 하니 얼마나 좋은가.

그게 내 놀이터지.“

 

마당 한귀퉁이 작은 텃밭에 이것저것 심어놓고 나도 식물과 친구가 되어 놀고 있다. /송미옥

“이건 농사도 아니야. 조 우에(저 위에) 손가락 만한 거 한 뙈기, 조 고개 넘어 조끔, 조 모퉁이 돌아가면 귀퉁이 땅 조끔. 논농사도 우리 새끼들 양식 할 만큼 쪼금. 다 모아도 손바닥만큼이나 할라나, 날마다 이것들(식물)하고 이야기도 하고 친구지. 퍼질러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 혼자 주절거려도 다 들어주니 행복하지.“

(어르신은 하루도 빠짐없이 정확한 시간에 요강을 밖에 내놓고 보행보조기를 밀며 밭을 순회하셨다. 아침나절 구옥 툇마루에 요강이 안 보이면 지나가는 이웃들이 어르신 댁으로 가서 요강 안 내놓았다고 구시렁대던 정이 넘치는 동네다.)

“커피는 많이 마시지. 달달하니 마시면 힘이 난다. 잠 안 온다고 걱정하지만 나야 조금 있으면 영원히 잘 건데 걱정 없다. 하하.

또 아들이 공복에 마시지 말고 꼭 식후에 마시라는데 먹을 거 많은 지금 세상에 공복상태가 언제 되나. 마시고 싶을 때 마셔. 나이 들면 몸이 하자는 대로 하는 것이 1등이고 건강 챙기는 건 2등이지.“

“산 좋아하던 사람 산에서 죽고, 물 좋아하던 사람 물에서 죽으면 ‘잘 갔네’ 하면서 뉴스에 나오잖아. 평생 흙이랑 어우러져 살던 우리네, 그렇게 일하다 죽으면 그게 천복인데 그건 또 고생하다 갔다고 말하데. 잣대가 형평성이 없어.“

“우리 손자랑 손자며느리가 갓난아기 인사시킨다고 며칠 전에 왔어.

아기를 맡기고 잠시 나간 손자부부가 대문 나서기 전부터 열두 번도 넘게 전화해서는 ‘애기 뭐해?’ 라고 묻는 거야. 참나 우스워서 원.

아니, 갓난아이가 가만히 누워 있지, 갸가 청소를 하나, 내 캉 대화를 하나, 하하하.

하긴 고것이 눈만 뜨면 딴 짓하고 하루하루 새로운 재주 부리니 내가 봐도 얼마나 신기한지 몰라. 그러니 우리도 변해야 살아남지.

‘어메 오늘은 뭐하셨소?’ 안부해오면 한 말 또 하고 또 하고 그러지 말고 날마다 바꿔서 즐거운 이야기 해줘. 그러면 ’그래요?' 하고 되묻기도 하고 ‘쉬어가미(가며) 하소‘하고 대화가 잘 끝난다. 그런데 고마 아무리 입단속을 해도 밥 먹고 반찬 먹듯 아프단 말이 맨 끝에 따라 나오데.

 

어떤 일이든 찾아서 봉사하시는 동네 어르신들-전날,고추 꼭찌 딴다고 했더니 장갑을 들고 출근하듯 오셨다. /송미옥

하하. 잘 나가다가 매번 끝에 가선 버럭 한소리 듣고 끝난다. 어른 되면 아픈 기 유세라 안 카나. 이만큼 살아 온 것도 대통령 되기보다 더 힘든 시간인데, 저 양반이 또 유세부리는구나 생각해주면 될 텐데 말이다.“

“먼저 떠난 사람들 안 돌아오는 거 보면 저쪽세상도 좋은 세상 같지만 알 수가 있나?

늙으면 죽어야 한다는 말이 절로 나오지만 백년을 살아도 죽는 건 두려운 거라. 아침에 눈 떠지면 감사하고 기쁘지만 아픈 몸을 끌고 또 하루를 살아야 하는 고된 하루가 더 무섭기도 해.“

문득 나는 남은 자들에게 어떤 뒷담화로 남아 기억될까 궁금해지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