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 더봄] 노인을 위한 디지털은 없다? 있다?
[김현주의 텐션업 갱년기] 사회 운영 프로세스가 디지털화 될수록 소외감 느끼고 자신감 잃는 노년층 일상
“큰아버지, 제가 이번주에 시간이 없어서요. 천천히 알아보면 안 될까요?”
“그럼 내가 너희 아빠랑 직접 가마. 어디로 가면 된다고 했지? 가서 뭘 떼면 된다고?”
아무래도 마음이 급하신가 보다. 하는 수 없이 서두르겠다고,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말씀드렸다.
아버지 윗대 어르신이 관여된 일로 등기를 확인하고 검토할 일이 생겼다. 팔순이 넘으신 아버지와 큰아버지가 그 전 세대가 남긴 서류를 확인하는 일을 직접 하시겠다니. 두 분이 나선다고 해서 원하는 정보를 바로 얻기는 힘들 것이다. 어디서부터 무엇을 찾아봐야 하는지, 그것을 위해 누구에게 혹은 어느 기관에 가서 문의를 해야 하는지 정리도 되지 않은 채 집을 나서겠다고 하시니 말리는 수밖에 없었다. 가능한 수준까지 내가 정리해보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요즘은 인터넷 사이트에서 왠만한 공문서를 바로 발급받을 수 있는데다, 지자체나 기관의 담당자를 찾아 관련한 문의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일을 하려면 인터넷 활용을 잘 하고, 원하는 내용을 검색할 수 있어야 하며, 디지털 기기에도 익숙해야 한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서류를 어디서 구해야 하는지, 누구를 찾아 관련 내용을 문의해야 하는지 아버지 연배의 나이에서 빠르게 파악하기는 어렵다.
우선 포탈 사이트 검색을 통해 비슷한 사례의 내용을 정리해 보았고, 공인중개사 선배에게 물어보며 일의 순서를 파악했다. 주소만 알면 바로 등기를 발급받을 수 있는 인터넷등기소를 통해 현재 등기 상황을 확인했다. 집 안의 프린터로 등기를 출력하며 인터넷 쇼핑을 해 보지 않는 어르신들이 인증서로 로그인하고 결제하는 과정을 진행하기는 쉽지 않겠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게다가 이번 건은 컴퓨터로 등기가 정리된 2000년 이전 등기까지 확인해야 하기에 인터넷등기소에서 폐쇄등기부 발급예약을 하고(예약이 필요한지, 예약 없이 직접 등기소에 가 발급을 받을 수 있는지도 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등기소를 찾아 발급받아야 한다. 나 역시 처음 해 보는 일이라 검색과 문의를 통해 확인을 하며 진행했는데, 이 모든 과정을 도와주는 이 없이 어르신들이 할 수는 없으리라.
그렇다고 등기 한 부를 떼자고 법무사를 찾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 관공서 창구에 앉아 상담 직원과 계속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시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이해가 갔다. 모두에게 편리하다는 비대면 시스템으로 사회는 변화하고 있지만, 그분들에게는 이 변화가 난감할 수밖에 없다.
2026년이면 대한민국은 65세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고 한다. 물론 요즘 60대는 모바일과 인터넷 환경에 익숙한 이들도 많아 다양한 방식으로 디지털 기기를 이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분들이라고 하더라도 언론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언급되는 ‘빅데이터’, ‘인공지능’, ‘가상현실’과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디지털 환경에 대한 이해가 젊은 세대만큼 친숙할 수는 없다. 하물며 60대가 그런데 70대와 80대의 연령층은 말해 무엇하랴.
지난 2년여간 코로나로 외출이 어려워지고 대면활동이 줄면서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야 하는 생활이 늘어났다. 장을 보기도 어렵고 식당을 찾아 나설 수도 없으니 인터넷 쇼핑으로 식재료를 주문하고 배달 앱을 통해 음식을 시킬 수밖에 없었다. 어딘가라도 방문하면 문 앞에서 QR코드로 접종여부를 인증해야 했던 건 물론이다.
그때 부모님도 디지털에 조금 익숙해지시기는 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하나 둘씩 시도해 볼 수밖에 없었으니 아주 조금 활용폭이 넓어지기는 했다. 처음에는 카카오톡을 열어 접종 인증 페이지를 찾는 것도 힘들어 하셨지만 어느새 문 앞에 도착하면 자연스레 핸드폰을 여셨고, 시장에 못 나가니 홈쇼핑 횟수가 늘었고, 동네 카페에 가시면 느리지만 키오스크를 통해 커피를 주문하셨다.
하지만 여전히 식재료는 동네 시장에서 사 오시고, 은행 업무는 창구에 가 직접 해결하신다. 무인계산대는 엄두도 못 내신다. 휴대폰 사용도 전화를 걸고 받는 것 이외에는 카카오톡 확인과 유튜브 보기 정도다. 그 외 필요한 내용을 검색하신다든가 앱을 다운받아 서비스를 활용하는 건 생각도 안 하신다.
휴대폰 속 화면이 잘 보이지도 않고, 안내라고 뜨는 단어들도 생경한 상황에서 다음 단계를 진행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실 리가 없다. 불편한 상황이 속상하고, 그래서 누군가에게 부탁해야 하는 상황이 미안할 뿐이다.
몇 년 전 EBS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 한 편이 떠올랐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다큐시선)라는 제목 때문일 수도 있다. 디지털 기기를 어느 정도 활용할 수 있는지에 따라 삶의 효용감이 달라지는 상황에서 디지털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고연령층에 대한 맞춤형 교육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프로그램에서 기억나는 장면은 기차를 타고 서울이나 큰 도시로 가야 하는데 철도 예매 사이트에서 결제하는 것이 어려워 현장결제를 해야하고, 그래서 원하는 시간의 기차를 타지 못하고 역에서 몇 시간씩 기차를 기다리는 노인의 모습이다. 키오스크에서 식사 주문을 하지 못해 결국 식당 문을 도로 나서는 노인도 있었다.
물론 교육을 통해 디지털 이용 능력을 탑재해 이전보다 활기있게 생활하는 노인의 사례도 등장하지만 그건 남의 이야기일 뿐, ‘물어볼 사람은 자식밖에 없는데 돌아오는 건 짜증’이라는 나레이션이 대부분 공통적인 상황일 게다. 나 역시 다르지 않았으니 말이다.
신기술을 탑재한 신제품에 열광하는 사이, 그곳에 다가서기 버거운 분들의 난감한 얼굴은 잊혀지는 듯하다. 그분들이 원하고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기술과 교육이 필요하다. 연륜과 경험으로 쌓은 그분들의 시간을 스스로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나눌 수 있는 플랫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