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d의 역습]③ '회색코뿔소' 앞에 선 파월, 고용 믿고 경제위기 부정
물가상승률이 임금보다 더 높은 게 문제 명목 지표로 불황 판단하는 건 화폐 환상 2008년 금융위기도 무리한 낙관이 불러
코뿔소는 덩치가 커서 멀리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코뿔소가 달려오기 시작하면 누구든 두려움에 몸을 멈추게 된다. 사전에 예상할 수 있는 사고를 쉽게만 보다가 통제 불능의 위험에 빠질 수 있는 상황을 ‘회색코뿔소 메타포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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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 만에 스태그플레이션 시대가 돌아왔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6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 금리를 0.75% 포인트 인상한 자이언트 스텝을 단행했다. 비둘기파로 분류되는 파월에게 레이건 시대 폴 볼커의 역할을 요구할 만큼 글로벌 경제가 급변하고 있다. 앞으로도 연방준비제도(Fed)가 볼커를 소환해 초고강도 금리 인상을 계속한다면 어떻게 될까? 당시 소련과 동유럽이 겪었던 위기는 비기축통화국인 신흥국에 곧바로 닥칠 전망이다. 국제금융시장에서 자동현금인출기(ATM)로 불리는 한국도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코로나 팬데믹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소용돌이가 몰아치는 국내외 경제는 1970~1980년대와 데칼코마니 양상이다. 여성경제신문이 당시와의 유사점을 살펴보고 미국의 긴축 정책이 국내외 경제에 미칠 영향을 다섯 차례에 걸친 시리즈로 짚어본다. [편집자주] ① 반세기 만의 스태그플레이션과 자이언트 스텝 |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반세기 만의 최고의 성적을 보이는 고용 지표를 앞세워 자이언트스텝을 강행한 것이 경제 위기 논란을 오히려 더 부추기는 양상이다.
미 경제분석국은 지난 28일 올해 2분기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전 분기 대비 -0.9%(연 환산 기준)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시장 전망치(0.5%)를 크게 밑도는 수치인데다 연준이 자이언트스텝을 취한 것에 이어진 발표다.
파월 의장은 2분기 GDP 속보치 발표를 앞두고 "고용이 매우 강한 상황에서 경기 후퇴(recession)는 이치에 맞지 않는다"면서 "국내총생산(GDP) 통계를 의심하게 한다"고 언급했다. 미국 경제성장률이 올 1분기 마이너스 1.6%로 추락하고 2분기에도 마이너스 성장률이 계속되는 현상을 믿지 못하겠다는 태도였다.
미국 고용 시장이 50년 만에 전성기를 맞은 상황이란 것이 파월 의장 입에서 "매우 강력한 노동시장"이라는 표현이 나온 이유다. 지난 6월 비농업 부문 고용이 37만2000명 증가하고, 실업률도 지난 3월부터 3.6%를 유지하면서 반세기 내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파월 의장은 이를 근거로 "지금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노동시장 호황에 따른 어느 때보다 높은 임금인상률이 이번 통화 인플레이션의 원인인 점을 간과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따른다.
코로나19 기간 미국의 실업은 자발적인 유인에서 발생했다. 2020~2021년 구직자가 줄면서 미국 기업들은 사람 구하기가 어려워지자 임금을 인상해왔다. 또 이 과정에서 이직률과 연봉도 치솟았다. 이는 물가상승률(CPI)이 40년 만에 최고치를 달리면서도 50년 만의 최저 실업을 마주하게 된 원인이 됐다.
인플레이션과 실업률 사이엔 트레이드 오프(trade-off·상쇄)가 존재해 어느 한쪽을 올려 다른 한쪽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이 경제학원론에 나오는 필립스 곡선 원리다. 임금(7.1%↑)보다 물가(9.0%↑)가 더 치솟는 상황은 필립스의 주장과 부합한다. 하지만 고용 상황이 너무 좋다 보니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케인스식 부양책을 쓸 수도 없게 됐다. 이같은 딜레마가 비둘기파인 파월 의장이 인플레이션을 제1의 적으로 설정한 매파로 변신한 이유로 풀이된다.
경기 후퇴는 신용의 과잉 팽창으로 생기는 피할 수 없는 결과다. 중앙은행이 통화량을 인위적으로 증가시킴으로써 떨어뜨린 이자율은 민간의 저축이 많아졌다는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미국에선 실제로 연준의 양적 완화 정책 결과 고소득층에서 발생한 과잉 저축이 금리를 낮춰 저소득층이 빚을 쉽게 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하위 계층의 빚이 증가한 상황에서 부채기반 수요가 진작돼 왔다.
'빚으로 지은 집'의 저자 아티프 미안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달 한국은행이 개최한 'BOK 국제컨퍼런스'에 참가해 이 같은 통계치를 발표하고 "저금리 정책의 부작용을 인식하고 소득불평등을 완화하고 부채 규모를 줄일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경기 후퇴는 신용 과잉의 필연적 결과
물가 반영 안된 고용지표는 착시 현상
즉 미국이 겪고 있는 고용 호황 속 불황도 임금 또는 소득의 실질가치 변화가 없었음에도 (물가 상승분이 반영되지 않은) 명목 임금이 올랐다는 이유로 부가 증가한 것으로 해석되는 화폐환상(money illusion)의 일종이란 지적이 나온다.
이은택 KB증권 애널리스트는 "고용 등은 물가가 반영되지 않는 명목 지표이기 때문에 노동시장을 근거로 경기침체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착시"라면서 "기업마다 (명목) 매출액이 작년보다 10% 가까이 증가하는데 해고를 크게 늘리는 것은 아마 불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의 경기후퇴 여부를 공식 판정하는 기구는 전미경제연구소(NBER)다. 일자리, 산업생산, 소득 등 경제활동 전반에 걸쳐서 수개월 이상 하강 국면에 들어설 경우 경기 후퇴를 인정하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파월 의장과 재닛 옐런 재무부 장관은 '기술적 침체'일 뿐이지 본격적인 침체 국면은 아니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이 기술적 침체일 뿐이라면 1979년 12월 연간 산업생산 성장률은 0에 근접했고 CPI의 상승률은 13%를 웃돌았던 스태그플레이션을 설명하지 못하는 모순에 빠진다. 한마디로 통화 인플레이션은 경제성장률의 하락 또는 고용 상황과 거리가 먼 화폐적 현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 회색코뿔소 충돌 사례
오바마와 버냉키도 언급 회피하다 당해
실질 금리 마이너스···더 강한 정책 필요
바이든 정부가 이런 가운데 11월 중간 선거 때까지 '불황' '경제 위기'라는 단어가 신문 헤드라인에서 제외하기를 원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2008년 블랙 먼데이 직전까지 미국 경제가 침체기에 있다고 말하는 행정부 내 전문가가 아무도 없었던 것을 연상시킨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재선을 앞둔 2008년 6월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은 "경기가 실질적인 하강 국면에 진입한 위험이 보다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했다. 이어 2008년 8월 말 공화당측 후보였던 존 매케인도 미국 경제가 양호하다고 주장했지만 한달 뒤인 9월 리먼브라더스는 파산하고 말았다.
다시 말해 2008년 금융위기도 2022년 스태그플레이션 위기도 무제한 양적완화에 치중해온 연준의 잘못된 통화정책서 비롯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재닛 옐런 재무장관 역시 지난 5월 '에포크타임즈'와 가진 인터뷰에서 "바이든의 거대 지출이 인플레이션을 먹여 살렸다"고 실토했다.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조사에 의하면, 트럼프의 코로나19 5차 부양책까지 투입된 재정규모는 총 3조3000억 달러였다. 여기에 바이든의 미국구조계획법(ARP)까지 합치면 5조2000억ㅡ달러다. 2008년 금융위기 재정투입액 1조5000억 달러의 3.5배다.
바이든 정부 들어 연준은 테이퍼링, 기준금리 인상, 양적긴축 추진을 발표해 왔다. 그러면서도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인 것이며 경기침체가 아니라는 의견을 덧붙이면서 회색코뿔소에 대한 대비를 늦추다가 결국에는 충돌하는 상황이 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일게 하고 있다.
미국 재무장관을 지낸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는 "파월이 실질 금리가 마이너스인데도 인플레이션 통제를 낙관하는 것은 희망 사항일 뿐"이라며 보다 강력한 조치를 요구했다. 그러면서 "팬데믹 기간 연준이 평균물가목표제를 채택했는데, 이런 새로운 틀은 버려야 한다"며 인플레이션 정책 포기를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