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재 칼럼] 은행의 스트레스 테스트 강화로 경기 침체 가속화 예상
[김성재의 국제금융 인사이트] 건전성 규제 완화하는 인기영합적 정책, 국가 경쟁력 저하로 이어져
스트레스는 건강의 가장 큰 적이다. 면역력을 떨어뜨려 질병에 대한 저항력을 감소시키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장 큰 스트레스 유발 인자 중 하나는 ‘내가 사라질지 모른다’라는 공포심이다. 직장에서의 해고나 퇴직도 그 가운데 하나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가장 큰 공포로 작용한다.
만약 지구가 곧 멸망에 직면한다면 어떨까? 이 사실을 알았을 때 사람들이 갖는 집단적 공포심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그래서 초자연적 현상에 의한 인류 멸절 가능성은 오래전부터 숱한 종교의 주제가 되어왔고 많은 문학과 영화의 단골 소재가 되기도 했다.
넷플릭스가 금년에 방영한 ‘돈 룩 업(Don’t Look Up)’도 이 주제를 다룬 블랙 코미디 영화다. 초호화 캐스트와 대규모 제작비의 투입으로 관심을 끈 이 영화는 제목부터 재미있다. 왜 타이틀이 ‘올려다보면 안 돼’ 일까? 사람들이 하늘을 올려다보고 안 보고에 정치적 이해관계가 엮여 있기 때문이다.
제니퍼 로렌스가 열연한 미시간 주립대 천체물리학 박사과정 학생 ‘케이트’는 우주 기원에 대해 연구를 하다 우연히 한 혜성을 발견한다. 그녀는 수업이 끝난 후 같은 과의 ‘민디’ 교수에게 그 혜성의 궤도를 계산해 보자고 제안한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연기한 민디 교수는 쿨하게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칠판에 수식을 써가며 궤도를 추적한다.
그런데 그 혜성과 지구와의 거리를 계산하던 민디 교수가 일순 침묵에 빠진다. 그 혜성이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아 지구에 충돌할 것이 거의 확실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나사(NASA)에 이 사실을 긴급하게 통보하고 백악관과도 접촉해 대통령에게 보고할 일정을 잡는다.
겨우 어렵게 마련한 미팅 자리에서 메릴 스트립이 역할을 맡은 미국 대통령 ‘제이니 올린’은 직경 몇 킬로미터의 혜성이 지구를 완전히 파괴할 것이라는 놀라운 사실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녀의 머리는 자신의 측근을 연방 대법관에 앉힐 궁리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올린 대통령을 둘러싼 초대형 스캔들이 터진다. 그제야 궁지에 몰린 대통령은 어려운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혜성을 이용하려 한다. 혜성을 폭파시키기 위해 핵무기를 탑재한 로켓을 발사하는 장면을 생중계하며 군을 동원해 성대한 애국적 세리머니를 치른다.
그런데 사람들이 안도의 한숨을 돌리려는 순간 놀라운 일이 발생한다. 올린 대통령이 혜성으로 향하던 로켓들을 다시 지구로 귀환시키는 명령을 내린 것이다. 대통령을 쥐락펴락하던 거대 IT기업의 총수인 ‘피터’가 혜성을 그냥 폭파시키기에는 너무 아깝지 않으냐고 말했기 때문이다.
피터는 혜성을 몇십 등분해 바다에 떨어뜨린 뒤 거기에서 희귀 광물을 채취하면 수십조 달러의 천문학적 이득을 얻을 것이라 주장한다. 이에 혹한 올린 대통령은 숱한 과학자들의 이의 제기를 모두 무시하고 피터에게 혜성 분할 및 광물 채취 프로젝트를 맡긴다.
과학자들은 피터가 제안한 프로젝트의 타당성을 학술적으로 정밀하게 검증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정치적 이해관계에 눈이 먼 올린 대통령은 오히려 이들을 탄압한다. 결국 피터의 프로젝트가 오류를 일으켜 실패하면서 혜성은 지구에 충돌하고 인류 문명은 사라진다.
영화는 후반에 다소 지루한 전개를 보여주지만 그 핵심 메시지는 단순하다. 처음에 대통령은 혜성의 존재 자체를 부인한다. 혜성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를 불온한 세력의 선동으로 몰아간다. 그런데 혜성이 지구에 가까이 접근하자 이제 눈으로도 그 존재를 식별할 지경에 이르게 된다.
대통령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바보들아, 하늘을 봐. 저기에 혜성이 오고 있잖아’라고 외치지만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아예 ‘하늘을 보지 마(Don’t look up)’라는 구호로 맞대응한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사로잡혀 눈앞에 뻔히 보이는 과학적 사실도 부인하고 악마화한다.
과학은 그럴듯한 사이비 주장을 걸러내고 진실을 찾기 위해 연구방법을 체계화하고 동료 학자들에게서 검증받을 것을 요구한다. 이를 동료 리뷰(peer review)라 한다. 이 과정에서 연구 방법에 문제는 없는지, 연구한 주제가 의미 있는 것인지, 결과가 타당한지 걸러지게 된다.
올린 대통령과 피터는 이 과학적 검증의 상식적 단계를 무시하고 건너뛰었기 때문에 실패라는 쓴 잔을 들이킬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는 단순히 한 사업 프로젝트의 실패를 넘어 인류 문명의 절멸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 프로젝트가 실패할 경우 입을 피해가 클수록 그 검증과정이 더 혹독했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현대 자본주의 경제에서 가계와 기업에 가장 큰 피해를 입히는 것은 ‘금융위기’이다. 금융위기는 방만한 재정 운용과 통화정책으로 유동성이 급증해 자산시장에 가격 버블이 형성되면서 초래된다. 이 가격 버블에 편승하기 위해 금융회사가 대출과 투자를 급격히 늘리고, 시장에 도덕적 해이가 만연하면서 위험 자산에 대한 투자가 나선형으로 커진다.
금융시장에 넘쳐흐르는 유동성이 실물경제로 전이되면서 인플레이션 압력이 따라서 커진다. 자산 버블로 빈부격차가 눈덩이처럼 벌어진 상태에서 물가까지 오르자 중산층과 저소득층이 큰 타격을 받아 불만이 점증한다. 결국 연방준비제도(연준)를 비롯한 중앙은행이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리고 유동성을 거둬들이면서 자산시장이 붕괴되고 경기가 침체에 빠진다.
자산 가격 급락의 여파가 은행과 금융기관을 덮쳐 금융의 원활한 기능이 중지될 지경에 이르면 금융위기가 정점에 이른다. 금융기관 상호 간에 보유 자산의 건전성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기업과 가계의 부도 위기가 커지면서 더 이상 투자와 대출에 나서기를 꺼려하기 때문이다.
금융위기가 무서운 것은 금융중개 기능이 실종되면서 현금이 부족한 한계 기업의 도산이 줄을 잇고 이로 인해 실업이 만연해지기 때문이다. 실업의 공포가 사회를 감싸면 부동산 가격이 급락세를 이어가고 실직자의 자녀도 적절한 교육의 기회를 빼앗겨 사회적 손실이 커진다.
반면, 연준 긴축정책의 여파가 실물경제에 침체를 일으키지만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크게 위협할 지경까지 이르지는 않을 때는, 연준이 금리 인하를 통해 자산 가격을 다시 부양하면 금융기관의 대출과 투자가 재개되면서 경기가 빠르게 호전될 수 있다.
따라서, 긴축정책의 여파가 ‘경기침체에 그칠 것이냐 아니면 금융위기로 갈 것이냐’를 결정하는 관건은 연준의 고강도 금리 인상을 금융기관이 얼마나 잘 견뎌내느냐에 달려 있다. 미국의 경우 전체 은행 숫자가 5000개가 넘지만 총자산이 2500억 달러(325조원)가 넘는 초대형 은행은 13개에 불과하다. 이들 13개 은행의 자산규모가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0%가 넘는다.
만약 이들 초대형 은행이 긴축의 여파를 쉽게 넘을 수 있다면 2008년과 같은 금융위기는 재현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연준은 이들 초대형 은행이 여러 가지의 시나리오 상황에서도 견뎌낼 수 있는지 점검하는 스트레스 테스트(stress test)를 매년 받도록 했다.
예를 들어, 경제 상황 시나리오를 경기가 다소 침체되는 경우, 심하게 침체되는 경우, 극도로 침체되는 경우 등으로 구분하여 은행들의 손실규모를 추정하고 그에 따른 자본적정성의 하락 정도를 따져 보는 것이다. 연준은 경제성장률, 실업률, 장단기 국채 및 회사채 금리, 부동산 가격 지수, 주가지수 등의 거시경제지표를 이용해 경기 예측 시나리오를 짠다.
이 경우 은행의 건전성을 측정하는 바로미터는 자본적정성(capital adequacy)이다. 여기에는 자기자본비율이 주로 사용된다. 주주권을 표창하는 보통주와 이익적립금 등 기본자기자본(Tier I) 규모가 위험도를 가중한 위험가중자산 규모의 6%를 넘어야 하고, 기본자기자본에 후순위채권 등을 포함한 보완자기자본(Tier II) 규모는 위험가중자산의 8%를 넘어야 한다.
그런데 은행의 건전성 규제는 선진국 중앙은행이 합의한 바젤 협약에서 규정된다. 2013년부터 시행되는 바젤 III 협약은 자기자본 규제에 더하여 레버리지와 유동성도 규제에 추가토록 했다. 레버리지 규제는 초대형 은행의 무분별한 자산 확대를 규제하기 위한 것이다. 이들 은행은 위험치를 가중하지 않은 총자산의 3%가 넘는 기본자기자본을 보유해야 한다.
또한, 은행들은 일정 수준의 유동자산을 보유해 급격한 유동성 유출에 대비토록 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연준이 금년 들어 스트레스 테스트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선 스트레스 테스트를 받을 대상을 총자산 1000억 달러가 넘는 34개 은행으로 확대했다.
월스트리트저널 보도에 따르면 지난 6월 공개된 연준의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는 크게 우려할 만한 것이 아니다. 내년 3분기 실업률이 10%에 달하고 주택 가격이 28.5% 하락하는 최악의 시나리오에서도 이들 대형은행의 자기자본비율은 기준치를 크게 상회하는 것으로 나왔다.
문제는 최근 발표된 스트레스 테스트에서 연준이 사용한 경기 예측 시나리오가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기 전에 작성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플레이션이 크게 악화하고 달러화 가치가 초강세로 전환하면서 경기 전망이 극적으로 나빠지고 있다.
이를 감안해 연준이 경기 예측 시나리오를 재조정한다면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아마도 연준과 은행들은 이미 보다 악화한 물가와 경기 상황을 반영해 새로운 시나리오를 짜고 이를 적용해 비공식적 스트레스 테스트를 시행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 후폭풍은 무엇일까?
우선 은행은 보다 심각한 보유 자산의 건전성 악화를 예상해 손실충당금을 늘려 적립해야 할 것이다. 위험 자산에 대한 여신 및 투자 활동을 중지하고 가치가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는 자산은 매각하려 할 것이다. 이로 인해 투자은행(IB) 부문을 포함한 다수의 부서가 신규 채용을 중지하고 심지어는 대규모 해고가 발생할 가능성도 클 것이다.
이들 은행이 여신을 중지하면 신규대출을 받아야 하는 기업들이 부도 위험에 처하거나, 비제도권으로부터 더욱 고금리의 대출을 받아야 한다. 가계도 마찬가지다. 결국 경기 침체를 예상한 연준의 새로운 시나리오 적용은 경기 침체 자체를 앞당길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그나마 미국은 스트레스 테스트를 통해 미리 예방약을 처방하고 있으니 다행이다. 최근 허난성에서 뱅크런이 발생하며 대규모 예금자 시위가 벌어졌던 중국은 더 심각한 상태이다. 상당수 부동산 개발 업체의 대규모 도산으로 은행의 건전성 악화가 뻔히 예상되는 시점이다.
그럼에도 중국의 대형은행은 국가의 보호 아래에 있어서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과연 그럴까? 정경유착이 일상화해 적절한 금융 규제 수단이 상실될 경우 경쟁력 없이 은행 돈만 먹는 좀비 기업을 연명하게 해 자본의 효율적 배분을 저해한다.
이는 당장은 은행이 문을 닫는 고통을 피하게 한다. 한계 기업도 대출을 연장할 수 있으니 기업 친화적인 정책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인기 영합적 정책이 장기간 지속되면 경제 전체의 효율성이 저하된다. 서서히 끓어오르는 냄비에 앉아 있는 개구리와 같이 국가 경쟁력도 사라질 수밖에 없다. 선진 금융은 정실을 없애 자본이 효율적으로 투자되도록 하기 때문이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김성재 가드너웹대학교 경영학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