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미옥 더봄] BTS도 보라해! 오묘한 '베리 페리'

[홍미옥의 일상다반사] 크레파스 상자 속 선물 같던 보라색이 2022년을 물들인다 정열의 빨강-희망의 파랑이 만나는 색

2022-08-01     홍미옥 모바일 그림작가

보통은 24색, 가끔은 분에 넘치게 48색 크레파스를 쓸 때가 있었다. 그 상자를 열 때면 내 눈은 항상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과연 보라색이 있느냐가 그것인데 드물게 그걸 발견할 때면 뛸 듯이 기뻐했었다.

카민 색이라고 이름 붙은 진분홍과 나란히 놓여있던 보라색 크레파스, 까마득한 예전 일이다. 이제 강산이 몇 바퀴 돌고 나니 진즉에 분홍색과 보라색은 졸업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웬걸? 나이가 들어갈수록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하는 거다. 마침 그런 내 맘에 이름도 생소한 '베리 페리'가 쏘옥 들어왔다.



올해의 색인 베리 페리를 정물화에 담아 보았다. 갤럭시 노트20울트라, 아트레이지 /그림=홍미옥

BTS의 ‘보라해’부터 팬톤의 베리 페리까지

해마다 올해의 '색'을 발표하는 미국의 색채연구소 팬톤은 2022년의 색으로 '베리 페리'를 선정했다. 물론 그 배경에는 각종 비즈니스와 얽힌 측면도 있겠지만 아무튼 반가웠다.

다소 모호한 이름의 베리 페리는 보라색에 블루·레드·핑크·그레이 등이 자연스럽게 섞인 색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오묘한 보라색인 거다. 특히 팬톤에서 주장하는 바로는 역대급 존재감을 지닌 색이라는 것이다.

정식 명칭은 PANTONE 17-3938 Very Peri.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던 2년여의 팬데믹으로 지친 모두에게 삶의 전환과 기운을 주고 싶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재밌는 건 그 오묘한 보라색은 우리나라에서 이미 사랑받고 있었다는 거다. 자타공인 월드 스타 BTS가 2016년 팬 미팅에서 사용한 '보라해'라는 신조어가 그 시작이다. 사랑스러운 색감과 더불어 진실한 마음을 전하는 색으로 보라색이 선택되었다. 더구나 BTS가 아닌가!

그 후로 전 세계의 팬들은 '사랑해'를 '보라해' 또는 I purple you라고 부르고 있다. 

일상의 포인트가 되어 준 '보라'를 나도 보라해!

 

책 표지에도 선택된 보라색은 올해의 색이다. /사진=홍미옥

사실 그 빛깔만큼이나 모호한 베리 페리라는 명칭은 좀체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냥 추억 속 크레파스 상자 속의 보라색이라고 해야 와닿는 것 같다.

올 초에 모바일그림을 그리는 모임에서 책을 펴냈다. 직접 쓰고 편집 출간까지 하는 거라서 많은 손길이 필요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고민이었던 게 표지의 색이었다. 과연 우리를 표현해 줄 색은 무엇일까? 인생 후반전의 이토록 재미난 그림 놀이를 어떤 색으로 그려낼 것인가!

결론은 보다시피 보라, 베리 페리였다. 물론 팬톤의 2022컬러의 영향을 받았지만, 모두가 좋아하는 색이기도 했다. 혹자는 보라색을 두고 피와 땀의 결정체가 있다면 바로 이런 색일 거라고 말했다. 또 누군가는 신비롭다 못해 어둡고 두려운 색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우리 곁의 보라, 베리 페리는 무엇보다 부드럽고 사랑스러우며 희망에 찬 색이었다. 정열의 빨강과 희망의 파랑이 만나면 마주할 수 있는 보라는 사랑 말고는 표현할 길이 없다. 어릴적 내 마음을 두근대게 했던 보라색 크레파스처럼 말이다.

모쪼록 올해도 저 사랑스런 보라처럼 모든이들의 소망이 이루어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