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깐팩] 증세론자 한덕수도 감세론자로 전향···尹 작은정부 효과는?
[깐깐한 팩트 탐구] 부자감세 불구 리쇼어링 등 경제효과 명백 낮은 세율 꾸준히 유지해 기업에 믿음 줘야 과거 재정확대 주장 한덕수도 변화한 모습
국회로 내년도 세법개정안이 넘어가면서 13조원 규모의 감세를 둘러싼 입법 전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부자 감세냐' '아니냐'가 쟁점인데 작은정부를 추구하는 윤석열 정부에 합류한 노무현 정부 출신 관료들의 입장 변화가 눈길을 끈다.
25일 여성경제신문이 깐깐한 팩트탐구 코너를 통해 2023년 세법개정안에 포함된 법인세 감세 효과를 점검한 결과 '부자 감세' 아니냐는 정치적 논쟁에도 불구하고 일자리와 투자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시에 과거 재정확대론자이던 한덕수 국무총리도 감세를 적극 옹호하는 모습이 확인됐다.
정부가 발표한 세법개정안 가운데 법인세제 개편을 통한 감세는 전체 13조원 중에 6조8000억원으로 절반 이상의 비중을 차지한다. 기획재정부는 법인세 최고세율을 현행 25%에서 22%로 인하하고 과표 구간을 4단계에서 3단계로 축소하는 내용의 세법개정안을 발의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경제 위기에 부자감세가 웬 말이냐"며 재정확장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반면 국민의힘은 "세입이 감소하는 만큼 재정지출도 줄여야 한다"는 긴축 기조 유지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경제학계에서도 감세 효과에 대한 논쟁이 뜨거워지고 있다.
진보 경제학자인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법인세율이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42개 실증연구의 441개 추정치를 분석한 논문을 올렸다. 하 교수는 "법인세 감세가 성장에 미치는 영향이 제로라는 가설을 기각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법인세 인하가 분배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법인세 인하는 소득불평등을 심화한다"면서 "이는 최상위 소득계층의 자본소득 증가가 압도적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법인세 감세가 자본 투자를 늘린다는 증거는 발견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물론 법인의 주식을 가진 대주주는 대개 부자들이기 때문에 법인세 인하를 부자 감세로 보는 표현이 무조건 틀린 것은 아니다. 또 이같은 관점에 따라 소득불평등 심화도 주장할 수 있지만, 낙수효과의 존재 역시 부정하기도 어렵다. 법인세율 인하의 혜택이 배당을 통해 주주에게, 상품가격 인하를 통해 소비자에게, 고용과 임금 증가 등을 통해 근로자에게 각각 귀착된다는 연구결과가 다수이기 때문이다.
지난 2016년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법인세 평균실효세율을 1%포인트 인하할 경우, 투자율이 0.2%포인트 증가한다는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이듬해 조세재정연구원도 법인세율이 3% 오르면 투자 △0.7%, 고용 △0.2%, GDP △0.3% 감소를 유발한다고 밝혔다.
투자·고용·경제성장 모든 측면 유리
아일랜드 코로나 속 13% 경제 성장
법인세 감세를 통한 경제적 효과는 다국적 기업들의 '조세 피난처'(Tax Haven)라 불리는 아일랜드의 상황을 보면 확연히 눈에 띈다. 아일랜드는 지난해 7월 15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이 합의한 15% 글로벌 최소법인세마저 거부한 나라다.
아일랜드 정부는 1980년대 50%에 달한 법인세율을 단계적으로 떨어뜨린 뒤 2003년부터 현재까지 한국의 절반 수준인 12.5%의 법인세율을 부과하고 있다. 이 같은 노력 결과 경제규모는 EU의 1% 비중에 불과하지만 해외직접투자(FDI) 유치는 5.7%까지 증가했다.
아일랜드 투자발전청(IDA)에 의하면 현재까지 아일랜드에 진출한 다국적기업은 1700개에 이르며, 이들 기업이 아일랜드에 일자리 27만개 이상을 제공하고 있다. 애플과 구글 등 세계 10대 정보기술(IT) 기업 중 9개의 유럽본부가 아일랜드에 있다.
이밖에도 코로나19 사태 중에도 아일랜드 정부는 감세 기조를 유지하며 낮은 법인세율 효과를 봤다. OECD 통계에 따르면, 코로나19가 강타한 지난해 2021년 아일랜드의 경제성장률은 13.5%로 같은 해 유럽연합(EU) 성장률(5.4%)의 2배가 넘었다.
다만 13조원 상당의 감세 정책에도 윤석열 정부 입장에선 과거 노무현 정부 때 경제 관료를 지내며 감세 반대론을 펼쳐온 한덕수 당시 국무총리와 변양균 대통령 경제 고문의 입이 변수가 되는 상황이다.
지난 2005년 한나라당이 제안한 9조원 규모 감세안에 대해 한덕수 당시 경제부총리는 "재정건전성 악화 우려가 있다"며 재정지출 확대 정책을 주장한 바 있다. 기획예산처 장관이던 변 고문도 "기업이 투자를 망설이는 것은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라며 반대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다만 이들 가운데 한 총리에게선 변화의 조짐이 읽힌다. 감세가 금리인상 시기 기업부담을 덜어주는 대책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지난 26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한 총리는 "OECD 법인세 평균이 21.6%고 한국이 25%로 높은 수준이라 이걸 낮춰야 할 필요는 있겠다고 생각한다"며 "물론 재정 건전성과 감세가 배치되지만 금리인상으로 경제가 충격을 받아 재생 가능하지 못하면 절대로 안 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또 더 나아가 낮은 법인세에 따른 기업투자 유치 효과가 존재하는 것도 인정했다. 한 총리는 "트리클다운 이펙트(Trickle Down Effect·낙수효과)는 이제 죽었다고 주장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조세의 기본적인 이론은 '감세는 투자의 확대와 중장기적으로 경제 규모의 확대를 가져온다'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김이석 시장경제제도연구소장은 "국회가 세법개정안을 통과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투자유치가 실질적으로 가능하려면) 글로벌 시장에 낮은 법인세율을 꾸준히 유지할 것이라는 신뢰를 줄 필요가 있다"며 "특히 이번 정부 발표에 아시아 최저 세율과 같은 매력적인 세일즈 포인트가 있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