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익준 더봄] 동막골 편지 - 여름 사랑법
[최익준의 청춘을 위하여](5) 친구의 초대로 떠난 여름여행 동막골 개여울에 몸 담그고 상선약수의 사랑법을 깨닫다
‘안녕하세요? 7월의 더위 속 당신의 여름은 안녕하신지요?’
아열대 습도가 끈끈이주걱처럼 끈적거리는 고온다습의 여름 인사 보냅니다. 방역마스크를 착용하며 타인과의 거리 지키기에 생활의 주도권을 내주고, 물가 인플레의 시름에 지쳐가는 여름날 한가운데의 주말입니다.
강원도 홍천군 동막골 계곡에서 집필 중인 석천학당 훈장님 친구로부터 '동막골 물놀이하러 오렴’이라는 카톡 초대장을 받자마자 '아~싸'하며 입던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으로 자동차 시동을 켜고 서둘러 강원도 홍천 가는 국도로 나섰지요.
로또복권 3등 당첨 상금을 받으러 가던 그때처럼, 가벼운 흥분감에 길을 떠나는 저에게 서울에서 홍천까지 100km 거리의 드라이브 여행길은 '하멍' (하늘 보며 생각 내려놓고 멍때림)으로 진입하는 새로운 우주의 여행길이 되었답니다. 선글라스를 벗고 설렘의 눈빛으로 올려다본 차창 밖 하늘은 일상의 하늘이 아닌 여행자의 하늘로 달라지고 여행자의 하늘을 카메라에 담으며 스르륵~ 현실의 시공간을 벗어나 머나먼 대기권으로 날아갔지요.
동막골 여행길의 하늘을 바라보며 저절로 제게 떠오른, 이십 대의 미숙했던 여름날 갑자기 저에게 이별을 통보했던, 여사친(‘여자 사람 친구’ 유행어의 줄임말)과 헤어진 후 텅 빈 마음을 잡아준 시 한 구절이 생각났지요.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리고도 남는 시간은
침묵할 것···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
(강은교 시인, '사랑법'에서 발췌)
여행길의 저에게 사랑법이란, 여행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여행하며 잠들고 그리고도 남은 시간은 침묵할 것···. 인생 여행자 당신에게 언제나 새로운 여행의 하늘은 바로 당신의 편이 되어 당신이 바로 등 뒤에 열려 있다고 말해 줍니다.
삶도, 시 한 줄도, 여행에 어울리는 동행자 아닐까요?
동막골 옴막집으로 초대한 동양철학자 친구는 함께 개울가로 오르면서 코로나 바이러스의 글로벌 번식이야말로 노자(老子, Laozi)가 말한 '천지불인'(天地不仁: 자연은 인간에게 인자한 모습으로 행운이나 덕을 베푸는 존재가 아니다. 즉 천지는 인간에게 순하지도 어질지도 않다) 의미를 재잘재잘 설명하며, 심천 유곡 계곡수를 찾아 숲 속으로, 숲 속으로, 한걸음 또 한걸음 서늘한 계곡 속으로 우리는 서서히 걸어 들어갔지요.
가을처럼 서늘한 개여울에 발 담그니, 진득한 무더위는 마법처럼 휘리릭 달아나고, 흐르는 개울은 어느새 天地不仁을 잊게 하고 천지가인(天地歌人: 자연을 노래하는 가객)의 세상으로 데려다줍니다. 개여울 졸졸거리는 물소리 배경음악에 '아~ 테스 형 세상이 왜 이래~' 한 곡조 뽑으며 우리는 저절로 흥에 취해 갑니다.
'나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인이다' 선언한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춤추며 노래하며 덩실덩실 춤을 춥니다. 클래식, 재즈, 유행가, 팝송 등 세상의 모든 음악이 어우러져 동막골 개여울에 몸을 담근 여름 콘서트, 소박과 화려가 기막히게 어우러진 밤이 깊어 갔답니다. 2500년 전의 노자 형님도 살아생전 동막골 같은 곳에서 우리처럼 멱을 감으며 최상의 선은 흐르는 물과 같음(상선약수, 上善若水)을 깨달았을 겁니다.
물은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흐르고, 그 낮은 곳을 적신 다음엔 세상 가장 낮은 곳까지 흐르니, 물의 본질은 높낮이가 없는 세상, 사람 사는 세상 즉 '상선약수'의 사랑법이 아닐까요? 동막골의 여름 여행은 그렇게 깊어 갔답니다.
옥수수 키가 나보다 더 커진 동막골 계곡을 내려오며, 벌써부터 떠나갈 여름에 목이 메인 어른 매미(Cecada)와 다가올 가을을 재촉하는 어린 귀뚜라미(Cricket), 그리고 세상의 낮은 곳을 적시는 개여울(Rapids)의 여름 합창의 울림이 여름날 인생 여행객의 하루를 완전하게 합니다.
Cecada Cecada Cecada~
Cricket Cricket Cricket~
Rapids Rapids Rapids~
&
Cecada, Cricket, Rapids~
Cricket, Rapids, Cecada~
Rapids, Cecada, Cricket~
나의 동막골 여행은 강은교 시인의 사랑법 시 한 줄과 매미, 귀뚜라미, 개여울의 평범하고 소박한 합창으로, 아무 걱정 없는 날이 되었답니다.
당신의 여름날 사랑법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