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기 더봄] 은퇴 후 할 일을 찾는 방법
[백만기의 은퇴생활백서] 쉼 길어지면 의욕도 무뎌지고 건강에도 적신호 과거·미래의 희망 적어서 비교해보면 쉽게 발견
일전에 어느 공공기관 은퇴예정자를 대상으로 강연할 때다. 은퇴 후에 할 일을 모색하기 위해 여러 사례를 들어 의견을 나누다가 잠시 쉬는 시간이었다. 한 사람이 내게 다가오더니 자신은 당분간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한다. 그동안 직장생활을 하느라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 우선 휴식을 취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의 얘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누구나 무거운 마음으로 직장에 출근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한동안 소파에 누워 게으름 피우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런 생활이 너무 오랫동안 지속되면 자칫 만사가 귀찮아진다. 의욕도 점점 더 무뎌지고 체내 리듬도 깨지며 건강에도 적신호가 올 수 있다. 사람과의 만남도 회피하게 되고 우울한 증상도 오기 쉽다. 그래서 은퇴 후 잠시 쉬는 것은 좋아도 그 기간이 너무 길어지지 않도록 어느 정도 마음을 다질 필요가 있다.
강연을 끝내고 연단에서 내려오는데 50대 중반의 여성이 내게 다가왔다. 자신은 정년까지 직장에 있지 않겠다고 한다. 해야 할 일을 찾았다고 하면서.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까 그가 미국에 유학한 적이 있는데 우리나라 6·25전쟁에 관한 사료가 너무 미흡하여 놀랐다고 한다. 그래서 은퇴하게 되면 이 사료를 정리하는 일에 남은 생 일부를 보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남들은 은퇴하면 대부분 놀 생각부터 하는데 그의 결심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정말 의미 있는 일이 될 거라며 격려해 주었다.
유사한 사례가 있다. 의대를 졸업하고 오랫동안 외과 전문의로 일했던 의사가 은퇴 후 캐나다 밴쿠버로 유학하여 역사를 공부하고 그 결과를 『캐나다 역사 100장면』이란 책으로 펴냈다. 많은 사람이 의사가 되기를 원하지만, 그에게 의사는 먹고살기 위한 직업이었으며 정작 하고 싶었던 것은 인문학 연구였다. 캐나다에 이민 간 지인에게 책을 소개했더니 그곳 교포들에게 소중한 자료가 되었다며 고마워한다.
은퇴 후에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을 버는 사람도 있다. 흔히 해외여행을 가면 길거리에서 연주하는 음악가를 볼 수 있는데, 이들의 연주가 꽤 수준이 높다. 그 까닭을 알아보니 그곳 지자체에서 하는 오디션에 합격해야 길거리 연주를 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제도를 몇몇 지자체에서 도입하여 시행하고 있는데 우리 인생학교 강사 한 사람이 지원하여 오디션에 통과하였고 연주할 때마다 지자체로부터 보조금을 받는다.
이렇게 재직 중에 은퇴 후에 할 일을 미리 구상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은퇴 후에 무엇을 할까 고민하며 빈둥거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또 위의 50대 여성처럼 그가 뜻한 일을 하기 위하여 조기에 은퇴를 할 수도 있다. 물론 직장에 다니며 일을 통해 급여도 받고 성과를 보며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직장에서 하는 업무가 자신이 좋아하는 일과 일치하기는 참 어려운 법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은퇴를 꿈꾼다.
문제는 은퇴 후에 딱히 하고 싶은 일이 없다는 사람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하고 싶은 일이 없는 게 아니고 뭘 해야 할지 구체적으로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일찍이 IBM 창립자 토머스 존 왓슨도 사람들이 생각할 의지만 있다면 세상의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는데 곤란한 점은 너무 생각하지 않는다고 아쉬움을 표한 적이 있다. 그러므로 지금부터라도 은퇴 후에 할 일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하고 시도해 보자.
잘 생각이 나지 않을 때는 A4 용지 세 장을 앞에 놓고 과거에 하고 싶었던 일을 일단 종이에 적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괜찮다. 아마 얼추 20여 가지는 나올 것이다. 다음에는 미래에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해보고 마찬가지로 한 장에 적어 본다. 마지막엔 지금 하고 싶은 일을 나머지 종이에 적는다. 그중에서 중복되는 일과 중복이 되지는 않지만 하고 싶은 일 몇 가지를 골라 리스트를 작성한다.
이렇게 하고 싶은 일의 목록을 만들어 보는 것과 그저 막연히 머릿속으로 그리는 것의 차이는 매우 크다. 목표를 정하면 우선 해야 할 일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일에 착수하면 그때부터 도와주려는 사람도 나타난다. 미국의 시인 에머슨도 여러분이 결정을 내리면 우주가 몰래 힘을 모아 돕는다고 했다. 그러므로 작은 일이라도 일단 실천에 옮기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 고구마 줄기처럼 할 일이 연이어 드러난다. 이제는 그 일을 직접 행하기만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