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미옥 더봄] 라이언 일병이 된 어린 참새
[송미옥의 살다보면2] 생명을 소중히 다루는 아이들에게 감동
고즈넉하고 조용한 고택 도서관이 아이들로 부산스럽다.
내가 근무하는 이곳은 초등학교가 가까워 어린 학생들이 자주 이용하는 곳이다. 오늘은 20여 명이 자율학습을 왔다. 그런데 책 보러 오다가 그만 사건이 생겼다.
어린 참새가 논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걸 발견하고는 어렵사리 구출하여 안고 온 것이다. 졸지에 참새를 구하러 들어간 선생님의 운동화와 바짓가랑이가 온통 흙물로 얼룩졌다.
“할머니 화장지 좀··· 할머니 물 조금만···” 들락날락하며 부탁들이 줄을 잇는다.
아이들이 이리저리 흩어져 곤충을 잡고 새보다 더 긴 지렁이까지 잡아 그옆에 놓아 주는 등 여간 법석이 아니다. 어린 참새가 라이언 일병같이 위대한 주인공이 되었다.
가까이서 보니 비실비실하는 모습이 곧 죽을 것 같다. 살다보면 너무너무 힘들어 그만 살고 싶을 때가 있는데, 새 입장에선 구해준 인간이 오히려 원망스럽지 않을까라는 엉뚱한 생각도 든다.
아이들은 폭염경보가 내려진 태양 아래서 연신 부채질로 새의 젖은 날개를 말린다고 작은 목 뒤로 비 오듯 흘러내리는 땀엔 아랑곳없다. 생명을 대하는 순수하고 선한 마음이 감동스럽다.
한참 후, 아이들은 다시 파닥파닥 날갯짓 하는 새를 풀숲에 내려놓았다.
“너희 모두 오늘 위대한 일을 한 거다. 자~~ 이제 그만 학교로 돌아가자.”
선생님의 의도를 알아차린 내가 말했다.
“그래그래 내가 잘 지켜볼게. 점심시간 늦을라.”
“할머니, 주말에 엄마랑 올 테니 책임지고 보살펴 주세요.”
아이들은 아쉬운 마음을 담아 으름장에 가까운 당부를 한다. 호들갑스런 시간이 끝나고 아이들은 돌아갔다. 아이들 모두에게 오늘은 이야기가 있는 하루가 될 것이다.
아침 뉴스에 한 가족의 죽음을 물에서 끌어 올리는 것을 보았다. 생명이란 무엇일까라는 어수선한 마음에 어른들의 몰지각한 행동으로 죽은 어린아이가 생각났다.
자신의 의지 없이 태어난 것도 억울한데 삶과 죽음도 타인의 의지로 선택된다는 것에 가슴 아프다. 그러나 우리는 늙어서든 젊어서든 타의든 자의든 어쩔수 없이 죽는다.
뉴스 댓글에 달린 ‘피어보지도 못한 꽃 같은 나이’라는 문구가 자꾸 맴돈다.
꽃으로 피어보지 못한 나이라···. 지나고 보니 꽃은커녕 잎만 무성하게 자란 내 나이도 아쉽긴 마찬가지다. 그나마 병들지 않고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며 지는 때에는 멋스럽게 물든 단풍잎처럼 된 모습도 괜찮겠단 생각이 든다.
숲속에서 한동안 파닥거리던 어린 새는 해질녘즈음 움직임을 멈추었다.
나무 아래 흙을 파고 묻어 주었다. 아이들이 물으면 뭐라고 하나 생각하다가 중얼중얼 혼잣말하며 서성거린다.
“고것이 요기조기로 사뿐사뿐 걷는 연습 하더니 금세 멀리 날아오르더라고. 다 너희들 덕분이야.”
이럴 땐 천국이 진짜로 있어서 불쌍하게 죽은 아이도, 어린 새도, 그곳에선 행복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