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 인상 vs 인플레···‘악순환 고리’ 갇혔다

시차 두고 기대인플레→임금→물가 반영 임금 떨어지면 고용 늘고 경기 회복 속도 정부 물가 안정의지 보여야 기대인플레↓

2022-06-30     최주연 기자
기대인플레이션율이 10년 2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하면서 앞으로 임금 인상과 물가 상승 가능성이 더 커졌다. 사진은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광경. /연합뉴스

앞으로 임금 인상과 물가 상승 가능성이 더 커졌다. 임금 인상 압력으로 작용하는 기대인플레이션율이 10년 2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하면서다. 물가 잡으려는 정부와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근로자들 사이 갈등이 일고 있다.

29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2년 6월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향후 1년간 소비자물가상승률 전망치를 나타내는 기대인플레이션율은 전월보다 0.6%포인트 높은 3.9%를 기록했다. 이는 2012년 4월(3.9%) 이후 10년 2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금융당국은 이번 발표된 기대인플레이션율을 놓고 인플레이션 악순환 고리를 끊자면서 “임금인상 자제” 메시지를 내놓았다. 지난 28일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우리 경제의 어려움을 감안해 과도한 임금인상을 자제해 생산성 향상 범위 내에서 적정 수준으로 인상해 달라”고 주문했다. ‘물가-임금 연쇄 상승 악순환’을 끊겠다는 의지를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다.

같은 날 이승헌 한국은행 부총재도 “인플레이션이 불안해지면 물가가 임금을 자극하고 이는 다시 물가상승으로 악순환된다”면서 추 부총리 발언에 힘을 실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2년 6월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6월 기대인플레이션율은 10년 2개월 만에 가장 높은 3.9%를 기록했다. /한국은행

금융당국이 기대인플레이션율을 주시하는 이유는 인플레이션 영속화 우려 때문이다. 기대인플레이션율은 임금 상승 압력으로 작용해 시차를 두고 임금 상승을 ‘실현’시킨다. 임금 상승은 원가 상승을 가져오며 이는 상품에 대한 가격 전가로 이어진다. 결국 물가가 오르고 다시 기대인플레이션율이 높아지며 근로자는 임금 상승을 요구한다.

이로써 기대인플레 상승→임금 인상→물가 상승→기대인플레 상승→임금 인상→물가 상승 순환이 움직이게 된다. 기대인플레를 두고 '자기실현적 예언'이라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발언 이후 노동계는 즉각 반발했다. 물가가 오르면 실질임금이 줄어드는데 임금을 그만큼 올리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에 덧붙여 더불어민주당은 임금을 올려 소비를 활성화하는 ‘소득주도성장’ 같은 수단을 써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김태년 민주당 경제위기대응특별위원회 위원장은 “물가가 오르는데 임금 인상을 안 하면 그 고통은 임금 노동자인 국민들이 고통을 홀로 감수하란 얘기”라며 “마치 물가 상승의 원인을 고임금에 전가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이 있다”고 말했다. 이용우 특위 위원도 “임금 상승분이 물가에 전가되는 비중은 얼마 되지 않는다”며 강하게 비난했다. 

미국 1970년대 교훈 삼아야‧‧‧임금↓경기 회복 속도↑


학계에서는 추 부총리의 ‘물가-임금 연쇄 상승 악순환’ 우려에 대해 수긍하는 분위기다. 미국의 1970년대 경험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종석 한국뉴욕주립대 석좌교수는 여성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미국 1970년대를 교훈으로 삼자면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실질 임금이 떨어지면 경기 회복 속도가 빨라지면서 기업의 고용이 늘고 경기가 회복됐다. 이를 ‘경제의 자기회복 과정’이라 부른다”면서 “케인즈의 경우 이는 장기적인 현상이라면서 불신하기도 했다. 그러나 인플레로 실질임금이 줄어드는 것은 아주 단기적 현상이며 장기적으로 봤을 때 실질 임금은 경제성장률과 함께 꾸준히 올랐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금융당국이 돈 풀면서 금리 올리는 등의 방식으로 정책을 오락가락 펴다 보면 경제 주체가 정부의 물가 안정 의지에 대해 회의를 느끼게 되고 걷잡을 수 없는 기대인플레로 반영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기대인플레 상승→임금인상→물가상승→기대인플레 상승→임금인상→물가상승 순환이 움직이게 된다. 기대인플레를 두고 '자기실현적 예언'이라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픽=최주연 기자

차현진 한국은행 금융결제국 자문역은 “임금이 올라가면 물가가 올라가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며 임금과 물가는 서로 영향받으며 상승하게 된다”면서 “어느 한쪽에서 양보해야 이 악순환이 끝나는데 역사적으로 볼 때 월급 받는 쪽(임금)이 참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근로자 입장도 틀린 말은 아니다. 누가 먼저 고리를 끊느냐의 문제”라면서 “그러나 다시 과거를 비교해보자면 경기가 숨통이 트이고 난 후 그때 임금을 올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