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사 허용법 발의···인지능력 저하자 '본심' 파악 방법 누락

일명 '안락사', 합법화 개정안 발의 환자 심리·정신 상태 확인 조항 없어 전문가 "억울한 죽음 없도록 해야"

2022-07-01     김현우 기자
국내 첫 존엄사 허용 법안이 발의됐지만 인지 능력이 저하된 환자의 '조력자살' 결정을 의사가 허용할 경우, 이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명확하지 않아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의사가 환자를 돌보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국내 첫 존엄사 허용 법안이 발의됐다. 더 이상의 치료가 어려운 환자가 스스로 연명 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그런데 인지 능력이 저하된 환자의 '조력자살' 결정을 의사가 허용할 경우, 이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명확하지 않아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30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해 보면,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4일 '담당 의사 도움을 통해 스스로 삶을 마무리하는 조력 존엄사를 허용'한다는 내용이 담긴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해당 법안이 통과될 경우, 조력 존엄사를 위해선 세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말기 환자일 것 ▲환자가 수용키 어려운 고통을 겪을 것 ▲담당 의사와 전문의 2명에게 조력 존엄사 요청과 허용 등이다.

다만 말기 환자의 경우 상대적으로 인지 능력이 저하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환자의 조력 자살 결정을 의사가 최종 허용하게 될 경우 추후 발생할 법적 문제 해결 방안을 위한 가이드라인이 법안에 명시되어 있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예를 들어 지난해 네덜란드에선 알츠하이머성 치매 환자에게 안락사를 시행한 의사가 안락사법 위반으로 기소된 사건이 있었다. 네덜란드는 환자가 조력 자살을 원하더라도, 객관적인 정신 검사 등을 병행해야 하는데 이 과정을 건너뛰어 문제가 생긴 것이다. 

지난 2000년 아시아 국가 최초 존엄사법을 허용한 대만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발생했다. 대만의 경우 인지 능력이 저하된 말기 환자의 존엄사 결정 후 본심 변화 등 확실성을 입증해야 한다고 관련 법안에 명시되어 있다. 그런데 조력 자살을 원한 환자가 이 과정을 건너뛰고 싶다고 의사에게 말했고, 의사는 이를 따랐다. 그 결과 의사에게 법적 책임을 묻게 되는 사례가 발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안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에는 객관적인 환자의 조력 자살 결정에 대한 입증 자료를 확인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은 없다. 한국호스피스학회 관계자는 본지와 통화에서 "조력 자살을 결정하는 시점과 환자의 정신 상태를 객관적으로 확인하는 등의 더욱더 세밀한 조항을 포함해야 한다"라며 "환자의 결정이 우선이지만, 그에 따른 법적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개정안을 다시 살펴봐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벨기에, 캐나다, 콜롬비아, 룩셈부르크 등이 안락사를 허용하고 있으며, 조력자살은 스위스와 미국의 일부 주에 한해서 허용되고 있다. 해외 치매 안락사도 치매 환자의 본심 변화나 확실성의 입증이 어려워 안락사가 소극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대한천주교생명윤리위원회 측은 "생의 말기를 지내는 환자의 의사를 존중해야 하지만, 환자의 정확한 심리 상태와 정신 상태를 면밀히 확인해 억울한 죽음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