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익준 더봄] 사랑하기 때문에 쓴 우울한 편지

[최익준의 청춘을 위하여] (3) 유재하와 함께한 주말의 단상

2022-06-27     최익준 ZEISS Vision CEO

 

하늘은 단지 먹구름에 가려져 있을 뿐 그자리 그대로 있다. /사진=Unsplash

삐질하게 진땀나는 잠자리를 뒤척이며 초여름의 어스름 새벽에 눈을 뜹니다. 휴일의 멍한 초점으로 창밖을 보니 돌발 소나기가 '으르렁'거리며 가녀린 창문을 세차게 두들겨 때립니다. 글로벌 뉴스 기사로 세계 선수권 정상의 문턱에서 통한의 역전패를 당한 격투기 선수가 피멍에 퉁퉁 부은 얼굴로 울음을 참고 링을 내려가는 뒷모습이 TV 장면에 클로즈업돼 보입니다.   

나랑은 아무 상관 없을 것 같은 강대국들끼리의 세력다툼으로 턱없이 올라간 물가를 걱정하는 뉴스 기사는 먹구름처럼 가리워지고 우울한 생활의 현실이 아닐까요. 인간이란 먼 나라 남의 일에 무력하고 무관심한 존재이지만, 실은 눈으로 보이지만 않을 뿐, 우리는 모두 인과관계로 연결될 수밖에 없는 세상에 살고 있지요.

습하고 우울한 날 막걸리에 파전이 생각나듯, 먹구름이 몰려오고 비오는 날엔 동갑내기 작곡가 가수 유재하의 느릿하고 애잔한 발라드를 찾아 듣곤 합니다. 만 25세 청년으로 작고한 그의 노래를 듣다 보면 어느새 그와 나는 푸릇한 스물 다섯살 되돌이 음표를 타고 청춘의 무대에서 만나는 마법을 경험하곤 합니다. 그와 나는 80년대 후반 민주화의 시위와 독재의 최루탄이 동거하던 캠퍼스에서 서로 모른 채 각자의 인생 항로를 고민하면서 준비했으니까요.     

오늘처럼 꿀꿀한 기분이 드는 주말에는 유재하의 '가리워진 길'을 듣고 윤동주의 '서시'를 암송하며 미래를 상상하던 25세의 응답하라 레트로(Retro: 복고풍의) 추억으로 풍덩 빠져듭니다. 여러 번 노래를 듣다가 유재하의 다른 곡 '우울한 편지'를 찾아 듣습니다. 이 노래가 주는 반전의 메시지로, 가리워진 길처럼 먹먹한 현실이 우울하고 나약하게 몰아간다 해도, 상관없이 사랑하고 꿈꾸는 삶을 지속할 것이라는 의지와 위안을 슬며시 저에게 건네줍니다.

어리숙하다 해도, 나약하다 해도, 강인하다 해도, 지혜롭다 해도 거짓 없이 우정과 사랑을 지속할 것이란 계시를 받고 훌훌 털고 일어나 주말의 산책길을 나섭니다.

걷다가 구름위의 드문드문 푸른 하늘을 바라 봅니다. 빙하기를 지나면서 얼어 죽지 않는 프로메테우스의 불을 발견한 인간에겐 현실의 가리워진 길을 뚫는 과학과 지혜의 힘이 있고, 위안을 나눈 시와 노래와 알타미라 동굴의 그림이 먹구름을 뚫고 푸른 하늘의 빛처럼 걸려 있으니 우울함으로 시작된 하루를 우울함으로 마감할 수 없는 일이겠지요. 

주말 산책길 유재하의 세 번째 곡 '사랑하기 때문에'를 들으며 하늘은 단지 먹구름에 가려져 있을 뿐 그 자리 그대로 있음을 발견합니다. 

"하지만 이제 깨달아요 그대만의 나였음을~ 다시 돌아온 청춘에게~ 내 모든 것 드릴 테요~ 우리 이대로 영원히~ 헤어지지 않으리~ 나 오직 희망을 믿기 때문에~ 사랑하기 때문에~"

1987년 발표된 유재하 1집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 재킷 사진.

우울에 가리워진 오늘을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