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기 더봄] 죽음 공부는 삶의 공부
[백만기의 은퇴생활백서] 나이 40 넘으면 죽음 준비하라 건강수명 65세 불과 미리 대비
나이 50이 되어 은퇴 후에 할 일을 그리다가 결국 마지막엔 죽는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갑자기 두려움이 생기며 죽음도 미리 준비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사실 그전까지는 솔직히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거든요. 그때부터 죽음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는 임종이 다가오면 그때 가서 생각하지 미리 연구할 필요가 있겠냐며 눈을 흘깁니다. 그러나 40이 넘으면 죽음 준비를 하라는 소태산 대종사의 말처럼 언제 신이 부를지 모를 일입니다.
실제로 호스피스 현장에서 보니까 젊은 나이에 죽어가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미리 죽음을 대비하지 못함을 후회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병원에 입원하여 투병하던 어머니를 떠나 보낸 중년 여인이 나중에 호스피스의 대모라고 일컫는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박사의 저서를 읽고 이 책을 미리 알았더라면 어머니가 병상에 있을 때 그렇게 하지 않았을 거라고 뒤늦게 회한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최근 의학의 발달로 사람들의 수명이 꽤 늘었습니다. 19세기만 해도 수명이 40이 되지 않았는데 20세기 들며 기하급수적으로 늘더니 요즘은 80이 넘습니다. 언론 매체에선 100세 시대가 도래되었다고 바람을 넣기도 합니다. 그러나 통계청의 발표에 의하면 병을 앓지 않고 일상생활을 스스로 할 수 있는 건강 수명은 남녀 모두 65세에 불과합니다. 그러니까 장수를 하더라도 10여 년은 골골하며 지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얼마 전 암이 의심된다는 의사의 조언으로 정밀검사를 받은 친구가 있습니다. 검사 결과 오진이라는 통보를 받고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그와 차를 한잔 하며 자연스레 죽음에 관한 얘기가 화제에 올랐습니다. 그가 전하기를 나이 사오십부터 친구들이 하나둘 세상을 뜨더니 지금은 거의 3분의 1이 운명을 했다고 하네요. 정말? 하며 의아해서 물었는데 시골에 있는 초등학교 남자 동창 22명 중 7명이 죽었다는 겁니다.
미국인의 통계를 보더라도 65세 이상 여성의 43%가 남편과 사별 내지 이혼으로 홀로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85세에 이르면 이 비율이 79%로 높아졌습니다. 우리 인생학교에도 사별한 회원이 적지 않습니다. 드러내고 말을 하진 않아도 약 10%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사별에 대한 고통으로 살고 싶지 않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죽음에 관한 책을 읽어보니 초기에는 그런 감정이 꽤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감정을 추스르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여자는 그나마 적응이 빠른데 남자는 그러하지 못한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배우자가 사망하면 여자는 자기 수명을 다 사는데 남자는 3년 이내에 죽는다는 주장도 있거든요. 외로움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OECD 국가 중에서 우리나라 남자의 자살 비율이 제일 높습니다. 우리나라도 영국처럼 정부 기구에 고독부를 두는 것도 검토해야겠습니다.
얼마 전 사별 가족 몇몇 사람을 만나 정기적으로 모임을 하면 어떠하겠냐고 하니 모두 좋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하지 못할 얘기를 같은 처지 사람끼리는 나누기가 좀 쉽지 않겠습니까. 어찌 보면 우리 모두 사별 가족입니다. 어머니를 여읜 사람, 배우자를 잃은 사람, 친구를 떠나보낸 사람, 게다가 자식을 잃은 사람도 있으니까요. 사별 가족을 보며 나이 30대에 홀로 되신 어머니가 생각났습니다. 이제 그 어머니도 세상을 떠났는데 당시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하는 마음이 떠오릅니다.
사별 회원들과는 정기적으로 만나 심리학과 죽음학을 공부하기로 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서로 위안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먼저 경험한 사람으로서 향후 같은 사례로 고통받는 이웃을 위해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며 멘토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한편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나라의 죽음 문화를 개선하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해봅니다. 죽음을 공부하면 삶을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깨우침을 얻습니다. 그러니까 죽음 공부는 삶의 공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