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우의 핫스팟] 식민지·냉전의 압축 공간 '용산공원'

러·일전쟁 일본군 주둔 이후 120년 해방 후 미군 점령... 흔적 고스란히 신용산-국립중앙박물관 1.1km 구간

2022-06-20     김현우 기자
1945년 9월 4일, 미군이 한국에 상륙하기 전 미 해군의 정찰기가 카메라로 찍은 용산기지 북쪽 모습. 당시 용산기지는 일본군이 사용하고 있었다. /용산시역사연구가 김천수

1904년 일본은 조선 땅에 군부대를 설치한다. 러시아와의 전쟁을 위해서다. 한일의정서 체결을 통해 정당화했다. 위치는 현재 용산공원. 1945년까지 41년 동안 조선인은 이곳에 발을 들이지 못했다. 해방 직후엔 미국이 이 땅을 가져갔다. 용산공원은 '용산 미군 기지'라는 이름으로 사용됐다. 그렇게 120년간 한국인이 한국 땅을 밟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 놓인다.  

20일 '김현우의 핫스팟'은 우리 땅이지만 가지 못했던 '금단의 땅' 용산공원을 찾았다. 일제 식민지 시대를 거쳐 냉전 시대 미군 주둔까지 외국 군대가 자리 잡았던 용산공원 문이 120년 만에 열렸다. 

일제강점기 이전에도 고려시대 때는 몽골, 임오군란 이후엔 청나라 군대가 자리 잡기도 했다. 용 모양의 산이란 의미를 지닌 용산은 그동안 국가 수도에 있어도 '남의 땅'이었다. 그러다 2003년, 한국과 미국 대통령이 용산 미군 기지를 평택으로 이전하는 데 합의했고, 2005년 공원화가 결정됐다. 

20일 여성경제신문이 찾은 서울시 용산구 '용산공원' 모습. 중앙에 대통령실이 보인다. /김현우 기자

이달 10일 개방된 사우스포스트 일부 지역은 미군이 평택 'USAG 험프리스'로 이전하면서 공터로 남은 곳이다. 이 부지를 '국가공원'으로 조성하기 위해 계획된 공원이 용산공원이다. 본지가 그 속을 들여다봤다.

기자가 찾은 용산공원 사우스포스트는 역사의 산실인 만큼 그 흔적이 선명히 남아있었다. 일본과 미국 두 나라가 거쳐 간 이곳엔 양국의 건축 특징이 함께 공존했다. 전봇대가 대표적이다. 일본식 나무 전봇대와 미국식 콘크리트 전봇대가 같은 곳에 자리했다. 일본군이 방공작전부로 사용한 벙커도 남아있다. 

20일 본지가 찾은 용산공원에 일본식 전봇대(오른쪽)와 미국식 전봇대가 함께 있다. 일본식 전봇대는 나무로 제작된 점이 특징이다. /김현우 기자

1950년대 미국에서 유행한 붉은색 단층 전원주택도 곳곳에 보였다. 이번에 개방한 사우스포스트 지역은 미군 주거 구역으로 사용됐던 곳이라 미군 장군 숙소로 쓰인 주택들이 남아있다. 일부 숙소는 일본군이 쌓아둔 석축 위에 그대로 지어졌다. 미국식 단층 주택은 무성한 나무 그늘에 있어, 고즈넉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장군 숙소에는 개인 정원과 주차장도 제공됐다. 각 주택에 설치된 미국식 '오각형 너트' 소화전도 눈에 띄었다.  

용산공원에 남아있는 미국식 주택. 미군 장군숙소로 사용됐다. /김현우 기자
장군숙소 입구. /김현우 기자
용산공원에 설치된 미국식 소화전. 오각형 너트가 특징이다. /김현우 기자

장군 숙소가 위치한 길에 있는 표지판도 모두 영어로 표기됐다. 미국의 작은 마을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모습이다. 장군 숙소를 지나면 '10군단로'라고 불리는 길이 나온다. 10군단로는 6.25 전쟁 당시 전선에서 활약한 알몬드 장군이 지휘한 군단 이름을 따왔다. 이 길을 중심으로 왼쪽엔 헬기장으로 사용한 공터와 그 너머로 대통령실이 보인다. 오른쪽엔 미군이 사용했던 야구장이 들어서 있다. 

야구장을 지나면 미군의 체육 활동을 위해 지어놓은 실내 농구장이 있다. 이곳은 미군뿐만 아니라 한국 스포츠 역사와도 인연이 깊다. 1960년대 대한민국 여자 농구 국가대표팀이 훈련했던 장소이기도 하다.

과거 대한민국 여자 농구 국가대표팀도 훈련장으로 사용했던 용산공원에 위치한 실내 농구 경기장. /김현우 기자

당시 여건이 부족했던 국가대표팀은 미군 용산기지에 있는 이 실내 농구장을 빌려 훈련했다. 1967년, 당시 여자 농구 국가대표팀은 세계 여자선수권 대회에서 준우승했다. 이때 국가대표팀 소속이던 김명자 선수는 용산 기지에서 훈련하다 만난 미군과 결혼하기도 했다. 

체육시설이 위치한 10군단로를 지나면 국립중앙박물관 뒤편에 위치한 게이트 13이 있다. 용산기지 남쪽 입구인데, 윤석열 대통령의 출근길을 볼 수 있다. 윤 대통령은 서울 서초구 자택에서 나와 반포대교를 건넌 뒤 게이트 13을 통해 미군 기지를 가로질러 국방부 청사였던 집무실로 향한다.

게이트 13에 위치한 윤석열 대통령의 출근길. 이 길을 달리면 옛 국방부 청사인 대통령실로 이어진다. /김현우 기자

이날 기자가 방문한 용산기지는 국토교통부가 임시 개방한 '사우스포스트' 1.1km 구간이다. 신용산역 출입구부터 국립중앙박물관까지 연결되어 있다. 용산공원 미군 부지는 북쪽의 '메인포스트', 남쪽의 '사우스포스트'로 나누어져 있다. 총 300만㎡다. 여의도보다 큰 국내 최초 국가공원으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용산공원 '10군단로'에서 바라본 대통령실. /여성경제신문

국토부는 용산공원에 각종 복합시설을 유치할 예정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본지와 통화에서 "메인 포스트에는 주한미국대사관과 서울특별시교육청을 이전시킬 예정"이라며 "사우스 포스트는 각종 박물관 및 문화시설이 들어설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2019년부터 약 1조2000억원을 투입해 조성하기 시작한 용산공원. 2027년까지 국가공원으로 단계적으로 완성해 나갈 방침이라고 국토부는 전했다. 용산구청에서는 용산 지구단위계획과 연계해, 총 895만㎡에 달하는 주변 지역까지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다음은 '구글 어스'로 본 용산공원(사우스포스트) 위치와 주요 시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