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자이언트스텝’ 공포 확산…한은은 관망 중
신흥국 자본 유출 가속화 상황에도 “모니터링하겠다” 미국 물가 발 쇼크로 한국, 중국, 일본 등 증시 급락 환율 1300원 육박…자본 유출 심화에 불안감 고조 전문가 “외환위기 가능성까지 보수적으로 대비해야”
한국은행이 금융위기에 대한 선제적 대응이 아닌 사후 리스크 관리에 초점을 맞추면서 ‘사후약방문’ 지적이 일고 있다. 미 연준의 ‘자이언트스텝’이 엄습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은행이 ‘모니터링’ 외에 이렇다 할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권 안팎에선 한국은행이 올해 국내 경제성장률을 2월 3.0%, 5월 2.7%로 내다본 것에 대해서도 "너무 장밋빛 전망에만 몰입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한은의 안일한 경제 인식이 국가 전체 위기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외환위기 가능성까지 보수적으로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은 “문제는 있지만 크게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
한국은행은 최근 공식석상에서도 당면한 경제 상황에 대한 안일한 인식을 내비췄다. 14일 이승헌 한국은행 부총재가 주재한 ‘긴급 시장상황 점검회의’에서도 이렇다 할 대책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 부총재는 “향후 시장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면서 필요 시 시장 안정에 적극 나설 것”이라고 밝힐 뿐이었다.
앞서 지난 9일에도 박종석 한국은행 부총재보는 ‘통화신용정책 보고서’ 관련 기자 간담회에서 “기본 시나리오에서 우리나라 경제가 잠재성장률 이상으로 성장할 것으로 보기 때문에 스태그플레이션의 확률은 낮다”며 낙관론을 이어갔다.
박 부총재보의 주장은 민간 소비의 ‘소생’을 전제한 것으로, 한은 내부적으로는 위기 발생에 대비한 예방책 마련에는 소홀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 A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국제 금융 시장 변동성이 크고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상황”이라면서도 “리스크 변화에 따라 기존의 계획도 점검하고 상황에 맞게 판단해서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리스크가 발생한 뒤 사후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이다. 한은은 가계 및 기업 부채, 수출 둔화 상황도 크게 우려할 정도는 아니라고 평가했다.
한국은행 B관계자는 “대내외 여건이 불확실해지면서 각 경제주체의 부채가 늘었지만 정부 지원정책으로 실제 연체율은 낮은 수준이다. 당분간은 크게 우려할 상황은 아니다”라면서도 “취약계층 금융부실 위험은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은행 C관계자는 수출둔화에 따른 무역수지 적자에 대해 “주요국 금리인상 가속화와 중국 봉쇄정책, 우크라이나 사태 등 대외요건이 악화되면서 수출이 둔화된 것도 사실이지만 IT 수요가 견조하게 이어지고 있어 완충역할을 하고 있다”면서 “급격한 부진이나 위축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계 관계자는 “금융당국에서는 말 자체가 시장에 충격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해야 할 것”이라면서 “실제로 구체적인 대비를 하지 않고 있다면 그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신흥국 화폐가치 급락에 자본유출 심화
그러나 세계 금융시장은 ‘41년만의 최고치’인 미국의 소비자물가상승률(8.6%)로 충격을 받고 있다. 연준은 연이은 긴축재정을 지속할 것으로 예고하고 있다. ‘빅스텝’은 당연하고 ‘자이언트스텝(0.75%포인트 인상)’ 가능성도 크다. 7월과 9월, 11월, 12월에도 연준의 금리인상이 이어질 것으로 보이며 이렇게 되면 연말까지 미 기준금리는 연 3.25~3.5%가 될 확률이 높다.
연준의 질주는 한국을 포함한 신흥국의 입장에서 악재일 수밖에 없다. 신흥국에 대한 화폐가치가 떨어지면서 자본유출이 심화되고 이는 세계 경제에도 큰 타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우크라이나 사태, 코로나19로 인한 공급망 붕괴, 식량‧에너지 공급난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세계 경제는 회복 불가능한 상태에 직면할 수도 있다.
세계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은 지난 13일 주가와 환율에 반영되면서 ‘검은 월요일’을 연출했다. 코스피는 3.52% 하락한 2504.51로 마감했고 코스닥 지수는 4.72% 내린 828.77로 추락했다. 이 수치는 14일 다시 최저치를 경신했다.
환율 급등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 됐다. 13일 기준 원-달러 환율은 지난주 금요일보다 15원 넘게 뛰면서 1284원까지 치솟았으며 장중 1291.5원까지 올랐다. 1달러 당 엔화 가치는 135엔 전반까지 상승해 2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14일 중국 중앙은행 산하 외환교역센터도 위안화의 달러 대비 기준 환율을 전 거래일보다 0.0300위안 올린 6.7482위안으로 고시했다. 위안화의 달러대비 가치가 0.45% 하락한 것으로 4거래일 연속 내리막길을 걸었다.
학계 “불안정한 대내외적 경제 상황, 대비해야”
학계는 불안정한 대내외적 경제상황에서 외환위기 가능성까지 내다보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교수는 “우크라이나 사태나 유가 문제, 공급망 붕괴 등 물가상승 요인이 쉽게 해소될 것 같지 않다”면서 “자본유출은 이미 진행되고 있고 내년이나 올해 말 취약한 신흥시장을 중심으로 외화유동성 경색이나 외환위기 가능성까지도 보인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는 금융시장이 취약하진 않지만 외환위기 가능성이 있는 국가 범주에 속해있다”면서 “전 세계 금리가 올라가면서 실물경제가 위축되고 물가가 올라가면서 글로벌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도 엿보인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자본 유출에 대응하기 위해 외환보유고 확보는 물론 한미 또는 한일 통화스왑을 맺는 등 구체적인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본래 금리는 물가상승률보다 높게 유지돼야 한다. 미국은 안정화 작업을 진행 중인데 그 기조에 따라가지 않으면 해외 자본은 물론 국내 자본도 빠져나갈 수 있다”면서 “신흥국의 연쇄 부도 행렬이 전망되는 동시에 국가 채무로 인한 국내 시장의 불안정성도 상당히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는 미국의 적극적인 안정화 정책에 조응하는 금리 조정과‧재정 적자 관리를 위한 정책을 조속히 펼쳐야 한다”면서 “이런 때일수록 국제적인 해외신임도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