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익준 더봄] '아듀~몽쉘통통 나의 별'

[최익준의 청춘을 위하여] (2) '천국노래자랑' 간 송해 선생님께 불안했던 20대에 위안 준 아저씨 손자 보살핀 할머니 기억에 먹먹

2022-06-13     최익준 ZEISS Vision CEO
사진=픽사베이

'이젠 안녕~ 사랑하는 몽쉘통통 나의 별!'

6월 초의 아침이었지요. 새롭지만 긴장된 하루의 긴 강줄기를 건너기 위한 리츄얼로 출근길 클래식 음악을 듣고 있었어요. 뉴스 속보로 당신의 영원한 작별 소식을 들었답니다. 당신의 95년 생애가 짤막한 기사 한 줄로 마감된 우울감을 어찌할지 몰랐어요. 멍한 눈빛으로 차창 밖 별 하나 떨어진 초여름의 하늘을 올려다보았지요.

비발디의 사계 여름 악장을 들으며 바라본 하늘 양털 구름 사이로 당신의 모습이 보입니다. 둥그런 안경테와 푸른 나비넥타이로 마이크를 잡은 손과 출연자의 눈높이에 맞춘 유머로 무대를 달구던 당신의 모습이 보입니다. 당신의 진정성이 쏟아낸 34년 무대 장면들이 구름 속에서 주마등처럼 지나갑니다. 당신의 34년 전국노래자랑 기억들은 바이올린 협주곡 음표들의 라르고와 알레그로 높낮이와 함께 제 의식의 흐름으로 흘러갑니다. 

'휴우~' 당신을 생각하는 이 글을 쓰면서 내 생애 후반전 통장에 남은 시간의 잔고를 어떻게 사용할지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당신이 속풀이로 즐겨 찾던 종로 낙원상가 국밥집에서 따뜻한 시래기 국밥 한 그릇에 막걸리 딱 한 잔 나누며 손 한 번 잡아 보겠다던 저의 야무진 야망은 초여름날 당신을 보내고 헛된 아쉬움으로 사라집니다.

송해 /연합뉴스

당신이 전국노래자랑 무대에 오르던 그해, 1988년 일요일의 추억이 제 마음의 보석상자에 들어와 있지요. 20대 청춘의 낮잠과 늘어진 하품에 뒤척이며 불안한 미래를 고민하던 시절이었죠. 주말이면 대학교 기숙사를 나와 빨랫감을 들고 할머님 댁에 들러 일요일 정오 "전국노래자랑"을 외치며 국민통합의 무대를 경영하던 당신을 만나게 되었지요.

할머님은 어김없이 손자를 위해 아픈 몸을 끌고 따뜻한 점심 밥상을 차려 늦둥이 손자와 함께 전국노래자랑 무대를 보는 추억을 쌓아 두었지요. 노환으로 이승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우울해하시던 할머님은 전국노래자랑을 이끌던 당신의 몸짓과 출연자를 아끼고 배려하는 유머에 기뻐하며 손자와의 일요일 시간을 만끽하셨지요.

방방곡곡 익명의 출연자를 인생 무대의 주인공으로 환대하던 당신의 겸손함과 타인을 친구로 만드는 당신의 리더십에 끌려 저는 당신을 흠모하고 좋아하게 되었죠. 생방송에서 보여 준 당신의 편견 없는 태도와 방송을 보면서도 손자의 숟가락에 힘겹게 생선 반찬을 먼저 올려 주신 할머님의 사랑은 불안한 시대에 취업을 앞둔 저에게 망망대해의 거친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스 부호처럼 제 마음에 각인이 되었지요.

파란만장한 삶의 궤적처럼, 이제는 세상에 없는 할머님의 고단한 생애처럼, 세상에는 고향 잃은 실향민, 전장에서 나라를 지킨 국가유공자, 푸른 청춘의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 최장수 현역의 자리를 끝까지 지켜 시대를 풍미한 사람들도 많지만, 개인의 희로애락을 뛰어넘어 타인에게 내민 소박하고 위대한 리더십을 존경합니다. 당신이 세상에 손을 내민 것처럼, 제가 세상에서 받은 것들에 대한 감사와 함께, 이자를 더 얹어 다음 세대에게 유익함을 제공하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신인류)의 남은 생을 살고자 합니다.

저에게 당신은 '몽쉘통통' ('나의 사랑하는 아저씨'를 뜻하는 프랑스 문장)입니다.  당신의 고단함과 당신의 환대를 만나러 종로 낙원상가 국밥집으로 갈 겁니다.

아듀~ '몽쉘통통' 나의 별 , 송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