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세] "인생 영화를 만날 수 있는 곳"… 20대 여성이 반했다

[청년이 본 세상] 2030, '관크' 없는 독립영화관에 매료 개성과 다양성 영화에 대한 갈증 충족

2022-06-14     한채희 국민대 정치외교학과 학생
‘시네큐브’ 내부 모습 /한채희

※이 기사는 2021년 '뉴스문장실습 수업'에 참여한 학생이 작성한 글입니다. 기사에서 인용되는 각종 통계 등의 기준 연도는 2020년인 점을 밝혀 둡니다.

서울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에서 내려 커다란 사람 조각상이 세워진 회색 빌딩으로 들어간다. 왼편에 위치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 2층으로 내려가면 삭막한 도시 풍경과 대비되는 따스한 분위기의 공간이 나온다. 벽면에 걸린 커다란 포스터가 제일 먼저 관객을 반기고, 탁자엔 아기자기한 엽서와 상영 시간표가 놓여있다.

한쪽에선 영화 팸플릿을 구경하는 사람들의 소소한 말소리가 들려온다. 극장 내부는 넓지 않지만 아늑하다. 광고 없이 정시에 상영이 시작되고, 영화가 끝난 뒤에는 엔딩 크레디트까지 모두 올라가고 나서야 불이 켜진다. 서울 광화문에 위치한 독립영화관 ‘시네큐브’의 모습이다.

시네큐브의 한 관계자는 독립영화관을 “‘인생 영화’를 만날 수 있는 곳”이라고 말한다. “관객 수나 제작 규모에 따라 상영관 수가 결정되는 대형 영화관과는 달리 각 극장만의 특색 있는 상영작들을 볼 수 있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때문에 어쩌면 친숙하지 않은, 그러나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영화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근래 독립영화관을 찾는 주요 고객층은 20대 여성이라고 한다. 서울 소재의 한 독립영화관 아르바이트생 A씨는 “대중문화의 주요 소비층인 20~30대 여성이 우리의 주요 고객층”이라며 “코로나 시국에서 보통 혼자서 영화를 보러 오는 ‘혼영’족이 대부분이다”라고 말했다. 대규모 멀티플렉스와 달리 작은 공간에 상영관 두어 개 정도가 전부인 곳에 그들의 발길이 머무는 이유는 무엇일까.

독립영화관, 흔적과 세월이 묻어 있는 공간

종종 독립영화관을 찾는다는 이모 씨(여ˑ23ˑ덕성여자대학교 사회학과)는 “대규모 극장이 가까워도 일부러 찾아서 가는 편”이라며 “조용하고 잔잔하게 관람하고 싶을 때 간다”고 했다. 이씨는 극장 특유의 분위기를 즐긴다며 독립영화관을 방문할 때면 마치 나들이 가는 기분이 든다고 했다.

동국대학교 국제통상학과 재학생 민모 씨(여ˑ25) 역시 소풍 가는 편안한 느낌으로 독립영화관을 찾게 된다고 말한다. 민씨는 상업영화 한 편을 관람하면 독립영화는 그의 3배를 볼 정도로 독립영화를 좋아한다고 했다. “천편일률적인 멀티플렉스보다 각 극장만의 개성이 살아있는 공간에 애정이 간다”며 “브랜드가 추구하는 세련되고 일괄적인 분위기보다는 영화의 흔적과 세월이 묻어난 느낌이 좋다”라고 말했다.

단국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부 재학생 전모 씨(여ˑ24)는 서울 종로구 소재의 ‘인디 스페이스’를 즐겨 찾는다고 말한다. 전씨는 독립영화관을 찾는 이유로 '관크'(관객과 critical의 합성어. 다른 관객의 관람을 방해하는 모든 행위를 이르는 말)가 없는 환경을 꼽았다.

영화 팸플릿을 구경하는 관람객 모습 /한채희

—평소 ‘관크’를 자주 겪는가.
“매번 당하지는 않지만 대부분 멀티플렉스 극장을 이용할 때 경험했다.”

—어떤 방해를 받았나?
“영화 중간에 들어오는 사람도 있고 2시간 내내 끊임없이 속닥거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심지어 중간에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드렸는데도 말을 멈추지 않아 크게 스트레스 받았던 기억이 있다.”

—독립영화관에선 이러한 경험이 없었나.
“GV(관객과의 대화)를 다니느라 전석 매진인 관에서 관람할 때가 많은데 오히려 한 번도 당한 적 없다. 아무래도 영화를 애정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이어서 그런 것 같다.”

'관크' 없고 소재의 다양성도 높아

실제로 서울 서대문구 소재 ‘아트하우스 모모’와 종로구 소재 ‘시네큐브’는 관람의 질을 높이기 위해 상영 시작 10분 뒤 입장을 원칙적으로 금하고 있다. 엄격한 규칙이 관람 환경에 예민한 젊은 세대들의 성향에 부합하는 것이다.

서울 종로구 소재의 에무 시네마에서 청강대학교 애니메이션 전공 재학생 김모 씨(여ˑ23)를 만날 수 있었다. 김씨는 “전공 특성상 다양한 분야의 영화에 관심이 많은데 정작 대형 극장에서 해주는 영화는 한정돼 있다”라고 토로했다. 독립영화관에서만 상영하는 소규모 영화를 보기 위해 멀어도 굳이 찾게 된다는 것이다.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2020년 상반기 독립ˑ예술영화의 평균 이용 점유율은 13.5%에 그친다. 86.5%에 달하는 일반 영화의 6분의 1 수준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점유율 자체가 낮은데 멀티플렉스에서는 그조차 오전이나 심야 시간대에 배치한다. 김씨는 “독립영화관을 찾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했다.

최근 한국 영화계에는 ‘여성 서사’ 바람이 불고 있다. 기존 천편일률적인 남성 중심 장르 문법이 수명을 다하고, 이전까지 터부시 되었던 여성의 삶이 독립영화 속에서 조명 받기 시작한 것이다. 여성 서사는 퀴어 소재나 사회적 소수자들의 이야기와 결부되어 주류 시장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

새롭게 등장한 영화들은 다차원적인 영화에 갈증을 느끼는 관객들을 불러 모았다. 영화진흥위원회의 2019년 영화 통계에 따르면, <벌새> <윤희에게>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등 페미니즘과 퀴어가 결합된 여성 영화들이 작년에 이어 올해까지 잇달아 10만 관객을 돌파했다. 독립ˑ예술 영화 시장에 불고 있는 여성 영화 붐은 변화된 대중의 요구에 대한 시사점을 보인다.

온라인으로 현재 상영작을 확인하는 모습 /한채희

국민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재학생 장모 씨(23)는 “독립영화들이 한국 사회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여성인권, 퀴어 같은 소수자 이슈를 잘 짚어내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장씨는 “똑같은 이야기를 주인공만 바꿔서 보이는 상업영화보다 우리네 삶과 맞닿은 이야기가 더욱 마음에 와닿아서 독립영화를 찾게 된다”고 부연했다.

만월단, 벌새단, 메기떼?

20대 여성들이 독립영화관과 호응하는 또 다른 방법은 새로워진 ‘팬덤 문화’에 있다. 팬덤은 가수, 배우, 운동선수 따위의 유명인이나 특정 분야를 좋아하는 사람, 혹은 무리를 뜻한다. 이전에는 팬덤이 특정 연예인을 중심으로 응집되었다면, 이제는 영화와 그 안에 담긴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형성되는 모습을 보인다. 특히 작년 한 해 독립영화들은 팬덤을 중심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영화 <윤희에게>의 팬들을 의미하는 ‘만월단’, <벌새>의 팬층 ‘벌새단’, <메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메기떼’가 그 예시이다. 

김모 씨(여ˑ23ˑ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 재학생)는 영화 <윤희에게>의 팬덤 ‘만월단’에서 활동하고 있다. <윤희에게>는 일본 오타와의 겨울을 배경으로 하여, 우연히 발송된 편지 한 통으로 어린 시절 첫사랑을 조우하고 삶의 주체성을 되찾는 윤희의 이야기를 그린 멜로 영화다. 김씨는 “대사를 외울 정도로 수차례 관람했다”며 “시간이 없을 때는 ‘영혼 보내기’를 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영혼 보내기’란 실제로 보러 가지 않아도 좌석을 예매하여 영화를 응원하는 행위이다. 김씨는 “만월단에는 나처럼 영화를 여러 번 반복해서 본 관객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들은 오픈채팅으로 모여 감상과 정보를 나눌 뿐만 아니라 극장을 빌려서 단체 관람을 진행하고, 감독이나 배우를 초대해 GV(관객과의 대화)를 열기도 했다. 

(왼쪽부터)영화 ‘윤희에게’ 포스터 /사진=㈜리틀빅픽쳐스, 영화 ‘벌새’ 포스터 /사진=엣타인필름, 영화 ‘메기’ 포스터.

2019년 8월에 개봉한 영화 <벌새>는 누적 관객 수 14만 4225만여 명을 기록하며 독립ˑ예술 영화계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냈다. <벌새>는 1994년을 살아가는 중학생 은희의 아주 개인적인 일상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로 그려냈다. 김보라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벌새>는 국ˑ내외 영화제에서 약 60관왕을 달성하는 기록적인 성과를 냈다. 물고기 메기의 입을 빌려 사람들 사이의 의심과 믿음을 말하는 영화 <메기> 역시 작년 한 해 큰 사랑을 받았다. 청년들이 마주한 불법 촬영, 청년 실업, 데이트 폭력과 같은 사회 문제를 발칙한 상상력으로 다뤄 국내외 평단의 호평이 쏟아졌다.

국내 관객들은 ‘벌새단’, ‘메기떼’의 ‘팬덤문화’를 형성하여 호응을 보냈다. 이들은 다 같이 모여 서로의 영화를 관람하거나, 상영 기간이 끝난 후에도 재개봉으로 다시 영화를 보고, 굿즈, 파생상품을 제작하여 나누는 등의 활동을 진행했다. 근래 20대 여성들은 단순히 독립영화를 관람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주체적으로 전에 없던 행사를 기획하고 배우, 감독, 관객들과 소통하는 새로운 관람 문화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독립영화관을 향유하는 신세대 가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코로나 위기에 줄줄이 문 닫는 독립영화관

그러나 코로나19의 유행으로 독립영화관은 존폐 위기를 맞았다. 2020년 10월, 서울시 마포구에 위치한 ‘상상마당 시네마’는 13년의 전통에도 불구하고 철수 논란이 일었다. 이에 많은 영화팬들이 SNS를 통해 ‘#상상마당시네마를지켜주세요’ 해시태그 운동을 벌였고, 현재는 재정비 중이라는 공식 입장을 내놓은 상태이다.

CGV 역시 재정 악화로 7개 지점의 영업중단을 선언했다. 그중 대학로와 명동 씨네 라이브러리 두 지점이 독립ˑ예술 영화를 상영하던 아트하우스 극장이다. 한 영화계 종사자는 “어려운 상황 속에 독립영화는 사실상 살아남기 힘든 구조”라며 “관객들의 지속적인 관심이 좋은 영화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것”이라 말했다. 

서울 시내 독립영화관

KU시네마 테크 (서울시 광진구)
대한극장 (서울시 중구)
더숲 아트시네마 (서울시 노원구)
상상마당 시네마 (서울시 마포구)
시네큐브 (서울시 종로구)
아리랑시네마센터 (서울시 성북구)
아트하우스 모모 (서울시 서대문구)
에무시네마 (서울시 종로구)
인디스페이스 (서울시 종로구)
자체휴강시네마 (서울시 관악구)
필름포럼 (서울시 서대문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