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재 칼럼] 중앙은행의 경직성이 불러온 버블과 경기 침체
[김성재의 국제금융 인사이트] 중앙은행의 뒷북 대책이 경기 왜곡 숫자만 보지말고 기대심리 살펴야
미국 조지아주 서배나(Savannah)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항구도시이다. 대서양에 면해 있어 해질녘이면 환상적인 저녁놀을 감상할 수 있다. 무엇보다 서배나 도심에서 볼 수 있는 유럽풍의 오래된 거리가 주는 한적함과 이국적인 풍경은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는다.
1995년 아카데미를 휩쓴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인상적인 첫 장면이 촬영된 곳도 서배나이다. 영화는 흰 깃털 하나가 하늘에서 천천히 떨어지는 신으로 시작한다. 깃털의 움직임을 따라 카메라는 흰 교회의 첨탑과 고색창연한 건물, 아름드리 오크나무와 스페인 이끼를 담아낸다.
그 거리의 벤치에 포레스트가 낡은 운동화를 신고 앉아 있다. 뒤로는 사람들이 여유롭게 거닐고 있다. 햇살은 밝지만 부드럽고 산들거리는 바람이 나뭇잎을 스친다. 남부 특유의 오크나무가 주는 짙은 그늘에 앉아 바람을 즐기고 있노라면 흥겨운 마음이 절로 일 듯한 분위기다.
이처럼 좋은 날씨는 우리 신체를 가볍게 하고 정신의 힘을 북돋운다. 그런데 일 년 중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고 흐리지도 않으며 햇살이 따갑지도 않은 날씨가 며칠이나 될까? 봄철 안에서도 정말 봄같이 따사로운 날은 많지 않고 가을에도 정말 가을같이 선선한 날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것은 경제도 마찬가지다. 물가는 안정되고 경제가 순조롭게 성장하는 골디락스 상태를 보이는 순간은 그렇게 많지 않다. 때로는 실업률이 높고 경제성장이 더뎌서 한겨울 날씨 같은 불경기를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물가가 너무 빨리 올라 문제가 된다.
물론 경기는 많은 요소의 영향을 받는다. 민간 소비가 왕성하고 기업의 매출이 증가하며 투자가 활성화되면 경기가 호조를 보인다. 반면, 가계의 소비지출이 위축되고 기업의 투자가 급감하면 경기가 하강하게 마련이다. 여기에 기업의 국제경쟁력도 경기에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무수한 경제주체들의 결정과 행동이 서로 교차하면서 지그재그로 움직이는 경기를 골디락스 한 방향으로 이끌려고 하는 존재가 있다. 바로 중앙은행이다. 중앙은행은 그 존재 이유가 물가 안정과 완전고용을 통한 경제성장의 달성에 있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은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통화정책 수단을 사용한다. 기준금리가 바로 경기 조절을 위해 중앙은행이 사용하는 대표적인 무기이다. 경기가 위축되었다고 판단하면 금리를 내리고 인플레이션이 문제 된다고 판단하면 금리를 올려 돈줄을 죈다.
최근에도 미국 인플레이션이 40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자 연방준비제도(연준)는 빅스텝으로 금리를 올리면서 통화정책을 긴축으로 몰고 가고 있다. 앞으로도 몇 차례 더 빅스텝 금리 인상을 시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자 이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경기가 침체에 빠지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넓게 퍼지고 있다.
연준은 물가상승률이 2% 안팎으로 안정될 때까지 긴축을 지속할 요량이다. 그러면서 경기의 연착륙을 동시에 희망하고 있다. 문제는 어느 수준까지 금리를 올려야 연준이 목표로 하는 물가 안정과 경제성장의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을까에 있다.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환상적 금리 수준을 ‘중립금리’ 또는 알-스타(r*)라고 부른다. 즉, 중립금리는 중앙은행이 더 이상 금리를 내리거나 올리지 않아도 경제가 완전고용과 물가안정을 동시에 이룰 수 있는 균형금리 수준이다. 경제가 이 균형금리 안팎에 있으면 가계의 저축과 기업의 투자가 균형을 이루면서 양호한 경제 성장을 달성할 수 있는 선에서 안정된다고 본다.
그런데 만약 시중 실세금리가 균형금리보다 낮으면 가계의 저축률은 떨어지고 소비가 증가하면서 기업의 투자가 급증해 경기가 과열된다. 반대로 시중금리가 균형금리보다 높아지면 가계의 저축률이 높아지고 기업은 투자를 꺼리며 고용을 기피해 경기가 냉각된다.
미 연준의 경제학자들은 이 중립금리가 2000년대 초 3% 안팎에서 코로나 팬데믹 이전 0.5% 수준으로 급격하게 낮아졌다고 본다. 이들은 산업의 구조적 변화와 생산성 증가의 정체를 그 이유로 든다. 기업이 거액의 자금을 고금리에 빌려 투자할 유인이 낮아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인구의 고령화로 위험회피 성향이 높아지면서 저축이 증가했고 국제자금이 안전자산을 찾아 미 국채로 몰려든 것도 중립금리 하락에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문제는 연준이 중립금리 수준을 너무 낮게 잡아, 금리인상 시기를 놓친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는 사실이다.
물론 연준은 공식적으로는 금리정책 결정의 준거로 중립금리를 사용하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공개시장위원회(FOMC) 부위원장으로 연준의 금리정책에 큰 영향을 미치는 존 윌리엄스 뉴욕연방은행총재 등 연준의 고위 관계자가 중립금리 이론을 정립해 왔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즉, 연준이 음으로 양으로 중립금리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들은 중립금리 측정을 위해 경제성장의 장기추세에 근거해 실질 GDP(국내총생산)와 잠재 GDP 간의 차이인 산출갭(GDP gap)을 사용한다. 문제는 과거 추세선에 의지해 물가가 안정되었다고 보고 장기간 금리를 낮춰 돈줄을 풀 경우에 발생한다.
미국의 경우 2008년 금융위기로 실질 GDP가 크게 꺾이면서 추세를 하향 이탈했다. 이를 잠재 GDP로 복귀시키기 위해 연준은 장기간 양적완화를 단행하고 단기금리를 0% 안팎에서 묶었다. 그러자 어쨌든 경제가 성장세를 유지하면서 2018년을 전후해 잠재 GDP 수준을 회복했다.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경기가 큰 폭 침체에 빠졌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정부와 연준이 보조를 맞추면서 천문학적인 규모의 돈을 풀었다. 실질 GDP를 잠재 GDP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연준이 간과한 것이 있다. 바로 자산시장의 과열이었다.
연준은 실물경제를 바라보면서 자산시장의 가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것을 방치했다. 과거 추세선 상 인플레이션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 보고 경기 부양에만 집중했다. 그 부산물은 주가, 채권, 부동산, 가상화폐, 상품 등 거의 모든 자산시장에서의 버블 형성이었다.
그것은 그간 소비자물가지수의 산출 방법을 변경하고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표를 사용하면서 의도적으로 인플레이션 문제를 축소해 온 결과이기도 했다. 즉, 물가지표가 자산 가격의 급등을 반영하지 못하면서 물가를 잡을 선제적 금리인상의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그런데 자산시장의 버블은 부(富)의 효과를 통해 필연적으로 실물경제의 물가 앙등으로 전이될 수밖에 없다. 자산시장에서 흘러나온 돈이 소비되고 투자되면서 화폐의 유통속도를 높이기 때문이다. 연준은 실물경제의 과거 데이터만 바라보면서 이를 외면했다.
물론 작년 말 인플레이션이 어떤 지표를 통해 보아도 용인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지자 연준은 긴축정책으로 선회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연준은 실물경기는 도외시한 채 인플레이션이 목표치로 낮아질 때까지 금리 인상을 밀어붙이고, 부의 효과를 차단하기 위해 자산시장도 의도적으로 냉각시키려 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할 경우, 경제주체들은 연준의 정책이 가져올 결과를 재무계획에 선반영하는 경향이 있다. 다시 말하자면, 현재 경기가 좋은 상태인데도 가계는 지출의 감소를, 기업은 투자의 축소를, 그리고 은행은 대출의 감축을 계획한다. 그 결과는 갑작스러운 경기의 추락으로 나타난다. 유연한 시각으로 경제주체의 심리를 세밀하게 관찰해야 하는 이유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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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재 가드너웹대학교 경영학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