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익종 더봄] 배우자의 취미 뭔지 아세요?

[한익종의 삶이 취미, 취미가 삶](2) 내 취미를 배우자에게 강요 말자 노후엔 배우자와 함께 해야 행복

2022-06-17     한익종 발룬티코노미스트·알나만교장

결국은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또 하고 말았다. 공방에서 만들기 작업하다 말고 떠나는 아내에게 불쑥 내뱉었다.

“아니, 그 재미있는 걸 하다가 말고 왜 그냥 떠나? 시작했으면 끝을 보든지."

그건 내 생각이었다. 나나 좋아하는 일이지 아내가 나와 꼭 같이 즐길 거라는 건 착각이었다.  내  취미가 진정 무엇인지 몰랐으면서 아내의 취미가 뭔지 알고 강요했을까. 아차 싶었지만 늦었다.

비치코밍을 함께 하는 우리 부부. 배우자가 진정으로 즐기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함께 해야 오래 간다. /사진=한익종

오래전 세부로 여행 다녀온 주부가 다시는 남편과 함께 해외여행은 가지 않겠다고 
털어놓았다. 이유인 즉슨 자신은 산을 좋아하는데 물 좋아하는 남편이 눈만 뜨면 바닷속에 들어가서 저녁 늦게까지 물놀이만 하니 자신은 5일 동안 잠만 자다 왔다고.

직장생활 할 때 내 회사 대표는 틈만 나면 골프 예찬론을 펼치며 노후에 부부가 가질 가장 좋은 취미생활이 골프라고 강조한 적이 있었다. 그 부인? 나이 들어 점점 필드에 나가기 싫어지는데 남편은 수시로 필드행을 부르짖는다고, 지겨워 못 살겠다고 한다.

기업이나 관공서의 생애 재설계 과정에 강의를 나가 자신의 배우자 취미를 2개만 적어 보라고 하면 대부분이 잘 모른다고 대답한다. 대기업 CEO를 역임했던 은퇴한 선배가 부부 싸움을 했다고 내게 하소연하면서 해준 이야기가 있다.

결혼 후 30~40년을 살면서 부인과 함께한 취미가 무엇이었냐고, 진정 부인이 좋아하는 취미가 뭔지 아느냐고. 묵묵부답. 아니 묵묵부답이 취미여? 그러고는 자신만 좋다고 자꾸 산에 가자고 하니 싸울 수밖에. 

제주에 내려와 올레길 옆에 체험교실을 마련했더니 지나가는 올레꾼들이 교실을 자주 찾는다. 그 중 제주 한달 살이, 6개월 살이를 온 부인들이 자주 들른다. 왜 혼자 왔냐고 물으면 대부분이 남편은 걷기 싫어해서 육지에 떼어 놓고(?) 혼자 왔다고, 홀가분하다는 듯 말을 한다. 그만큼 살았으면 됐지 이제는 자기 좋아하는 거 하며 살자고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해녀출신 어르신들에게 취미교실을 열어드리고 있다. 대부분이 자신의 좋아하는 일, 즐기는 일이 무엇인지 모르고 삶을 마감한다. /사진=한익종

씁쓰름하다. 나를 돌이켜 본다. 공방에서 유리조각으로 목걸이 펜던트를 만들다 중간에 안채로 간 아내를 생각해 보았다. 나 또한 아내에게 내 취미를 아직도 강요하고 있지는 않는지. 

50에 회사를 그만두고 한 일이 내 손으로 집을 지어 보자고 결심했다. 건축의 `건’ 자도 모르는 내가 집을 지은 것은 집 짓는 것도 취미생활의 한 방편이었고 특히 아내가 함께 즐겼기 때문이다. 화천의 전원주택( 4도3농 생활)을 마련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창고에 보관했던 물품들을 마당에 내 놓고, 우리나라 최초(?)로 불우이웃돕기 성금마련 시골 야드세일을 했다.

내놓은 우리 부부의 취미용품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 종류와 양에. 제대로 활용 못한 취미용품들에 대한 후회와 함께 나에 대한 의문이 들었었다. '내 취미는 진정 무엇이었나? 취미도 트랜드 따라 했었느냐? 그 중에서 부부가 함께한 것은 얼마나 됐느냐?’

나이들어 가면서 취미생활에서도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 남들 한다고 따라하지 말자. 나 좋다고 배우자에게 그것을 강요하지 말자. 인생 후반부에 들며 너 따로 나 따로는 결국 부부관계를 소원하게 한다. 나이 들어서는 '혼자서도 잘 놀아요'도 중요하지만 '함께도 잘 놀아요'가 돼야 한다. 결국, 취미생활에서도 역지사지, 배려가 필요하다.